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2:10,11 하나님의 사정을 깊이 통달하고 있는가?

조회 수 716 추천 수 13 2011.08.22 23:03:05
하나님의 사정을 깊이 통달하고 있는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0,11)


사람이 왜 하품을 하는지 그 원인이 아직 완전히 판명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통설은 피곤하면 혈관 속에 산소가 모자라게 되므로 그 보충을 하려고 큰 기지개와 함께 심호흡을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그 외의 원인도 많다고 봅니다. 간단한 예로 육체적으로 전혀 피곤하지 않는데도 단지 지루하다는 이유로 하품하지 않습니까?

거기다 희한하게도 남들이 하품하면 자기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됩니다. 심지어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배우가 하품해도 따라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선 그 정확한 원인을 밝혔다고 합니다. 뇌 속의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가 남들이 행하면 그대로 따라 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남들의 슬픔에 같이 울고, 기쁨에 같이 웃게 되는 공감능력(共感能力)도 바로 이 세포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자폐아(自廢兒)와 정상아 두 그룹으로 나눠 하품을 통해 흥미로운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앞 사람이 하품을 해도 따라하는 자폐아들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뇌 속의 거울신경세포가 부족하거나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매우 뒤져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고립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왜 남이 하품하면 따라 하게끔 즉, 모든 인간에게 공감 능력을 허락하셨을까요? 바로 서로 돕고 힘을 합쳐 살라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듯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도록 하나님이 이미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아무리 인생이 힘든 고해(苦海) 같아도 함께 노를 저어야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교훈이나 종교적 계명을 거론하기 이전에 인간 존재의 본질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믿음과 상관없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 관한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각자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의식도 하지 않은 사이에 기쁘고 활력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서로 미워하면 마찬가지로 자동적으로 기분이 나빠지고 힘이 빠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각자의 공감능력에 플러스 시너지 효과를 불러오고 반대로 미워하면 마이너스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원래부터 서로 사랑만 하지 미워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의도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자주 체험하고 깨닫는 이 간단한 사실만 봐도 인간은 결코 우연히 생긴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되, 특별히 당신의 형상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그분의 형상을 닮았다는 뜻은 바로 인간이 그분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뇌 속에 하나님의 품성을 그대로 비춰낼 수 있는 거울세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과의 공감이 온전해지면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또 인간끼리도 바르게 공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인간의 이 서로 돕고 사랑하는 기능은 파괴되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선악과를 범하여 죄가 들어오자 서로 벌거벗었으나 전혀 부끄럽지도 않았던 부부 사이에도 피차 헐뜯기 바빴습니다. 공감능력에 절대적 훼손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비춰내는 거울세포의 거울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이전 같은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 자존심만 세우되 이전 사랑을 아쉬워하는 정(情)과 둘 사이에 낳은 자식 때문에 겨우겨우 부부관계가 유지되었습니다. 아담 이후의 신자를 포함한 모든 부부의 솔직한 실상(實狀)이기도 합니다.  

신구약 성경이 신자에게 일관되게 명하는 두 가지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이 두 계명은 서로 따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는 첫째와 같다고 합니다. 첫째를 제대로 행하면 둘째는 자동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시키지 않아도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 형상을 비춰내는 거울세포가 작동하면 그 빛은 자동으로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간혹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어느 정도 서로 돕고 사랑할 수 있는 까닭도 창조시의 그 형상의 잔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하나님과는 교통할 수 없기에 엄청 부족한 사랑입니다. 실은 자기 남는 것을 가지고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사랑입니다. 간혹 진정한 사랑을 하는 자도 있지만 평생을 두고 일관되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충될 때는 곧바로 공감능력이 상실 해체 됩니다.

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겐 이웃을 사랑하고 돕기보다 시기, 질투, 분노, 저주하는 일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잦습니다. 하나님의 사정이 인간에게 전해지는 것은 차단되었고, 대신에 처음 죄를 인간 세상에 불러온 사단의 사정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의 영혼이 자기를 미혹시키고 있는 어둠의 세력에 공감하는 능력이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를 믿고 따르는 신자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어 하나님의 사정을 통달케 해주십니다. 성령이 우리 영혼 속이 거울신경세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온전히 비춰낼 수 있게끔 회복시켜 주십니다. 또 하나님과 공감능력이 회복되자 인간끼리도 온전한 공감능력을 가지고 참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자가 되었다는 의미와 그 신비를 이해하겠습니까?

신자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본문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선언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정을,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너무나 연약하고 무지무능하며 더럽고 추하기까지 한 우리가 전지전능한 그분의 깊은 것을 통달할 수 있다니 정말 엄청난 영광이지 않습니까? 이에 비할 축복이 과연 어디 있겠습니까? 전 우주를 통 털어도 없습니다.

얼토당토 않는 일 같습니까?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도무지 세상 사람은 믿지도 아니 이해도 안 되는 십자가 구속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지 않습니까? 주는 것 없이 밉던 예수가 이제 그분 이름만 들어도 눈가에 눈물이 맺힐 만큼 좋아졌지 않습니까? 앞으로 남은 인생을 오직 그분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분을 위해서만 살고 싶어졌지 않습니까? 대체 이 일이 우리의 너무나 보잘 것 없었던 지성, 도덕성, 영성으로 가당치나 했겠습니까? 이전에는 솔직히 예수 이야기만 들어도 몸에 두드러기가 솟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구속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을 넘어서 그 비밀이 신비하고도 놀라운 은혜와 권능으로 계속 실현되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 살게 되었지 않습니까?

우리야말로 사실 영적인 자폐아였습니다. 하나님과 전혀 교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하품을 해도 따라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었고, 온갖 이적으로 보호 인도하셨고, 당신의 계시의 말씀을 기록해 남겼고, 마지막으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대신 죽이셨는데도 완악하게 거부했던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자 개인적으로도 예수를 믿기 전까지 얼마나 자주 그분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찾아와서 그 영혼의 문을 두드렸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었기에 그 문을 열어줄 생각도 않았고 실은 두드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인간 사회 안에서의 공감능력인 도덕적 차원에서도 자연히 같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남들이 굶주리던, 슬퍼 울던, 상처 받아 비참에 빠져 있어도, 같이 굶고 울고 한탄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교통되지 않으니 이웃과도 교통될 리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난 이제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정말로 통달할 수 있습니다. 광대하신 그분을 온전히 다 알 수 있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가 참 인간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충분히 거룩하게 살아갈 만한 그분의 뜻과 계획은 다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이미 정답이 다 나와 있습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실천할 수 있는 힘마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현재 영적 실태는 어떻습니까? 현실의 고난과 문제에 파묻혀서 그 해결에만 골몰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영광은 내팽개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이 약속하는, 아니 이미 실현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우리의 특권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뜨거운 믿음으로 간절히 끈질기게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안 된다면 혹시라도 우리 쪽에 큰 허물이 있는 것입니까?

분명히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비밀이라도 통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고난과 문제를 두고 그렇게까지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믿음이 약한 것도, 기도를 끈질기게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즉, 고난을 아직도 허락하고 있는 바로 그 비밀을 하나님의 영을 통해 깨달으려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아가 바로 고난 중에 계속 우리를 놓아두고 있는 것이 바로 그분의 은혜임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 무엇보다도 범사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 완벽하게 섭리되고 있음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자기 인생을 이끄시는 그분의 인도에 어떤 하자도 없음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로 매사를 그분 중심으로만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바로 지식의 근본입니다. 문제 해결해달라고 간구하기 전에 그런 지혜부터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의 고난에서의 구출보다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정말로 통달하고 싶은 소망과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분과 당신의 비밀을 나누면서 그분의 일을 동역하는 것만큼 인간으로서 더 큰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고난 가운데 보이는 것에만 생각이 몰려 영적 분별력이 너무 모자라는 것의 원인 또한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공감하는 우리의 능력에 어딘가 장애가 생긴 것입니다. 또 그래서 기도하기 전에 지난 잘못과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고집과 탐욕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응답을 바로 해주신다고 섣부른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그분과 교감하는 능력을 높여 기도 붕에 당신의 놀라운 비밀에 통달하게 됩니다. 또 그 비밀을 알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나아가 그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지금껏 눈물로 기도하던 문제가 더 이상 고통거리가 아님을 발견하고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8/7/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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