♣ 딤전4:8a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수년 전, 인터넷을 서핑하다 흥미로운 대화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유명 목사의 재정관리상 제반 문제점에 관한 논쟁이었는데, 거기에는 골프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골프에 관한 쟁점은 대충 이랬습니다.
○ 비판 성도의 주장 : “목사님이 건강관리를 위해 골프를 친다고 하는데 목회자가 사역과 무관한 골프를 즐기는 것은 옳지 않다.”
○ 옹호 성도의 주장 : “목회자도 건강을 위해 무슨 운동이든 해야 하고, 또 상류층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 골프를 친다면 이는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다.”
최근(2008년 1월 26일) MBC는 성직자들의 세금문제를 다룬 ‘뉴스후’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여기에 위의 논쟁 대상이었던 목사도 포함되었습니다. 방송은, 그 목사의 호화 사택에 구비되어 있는 골프연습설비를 화면에 비춰줌으로써, 그가 대단한 골프매니어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골퍼들은 ‘가장 재미있는 운동=골프’라는 데에 공감합니다. 간혹 부정적 혹평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재미를 못 붙여서 그러시는 것일 겁니다. 제 경우, 늦게 배워서 그런지, 날 새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기 맘대로 쉽게 된다면 금방 흥미를 잃게 되어, 매우 재미없는 운동이 될 것입니다. 정말로 잘 안됩니다.
그래서 골프 안 되는 이유가 무려 101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중에 맨 마지막 핑계는 ‘이상하게 안 되네!’입니다. 엉터리 같지만 이 핑계야말로 골프의 진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면에서 인생과 흡사하기까지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라운드 하는 주말골퍼로서, 목사에게 골프가 적당한 운동인지에 관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저 자신이 골프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면 다소 어폐가 있겠으나, 저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이런 이유입니다.
제 구력은 약 4년이며 핸디캡 16(88타)인 보기플레이어로서 베스트 스코어 79타입니다. 이 정도의 수준에 이르고 또 유지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평균적인 내용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시간 측면입니다.
정규 18홀 도는 데 약 4-6시간이 소요됩니다. 운동 후에는 반드시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약 1-2 시간 더 필요합니다. 여기에다 골프장과의 거리를 고려한다면 다시 1-2 시간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1주일에 한 번 운동하려면 기본적으로 6-10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실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반드시 반복 연습해야 합니다. 보기플레이어라면 주 2-3회 정도(싱글 실력을 유지하려면 그 이상) 인도어(실내연습장)에서 연습해야 합니다. 1회 연습시간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1-2 시간은 걸립니다. 보기플레이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주일에 최소 4-6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약과 팀구성 등에 소요되는 시간은 생략하더라도, 1주일 1회 라운드 하기 위해서는 최소 10 시간 이상이 투자되어야만 합니다.
둘째, 비용측면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초기투자비입니다. 레슨비와 용품비로 대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슨비는 처음 시작하면서 배우는 수강료입니다. 티칭프로의 명성과 기간에 따라 액수는 다양하겠습니다만, 월 30여 만원 정도가 일반적입니다. 레슨 기간은 길수록 좋겠으나 최소 3개월 정도는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레슨비는 최소 약 100여 만원 정도를 책정해야 합니다.
용품비는 드라이버와 우드와 아이언세트와 퍼터 등으로 구성된 골프클럽(골프채) 구입비용입니다. 각 클럽의 메이커와 품질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만, 수십 만원 대의 평균 하향적 품질로 장만하더라도 최소 200여 만 원 정도는 잡아야 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수백 만원 대의 클럽을, 프로선수라면 수천 만원 대의 장구를 갖출 것입니다. 여기에다 의상과 신발/장갑/양말/우의/우산/모자/선그라스/티(공을 올려놓고 치는 보조막대기) 등의 골프용품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국 레슨비와 용품비로 구성된 초기투자비는 최소 300여 만 원 이상이 소요됨을 알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투자로서, 좋은 장구를 마련하려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경상비에 해당되는 라운드 비용입니다. 역시 평균 하향적 수준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규골프장(Country Club)의 그린피(입장료)는 15-25만 원 선입니다(근간 증가 추세에 있는 퍼블릭의 경우는 8-10만 원 선입니다). 캐디피(도우미 봉사료)는 7-9만 원으로 개인당 약 2만 원 정도 할당됩니다. 그늘집(골프장 내의 가벼운 간식 장소) 음식값은 매우 비싼데(삶은 달걀 하나에 2-3천 원 하는 곳도 있습니다), 개인당 1-2만 원 이상 분담될 것입니다. 여기에 운동 후 식사비용 개인당 약 1-2만원도 고려해야 합니다.
골프공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공 하나에 약 3-6천 원 정도 하는데, 컨디션이 좋으면 공 1개로 1회 라운드 가능하지만, 어떤 날은 몇 개씩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공 값만 몇 만 원 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고려되어야 할 경상비에는 연습비용도 있습니다. 연습장에서 통상 80-100개 짜리 공 1박스에 1만 원 정도합니다. 1회 연습시 보통 2-3박스 치니까 주당 약 4-9만 원의 연습비용이 소요된다 하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내기증후군은 골프라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친구들끼리 재미로 하더라도, 컨디션에 따라 몇 만 원 정도의 지출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가끔 딸 때도 있습니다).
결국 비용에 관한 한, 앞서 말씀드린 초기투자비와 수천 만 원 내지 수 억 원에 이르는 골프회원권은 논외로 하더라도, 경상비만 따져 1회 라운드 비용 약 30만 원 + 기타 비용이 소요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절대 만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핀 내용을 정리하면, 한국에서의 골프는 시간 및 비용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소위 사치성 운동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비용 염출이 가능한 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고급 스포츠라 할 것입니다. 샐러리맨이 자신의 봉급으로 즐기기에는 매우 벅찹니다.
※ 제가 이처럼 고비용의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것은, 골프에 관한 한 파격적인 특혜를 누리는 직장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슨비 60만 원과 용품비 약 300여 만 원의 초기비용을 투자했으나, 경상비는 엄청 저렴합니다. 미화 약 40-50$ 정도면 1회 라운드 가능합니다.
이제 끝으로, 왜 골프가 목사에게 적절한 운동이라 하기 어렵다는 것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앞서 살핀 대로 골프는 시간과 비용 소모적 운동입니다. 소요 자체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평신도인 제가,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조건(신분)임에도, 10년 동안 선뜻 시작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정말이지 목사가 골프를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시간 및 금전)는 결코 소소한 것이 아닙니다.
둘째, 한국교인들의 정서에서 파생되는 우려점입니다. 만약 목사가 골프를 한다면 대부분 평신도들과 라운드하게 될 것이고, 비용은 평신도들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십 년의 신앙생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음식값이든 운동비용이든, 목사가 부담하지 않는 것이 관행인 것 같습니다. 몹쓸 관행이 골프라 해서 예외일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앞서 인용했던 목사 골프 옹호 성도의 오해도 짚어 봐야 합니다. 사실 필드에서 함께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사업상 접대골프라면 사업에 관한 대화가 주를 이루겠지만, 라운드 하면서 심각한 대화는 최대한 자제하고, 대부분 가벼운 화제를 나눌 뿐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순진하신 성도님의 기대처럼, 필드에서 심각한 전도의 말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만사 자신만만한 상류층 인사들은, 전도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뿐 아니라, 불쾌히 여길 수 있다는 것을 제 경험상 확언할 수 있습니다.
상류층 전도를 위해 골프가 활용될 수 있다는 기대는 오해일 뿐이고, 위 목사는 그냥 좋아서 라운드 하는 것입니다. 골프와 전도는 전혀 연관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골프는 목사에게 백해무익한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골프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운동입니다. 당연히 목사에게도 좋습니다. 특히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 중 가장 먼저 추천되는 것입니다. 약 6-8Km의 잔디밭을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고 가볍게 스윙하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유익이 됩니다.
그런데 그 ‘유익’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데에 유념해야 합니다. 유익하기는 한데 ‘육체에 약간 유익’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말입니다. 이 ‘약간’이라는 단어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감수할만한 하다.’는 뜻이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 예로 든 목사의 경우 ‘골프를 즐긴다.’했습니다(골프 마니아). ‘즐김’은 시간과 비용의 투입이 고려된 표현입니다. 투자하지 않으면 100타 이내로 진입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즐길 수 없습니다(흥미 상실). ‘즐김=투자’의 상관관계를 잘 알기에, 골프란 목회 자체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하는 목회자에게 너무 무리한 운동일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의 대강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은 골프를 즐기면서 목사에게는 적합지 않은 운동이라 하려니 쑥스럽기도 하고, 또 각자 개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기는 하나, 1주일에 1-2회 라운드 하는 목사를 연상한다는 것은 한국 성도들의 정서에 부합되는 모양새는 아닌 듯 여겨집니다.
단지 비용 측면에서만 본다면, 골프 대중화가 이루어져 필드에서 “나이스 샷!”을 외치는 목사들의 목소리를 쉽게 듣는 날이 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문제 또한 ‘세월이 약’이겠으나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닐는지요! ♣
제가 골프를 치지 않는, 그것도 큰 돈이 들지 않는 미국에서(최근에는 기름값 물가가 올라 무엇이든 아껴야 할 판국이 되었지만),
이유를 마치 제 생각을 훔쳐 읽은 듯이 똑 같이 적어 주셨네요. 100% 공감, 또 공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