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이태 목사라는 분이 쓴 "부자들의 천국"(나침반)을 읽고 갓피플몰에 올렸던 독후감입니다. 문단 나눔을 다시 했고, 한 문장을 조금 손 봤을 뿐, 내용은 거의(99.9%) 그대로 입니다.
민태원 선생의 ‘청춘예찬’은 수필 문학의 전형으로까지 회자되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비록 학창시절 시험문제 푸느라 고통당했을망정 그분의 훌륭한 글을 폄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식을 벗고 솔직해진다면 민 선생의 말보다 훨씬 듣기 좋은 것이 있습니다. “부자!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그 누가 있어 감히 이 말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속사람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참(?)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 해서 ‘부의 필요’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성경 말씀을 빙자하여 합리화시키기가 더 쉬울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삼박자 축복’의 열광이 비근한 예라 할 것입니다.
근간 부에 관한 한 ‘삼박자’보다 월등한 신앙서적(?) 한 권을 읽었습니다. 김이태 목사의 ‘부자들의 천국’(나침반)입니다. 저자가 부르짖는 ‘부자예찬’은 인간의 솔직한 속마음 그대로입니다. 누가 부(富)를 싫어하겠습니까! 게다가 성경과 연계까지 시켜줬으니, 아무리 성도라도 공감을 표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평하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흔하디흔한 ‘잘 살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을 성경 말씀으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너무나 엉뚱하게 왜곡시킴으로써 양식있는 성도들을 우울케 만든다는 점 때문에, 불필요한 감상을 적고자 합니다.
먼저, 제2부 ‘부자들의 12가지 특징’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저자는 세상의 온갖 사례를 총동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 ‘성공의 법칙’을 연구하여 성공학의 원조라 불린다는 ‘나폴레옹 힐’, 1953년 예일대학교의 ‘소원을 종이에 기록하면 이루어진다.’는 사례연구 등은 그나마 잉크냄새라도 나기에 좀 나은 편입니다.
중국의 항우나 독일의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나 미국의 빌 게이츠나 한국의 이건희 씨 등(대충만 헤아려도 약 50여 명 내지 사건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은 ‘성경적 부’와 어떻게 연계되는 인물(사건)들인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 괴상한 연결 논리에 기가 찰 지경입니다.
다음, 저자의 속마음이 그대로 표출된 ‘시작의 글’을 조금 짚어 보겠습니다.
“오른손에는 장수, 왼손에는 부귀”(p.6)라는 말은 잠언3:16(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수유장수(右手有長壽) 좌수유부귀(左手有富貴)라며 부자학교 홈페이지 모토(표지 소개글)로 삼고 있습니다.
⇒ 명백한 성경 말씀을 유식하게 한자로 써 놨으니 전적으로 옳다고 지레짐작하면 심히 곤란합니다.
“큰 부자 이야기”(p.7)에서 저자는 이삭과 바르실래와 히스기야를 들어 성도들은 부자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폅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38개 비유 중에서 재물비유가 16개인데 이는 그만큼 소중하기에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 말로써 밥벌이하는 분들(목사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에게는 뿌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짜깁기의 유혹’입니다.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내용을 교묘하게 연결시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프랭크 바이올라’는 ‘교회가 없다.’라는 책에서 “Clipboard식 설교를 하지 말라.”며 짜깁기 설교에 함몰된 목회자들을 질책했습니다.
저자가 바로 이 유혹에 빠져 있습니다. 즉, 저자는 성경에 기록된 부자들의 경우만으로 논리를 전개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가난한 성도들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와 예레미야와 세례 요한과 사도 바울은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가난했으므로 성도 명단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저자는 전형적인 Clipboard 기법으로 공정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 이야기”(p.8)에서 잠3:16은 ‘생명나무’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이후 본문에 들어가서 잠3:16절의 “그”(her)가 ‘지혜’이며 이는 곧 '생명나무‘라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 단순 해석 자체는 맞습니다. 14-17절까지 “지혜”는 “she or her”로 표기되고 있으며, 18절은 “She is a tree of life…”로 확언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은 그 깊이가 너무 피상적입니다. ‘성경이 나무의 중요성을 어떻게 강조하는가.’에 관한 보다 나은 이해를 담은 책을 소개합니다. ‘조성운’ 전도사라는 분이 쓴 ‘성경에 기록된 나무의 원리’(로고스선교회 刊 )입니다. 비록 완전한 이해는 아니라 할지라도 참고는 될 것입니다.
저자의 의심스러운 사고(思考)를 웅변하는 한 문장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성숙한 부자로 살겠다!” 당신의 친필로 쓴 포스트잇을 이제 지갑에 붙이면 된다. 이것으로 부자로 살 수 있는 대문에 들어선 셈이다.』(p.23).
⇒ 참 영험한 부적입니다!
저자도 자신의 이론의 허망함을 어느 정도는 압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도피로(변명) 마련해 놓는 것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부요’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권한다. 비판적인 안목보다는 수용의 눈으로, 또 내 생각과 다른 생각에도 솔로몬처럼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듣기 바란다.”(p.228).
저자는 자신의 책을 대단한 영성의 책이거나 탁월한 재정관리 지침서쯤으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둘 다 아닐 것입니다. 영성 측면은 앞에서 소개한 ‘조성운’ 전도사로서 대신하고, 재정 측면의 비전문가의 견해만 소개하겠습니다. 외과의사 박경철 씨의 ‘시골의사의 부자 경제학’(Leaders book 刊)입니다. 저자보다 훨씬 전문적인 방책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견해를 주장할 수 있겠으나, 잘못된 이해를 ‘정당하다.’고 부화뇌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목사의 주장이므로 옳겠거니.’라며 무신경하게 대처한다면 참 신앙의 훼손도 장담할 수 없겠기에, 몇 마디 적었습니다. ♣
조심하며 경계하며 진실한 말씀ㅇ를 외쳐야 하지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