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조회 수 903 추천 수 64 2010.07.08 20:27:50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에 살며 ‘유타대학촌’ 교회를 섬길 때였다. 동계 올림픽이 개최된 그 곳은 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함박눈이 소복이 쌓인 추운 겨울, 교회 안은 성가 연습으로 온기가 넘치고, 우리의 찬양은 향기 되어 하늘로 올라 가고 있었다. 무거운 어둠이 짙게 내리고 매서운 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두드릴 때, 찬양 속 ‘불꽃’의 열기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의 얼음장을 살포시 어루만져 녹여주고 있었다. 성가대원들의 힘찬 찬양소리와 함께 한쪽에선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연습이 끝나고 하나 둘 총총히 교회를 떠난 빈 자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한 자매가 급히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 왔다.
“남자 화장실에 이상한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남편과 남아 있던 형제들이 자매들과 아이들을 성전 안에 머무르게 한 뒤 복도로 나갔다. 난 왠지 겁이 났다. 남편의 뒤를 따르며 “경찰을 부를까?” 라고 물었지만 그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 형제들이 교회 안팎을 둘러 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는 복도로 나올 수 있었다. 그 때는 이미 우리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남루한 차림의 한 사내가 남자 화장실에서 허겁지겁 도망치듯 후다닥 주방 뒷문으로 빠져 나간 뒤였다.

놀란 우리는 열려진 남자 화장실 안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화장실 안은 온통 똥칠과 고약한 냄새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침묵의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그것이 짓궂은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에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기 시작했다. 교회는 너른 호수와 잔디가 있는 공원 가까이, 좋은 위치에 있었지만 공원 주변에는 홈리스 피플(homeless people, 집이 없는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아마도 용변이 급한 홈리스가 화장실을 찾아 공원에서부터 교회까지 올라온 듯싶었다. 그런데 마침 남자 화장실 안에 휴지가 넉넉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용변 처리를 위해 손을 사용한 듯, 이 손 저 손에 묻은 대변을 물로 닦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또한 벽에 묻어 있는 산란한 자국들을 보며 그의 몸에 장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변이 묻어난 그의 발자국에도 황급했던 그의 마음이 안쓰럽게 다문다문 찍혀 있었다.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는 동안 어느 누구도 선뜻 그 안에 들어가질 못했다. 그런데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고무장갑을 끼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형제가 있었다. 성가대 지휘자 이상휘 형제였다. 상휘 형제가 똥물이 튀는 것도 모르고 해맑은 웃음으로 찬양을 부르며 물을 뿌리고, 몸을 구부리고 주저 앉아 걸레로 바닥을 닦아 낼 때, 남편과 형제들은 그를 돕기 시작했다.

눈이 쌓인 한 겨울에 상휘 형제는 교회로 오는 차편을 구하지 못해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에서 교회까지 자전거를 타고 40분이 넘는 먼 거리를 달려온다. 어느새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돌아갈 길이 멀고 험한데 그는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차디찬 빙판 위에 사랑의 향기를 남기고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이제 곧 언덕을 올라 내리막 길을 달리며 땀방울과 함께 그의 몸에 배어 있는 고약한 냄새를 떨어버릴 것이다.

그 일 뒤로 화장실 안에는 여분의 화장지를 올려 놓을 수 있는 선반을 달아 놓았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교회 일에 열심을 다 했던 나는 정작 위급하다 여겨지는 순간에 나의 안위를 더 생각했다. 더럽고 추한 내 영혼이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은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에 보이는 냄새 나고 더러운 곳에는 내 손을 뻗지 못하고 내 몸을 낮추지 못했다. 상휘 형제의 행동은 소외된 자들을 향해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고 가깝게 다가 가도록 나를 깨우쳐 주었다.

눈으로 보아 모양과 색깔이 아름다운 것이 있고, 마음으로 느껴 향기가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 밝은 곳에서는 겉모습이 더 잘 나타나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내면의 향기가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백의 기품과 지고지순한 모습을 간직한 백합화는 아름다운 모양뿐만 아니라, 가시에 찔리고 바람에 흔들리며 그윽한 향기까지도 널리 전한다.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백리를 가며, 사람의 향기는 천리를 간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은 사람의 향기는 땅 끝까지 갈 것이다.  

이선우

2010.07.08 21:18:05
*.222.242.101

햐아~ 이상휘 형제님의 사랑의 진한 향기가 여기에서도 맡아지는 듯 하네요.
(목사님, 지난번 모임에 이분도 혹시나 참석하셨을까요?)
정작 제게는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원집사님의 코가 더 부럽습니다.^^

운영자

2010.07.08 22:45:45
*.108.161.181

이 상휘 형제는
현재 미국 동부의 한 미연방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형제에 대한 또 다른 일화를 하나 소개하면,
김웅년 목사의 후배로 들어와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평소 행동거지가 다른 학생과는 달라서
김웅년 목사가 불러다 앉혀 놓고 겁을 주면서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두들겨 맞고 말할래?, 바로 실토할래?"

뭣을 말하라는 것이었겠습니까?
아무래도 목사님 아들 같은 냄새가 나더랍니다.
의롭고 경건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비춰나왔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과 아버지 목사님이 쓰신 살아계신 편지였던 것입니다.

이상휘 형제가 목사나 선교사로 먼저 헌신할 줄 알았는데
어찐 연유인지 재료공학 박사를 취득한 후에 미 연방 연구원이 되었고
겁을 주던 김웅년 선배도 같은 박사를 취득했지만 어찐 연유인지
지금은 목사가 되어서 한국 대전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어찐 연유인지 모르지만 두 분의 길을 아름답게 인도하신 주님을,
어찐 연유인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십자가 은혜를 알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또 과연 우리는 남들 앞에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

김순희

2010.07.10 13:06:42
*.160.176.34

빙판길을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 불며 달려가는 모습, 그 섬김의 향내...
그 향내를 맡는 집사님의 코가 저도 부럽네요.

어찐 연유인지 모르지만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하신 하나님께 죄송스럼은
과연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있는지의 물음에 자신을 돌아보니..ㅠㅠㅠㅠㅠ

정순태

2010.07.11 12:47:37
*.75.152.229

언제쯤 이런 성숙한 믿음을 행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 돌아보고
머리 숙이며 나갑니다..............

joannekim

2010.07.12 12:14:52
*.163.11.23

할레루야 ~ 집사님을 글을 이렇게 볼 수 있다니 너무도 감격 스럽습니다. 목사님께 집사님 글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하루 빨리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들어왔습니다. 이젠 혼자가 아니것 같은 벅찬 감동으로 다녀갑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김유상

2010.07.12 19:05:10
*.170.40.25

유타촌 얘기 들을 때마다 그때 함께 있지 못해 못내 아쉽습니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그때 그 사람들"과 교제 나눌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자매님 기억 속의 상휘 형제 닮은 삶 살도록 간구하며 힘쓰겠습니다.

joannekim

2010.07.13 08:01:37
*.163.11.23

그때 한사람 한사람이 보석이였던것 같아요. 정말 귀한 시간을 함께 했던 것이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원의숙

2010.07.13 22:04:58
*.235.221.149

이 곳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도 다 보석같은 분들입니다.

특히나 제 마음에 예쁜 보석으로 남아 있는 joanne 집사님...
최근의 소식을 통해 제가 느낀 바를 확신한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joanne 집사님은 '섬김의 여인'입니다.
집사님의 섬김의 손길이 향기되어 이 곳까지 전해집니다.

영원토록 우리의 보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
사랑의 열매를 맺는 그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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