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5:11,12 할례와 거세(去勢)

조회 수 769 추천 수 26 2009.09.20 01:24:42
할례와 거세(去勢)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割禮)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버리기를 원하노라”(갈5:11,12)


초대 교회의 유대파 기독교인들 사이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특이하게도 그 주장의 부당성을 자신이 핍박을 받게 된 이유와 견주어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는 할례를 전하지 않고 십자가를 전했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거치는 것을 전하는 바람에 핍박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로선 또 다른 종교가 하나 생겼구나 하면 그만일 텐데 왜 꼭 핍박을 해야 하는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생래적(生來的)으로  할례에 의한 구원은 좋아하지만 십자가 복음은 이해도 안 될뿐더러 아예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할례에 의한 구원이란 따지고 보면 인간의 공적과 선행에 의한 구원을 뜻합니다. 또 그런 구원을 선호하는 까닭은 하나님에게 잘 보여 복을 받겠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교만이 그런 생각의 근본 바탕이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복을 더 받아낼 수 있어야 공평하다라고 본 것입니다. 반면에 십자가는 인간 쪽에선 아무 하는 일이 없습니다. 너무 싱겁기도 하지만 하나님 쪽에서 은혜와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아무 차별 없이 똑 같이 그것도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할례가 하나님 쪽에서도 공평하고 인간 쪽에서도 매우 당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뒤집으면 나는 남보다 낫고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못한 자들은 당연히 나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잘 하는 자를 잘 대우하는 것은 당신 쪽에선 자비와 긍휼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에게 잘 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사랑은 기계적일 뿐 아니라 그럴 양이면 구태여 하나님이 계실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는 자에 불과합니다.

거기에다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이 전혀 몰랐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 사회의 법과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점수로 따지면 모든 인간은 서로 간에 우월이 전혀 없이 몽땅 빵점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빵점이면 그나마 다행으로 정확하게는 마이너스 무한대의 점수입니다. 쉽게 말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인류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면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구원할 길은 십자가뿐입니다. 복음이 사람들에게 생래적으로 거치는 것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다 관용하면서 유독 예수를 전하면 핍박을 하는 까닭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십자가를 받아들이려면 그 전에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죽기보다 싫은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살인범과 자기는 절대로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는 그 죄수보다 수도 없이 더 살인하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반면에 할례는 자기는 그런 죄수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기에 얼마든지 폼 나게 하나님 앞에 나가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복음이 전해져서 십자가에 바탕을 둔 교회 안에서마저 또 다시 그런 논쟁이 벌어졌고 다시 할례의 구원으로 돌아가는 자들마저 있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단순히 믿으면 구원을 준다니까 믿어보자고 덤비다가 어쩐지 시시하고 뭔가 빠진 것 같다 싶어진 것입니다. 여전히 원죄 하의 생래적 모습에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자들입니다. 나는 그래도 남들보다 낫다는 자존심으로만 살아온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지정의로는 그 자존심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정의를 버티고 있는 바탕이 자존심이며 그 지정의가 작동되는 원리도 자존심인데 어떻게 자기 죄가 마이너스 무한대라고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에게 지정의와 영혼을 주신 하나님이 다시 그 지정의의 바탕과 작동원리를 뒤집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거듭남이 없는 자는 할례가 정당해보이며 십자가는 미련하고 거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십자가는 스스로의 구원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이므로 믿음의 통로가 아니고는 그 구원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습니다. 요컨대 바울은 만나는 모든 자들에게 “너희는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라고 선포하고 다녔기에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향해 바울이 야단치는 그 다음 말은 더 정곡을 찌릅니다. “스스로 베어버리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흔히 이 말씀을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이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는데 있어서 완전히 무력화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만 단순하게 해석합니다. 당시 갈라디아 지역의 여신 ‘아티스 시벨레’ 숭배 의식 때에 이교 제사장들이 거세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거세한 사람이 생식 능력을 완전 상실하듯이 유대주의도 더 이상 뻗어나가지 않기를 바랐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도 해석이 됩니다만 바울은 아주 냉소적으로 풍자한 의미로 비유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유대주의자들의 할례 주장이나 이방 제사장들이 거세하는 풍습의 근본적인 의미는 같다는 것입니다. 즉 각자가 믿는 절대자의 명칭이야 어떻게 되었든 신에게 인간의 치성을 보이면 그 정도에 따라 신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또 그래야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주의 거짓 교사더러 “너희들이 할례를 그렇게 주장한다면 이교도들의 거세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느냐? 그럼 차라리 하나님에게 더 큰 열심을 보이기 위해 할례보다 더한 거세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한 셈입니다.

갈멜산에서 몸에 자해를 하며 우상 신에게 치성을 드린 850명의 이교도 제사장들과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 바라 본 엘리야가 단독으로 대결을 벌린 것이 신약시대에도 되풀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동일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성경이 할례는 잘못이고 십자가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엄연히 말하고 있는데도 소위 기독교인이라는 자들이 십자가에 외에도 길이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으며, 오히려 십자가만을 주장하는 자를 성경을 잘못 해석했다고 몰아세웁니다.

인간 구원의 길은 인간 스스로의 공적으로 하나님의 합격점에 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할례와 도저히 인간 스스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합격점에 들 수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바란다고 엎드리는 십자가, 둘 뿐입니다. 그럼 하나가 맞으면 다른 하나는 분명히 틀린 것입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법은 인간의 영원한 구원의 문제에서만큼은 절대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기독교 외에는 할례의 기독교든 어떤 명칭의 기독교이든 그것마저 포함한 나머지 모든 종교들, 즉 복음과 율법의 종교 두 개로만 대별될 뿐입니다.

십자가는 아직 성령의 간섭을 받지 않은 자연인으로부터는 항상 핍박을 받게 마련입니다. 자기들더러 죄인이라고 하는 지적을 좋아할 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십자가의 기독교는 숫자가 줄고 있고 할례의 기독교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핍박이 싫고 사람들의 거치는 것이 되기 싫어서 교회들이 하나님은 멀리하고 사람 쪽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을 향해 지금도 성경은 “그럴 바에는 차라리 거세나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5/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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