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진짜 이유

창세기 강해(37)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2-24)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인간

 

하나님은 당신을 거역하고 당신을 대신하여 에덴에서 왕 노릇하려던 아담과 이브에게 각기 엄중한 형벌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가죽옷을 지어 입혔는데 이는 살펴본 대로 양으로 그들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로 삼았던 속죄 제사였다. 최초인간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받은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이라고 했다.(히11:26) 하나님이 가데스바네야에서 당신께 거역한 이스라엘로 광야를 방황하는 벌을 주었으나 반석의 생수로 지키셨는데 그 반석을 바울은 그리스도라고 표현했다.(고전10:4) 광야 방황하는 내내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유대인은 물론 기독교인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당신의 때 즉, 십자가 구원을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서 기뻐했다고 말했다.(요8:56)

 

이처럼 구약시대에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 시대와 장소와 민족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그분은 질서의 하나님이지 혼잡의 하나님이 아니다. 구원의 길이 여럿이라면 인간은 영적으로 무지해서 제대로 깨달을 수도 없다. 구원의 길은 자명하고 간단하고 하나다. 선악과 금령에 드러난 그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 사망에서 건질 수 있는 길은 아담의 가죽옷에서 보듯이 오직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뿐이다.

 

하나님은 지금 범죄 한 아담과 이브 각자에게 합당한 조치를 취한 후에 그들이 살았던 에덴동산을 폐쇄했다. 최고로 좋은 것을 주었다가 말 잘 안 듣는다고 화가 나서 빼앗은 것이 아니다. 그분을 거역 배제했던 인간이 자초한 결과다.

 

본문 22절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생명나무의 실과마저 따먹고 영생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산을 폐쇄하는 목적이 인간이 또 다시 당신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을 예방하는 차원이었다. 생명실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도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인간 쪽에 잘못이 있음을 명확히 밝혔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설명은 참 어렵다. 성경 중에 가장 난해한 구절로 신학자 간의 의견도 분분하다. 인간이 잘못해서 동산에서 내어쫓겼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겠다. 그러나 그 범죄와 생명나무와 영생이 무슨 관계인지?, 그 이전에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특별히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면 좋게 된 것인데 왜 벌을 주는지 언뜻 이해가 안 된다.

 

오늘 한 번에 둘 다 살펴볼 여유가 없다. 우선 하나님이 실낙원의 일차적 직접적 원인이라고 든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의미부터 알아보자. 이 주제는 창세기 강해 23에서 간단히 다룬 적이 있어서 복습하고 보완하는 차원에서 설명하겠다.

 

우리 중 하나 같이.

 

정말로 인간의 도덕적 성찰이 높아져 하나님과 동등한 수준이 되었다면 그분이 싫어하고 벌 줄 리는 만무하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지는 것, 본문으로 치면 선악을 알게 되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해서 선악과를 못 먹게 한다는 것은 누가 한 말인가? 바로 사탄이 이브를 유혹할 때에 내세운 거짓 속임수였지 않는가? 하나님이 사탄과 동등할 수는 결코 없다.

 

대신에 성경은 모든 신자더러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라고 명한다.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는데도 문제 삼았다면 당연히 그 의미는 부정적인 것이다.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간단한 방식이 있다. 범죄 전과 후를 비교해서 인간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보면 된다.

 

범죄 전에는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2:25) 서로 잘못하거나 상처주거나 오해하는 것조차 없어서 감출 것이 하나 없이 순전히 사랑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왜 선악과 금령을 어겼는지 추궁하자, 이브는 사탄이 유혹한 탓이라고 변명했고 아담은 또 이브가 주어서 먹었다고 했다. 둘 다 자기 잘못은 전무하고 상대 탓이라고만 했다. 심지어 아담은 하나님이 이브를 돕는 배필로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나님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시쳇말로 내가 바람피우면 아름다운 로맨스요, 남이 그러면 추한 불륜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상태가 된 것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자면 자기 눈의 들보를 보는 데는 장님이요, 남의 눈의 티끌을 끄집어내는 데는 전자현미경이 되었다. 이처럼 치사하고 비겁하게 바뀐 모습을 두고 성경이 하나님처럼 되었다고 설명할 리는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셨다.(창1:26,27) 완전한 일치는 아니고 비슷하게 만들어 일부가 닮았다는 뜻이다. 반면에 본문은 “우리 중의 하나”(22절)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성령의 오심을 약속하면서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당신과 일치하지만 위격만 다르다는 의미로 “또 다른 보혜사”(요14:16)라고 표현했다. 본문도 같은 어법으로 인간이 또 다른 하나님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라는 복수로 표현했으므로 삼위 하나님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범죄 한 잘못이 너무 큼을 강조하려고 엄청나게 과장한 표현이 아니다. 아주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다. 단 “선악을 아는 일”이라고 그 일치되는 범위를 제한시켰다.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과 방식에서만 하나님과 정말로 똑 같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판단하는 것은 모두가 선이다. 아니 당신 자체가 100% 완전한 선이기에 선(善) 외에 어떤 악도 당신께서 나올 수 없다. 지금 아담과 이브가, 또 그 후손인 인간이 선악을 아는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모든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기에게 달렸다. 자기 생각이 전부 선이다. 자신 전체가 선이라고 간주한다. 자기에게서 잘못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주변 사람과 여건이 자기 뜻에 위배되면 바로 그것이 잘못이다. 서로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부부 사이에도 자기 자존심 세우려고 자식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이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전부 배우자 탓으로 돌리는 것이 작금의 실태다. 범죄 전의 창세기 2;25의 상태와 정반대다.

 

하나님이 에덴에서 쫓아낸 이유

 

그런데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여 항상 자기만 높이고 남을 우습게 본다는 것이 인간의 아주 큰 문제임은 믿음이 없이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도 존경, 관용, 최소한 다름을 인정하라고 타 종교에서도 가르친다. 알다시피 천주교가 최근 “내 탓이오!” 운동을 가장 활발히 벌리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바가 그 정도로 그치면 너무 싱겁지 않는가?

 

물론 우리 개신교인들도 이기적 생각을 버리고 다른 이를 존경까진 못해도 그들의 허물을 용서는 해야 한다. 잘못한 일 있으면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주고 또 그 이전에 자기 잘못부터 돌아보고 회개해야 한다. 이는 평생 동안 싸워야 할 믿음의 훈련이다. 그러나 성경이 오늘의 본문이 즉,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는지 제대로 알고 그대로 해야만 그런 훈련도 성공할 수 있다.

 

타종교인과 불신자들은 성경공부를 해본 적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모든 인간이 남 탓만 하는 것이 인간의 큰 하자라고 의견에 일치를 보았다. 무슨 뜻인가? 모든 인간의 생각과 본성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 그것은 동일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처럼 윤리적으로 선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도 선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뜻이 된다. 비록 죄로 인해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그 닮은 형상은 합리적인 사리분별 능력과 도덕적 양심의 형태로 그런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남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이라는 운동도 전개할 수 있는 것이고 아주 선한 일이다.

 

문제는 이는 어느 누구나 분별이 가능한 외적으로 보이는 현상에 불과하다. 인간이 남의 탓만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이 인간의 태생적 하자에 의한 것임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내 탓이오!”라는 운동에 열심을 내는 근거는 나는 나를 고칠 수 있고 또 내가 고치겠다는 것이다. 그럼 엄밀히 말하면 여전히 나는 선하다는 뜻이지 않는가?

 

반면에 성경은 인간의 그런 생각 자체가 틀렸다고 선언한다. 당장에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자기 허물을 가리기에 바빴다. 그럼으로써 어쨌든 상대의 허물도 보지 않게 된 셈이다. 이때는 분명 아담과 이브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서로 도왔을 것이다. 그래도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져 나무 사이에 꽁꽁 숨었지 않는가?

 

본문을 다시 보라.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에 당신같이 된 그 상태로 영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부정적으로 남 탓만 하는 그런 상태에서 건져주시겠다는 뜻이다. 죄에서 구원하여 거룩하게 즉, 긍정적 의미로 정말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써 그분 형상에 따라 선악을 판단하는 자로 바꿔주실 목적으로 에덴동산을 폐쇄한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인간에게 절대로 손해가 아니다.

 

도덕적 접근이 해결책이 아니다.

 

바꿔 말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기에 온갖 죄악과 고난 속에 살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신자를 전도하다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인간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고 온갖 모순과 불합리가 성행하고 고통과 상처로 괴로워하는데 그렇게 만든, 최대한 양보해도 그대로 묵인하고 있는 하나님은 싫다고 한다. 믿을 필요도 없다고 반발한다.

 

인간은 범죄 직후에 하나님 탓이라고 반발했던 아담의 수준에서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했다. 간단하게 상식적으로 판단해보라. 모든 인간들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내 탓이 아니라 남에게 책임을 떠밀고 있다. 나는 잘못한 것 하나 없다고 한다. 예컨대 내가 뇌물을 받치고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했어도 인간관계를 잘 쌓았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순진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 자는 병신이라고 말한다.

 

이런 판국에 어찌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세상이 이렇게 악해진 것이 절대로 하나님 탓이 아니라 인간 탓이다. 에덴에서 쫓아낸 것도 구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런 사랑의 하나님을 경배는커녕 두려워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 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과 원수 된 인간임에도 그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당신이 만드신 최고 걸작인 에덴동산을 폐쇄하고 선악과 생명나무를 치웠다. 당신의 최초의 자녀들을 그곳에서 나가게 해서 엉겅퀴와 가시덤불 속에, 말하자면 인간끼리 남 탓만 하는 와중에 살게 하셨다. 쫓아내기 전에 이미 당신만의 구원계획(창3:15)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내 탓이 아니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교만하다는 차원으로 접근하면 해결되지 않는다. 불신자들이 자기 생각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으니 하나님이 틀렸다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도 내 탓이 아니라 하나님 탓한다. 자기를 하나님보다 높인 것이다.

 

자기를 너무 높이다 보니 까마득히 밑에 있는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이 아예 없는 양 치부하고 산다. 차츰 없다고 착각하다가 아예 없다고 믿는다. 뇌물로 부정축재를 해도, 자기만 로맨스 같은 불륜을 저질러도 그때, 그때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형통하고 신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 벌을 주기보다 그런 상태에서 건져주려고 태초부터 마련된 구원계획을 실현 중임을, 당신만의 자비로 참으시고 구원을 주시려는 것임에도 그 사실은 전혀 모르고 아예 관심도 없다.

 

인간이 하나님을 다시 자신의 온전한 주인으로 자기중심에 위치시켜 겸손하게 항복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인간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폐쇄한 이후로, 그전에 아담이 범죄 한 이후부터 영원토록 인간에게 던지는 메시는 오직 하나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여기서 아담은 물론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다. 에덴을 폐쇄하기 전이나 후나 당신의 뜻은 하나 변한 것 없다.

 

“인간들아 대체 너희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있을 곳은 그곳이 절대 아니다. 남의 탓만 하다못해 하나님 탓만 하다가 아예 하나님이 없다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정녕 죽는다. 다른 모든 것을 몰라도 이 진리 하나만은 알아라. 선악을 분별함에 네 중심으로 기준 삼지 말라. 오직 성경에 기록된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에만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정녕 죽음이요, 그래야만 정녕 생명이자 너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타락한 상태로 영생하는 것을 막으려면?

 

그럼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폐쇄하면서까지 인간을 타락한 상태로 영생하는 것을 막으려고 예비 해놓은 조치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생명나무 실과를 먹든 안 먹든 사실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상태로 영생하는 것을 막는 조치일 뿐이지 구원의 방도는 아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법을 고쳐줘야 한다. 하나님 같이 알되 부정적이 아닌 순전한 방식으로 하도록 바꿔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자기만 옳다고 완전히 굳어진 상태에서 하나님까지 완전히 부인 제거한 상태이므로 우리가 전도하면서 체험했듯이 어떤 말을 해도 씨가 먹히지 않는다. 본문대로 인간이 하나님 중의 하나 같이 되었기에 다시 인간 본연의 상태로 돌려야만 한다. 그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은 참으로 신기하다. 인간이 하나님 중의 하나가 되었으니 이젠 거꾸로 하나님이 인간 중의 하나가 되는 방안을 택했다.

 

그래서 인간에게 인간의 잘못이 어디 있는지, 인간이 겪는 비극 불행 모순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철저하고도 가시적 방안으로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 아니 하나님의 역설(paradox)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인간은 자기가 저절로 태어났고, 자기가 저절로 좋아졌고, 특별히 자기가 잘나서 착한 줄로 착각하고 있다. 하나님으로선 이런 인간들에게 진짜로 온전한 100%의 순수한 선이 어떤 것인지 반드시 깨닫게 해주어야만 한다.

 

불신자들 중에는 자기를 희생하며 불쌍한 이웃을 성심성의껏 돌보는 겸손한 자들도 많다. 그런 자들에 비하면 신자야말로 위선적이고 뒤로 호박씨 까는 자라고 비난 받아 싸다. 실제로 내 탓이오 운동은 기독교 밖에서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소외계층을 섬기고 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다른 종교도 관용으로 품어준다.

 

그러나 그저 거기까지 뿐이다. 오해는 말아야 한다. 그렇게 행하는 것은 분명히 선으로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선하다고 칭찬 받아 마땅하기에 그 사람은 분명 선한 인간이자 계속해서 선한 인간으로만 남게 된다. 그 사람의 문제일 뿐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죄인이나 악인이 되어 버린다. 선을 베풀 능력이 부족해서 선을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선을 행하지 못하니까 실질적으로는 도덕적으로 열등한 자가 된다.

 

아무리 보상을 바라지 않고 이름 없이 평생을 수고해도 그 사람은 세상사람 앞에선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끝까지 선한 자로 남아 있게 된다. 역으로 따지면 계속해서 비천하고 가난하고 죄 중에 있는 자들은 그 선한 자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잘못한 탓이 된다. 자기는 분명히 선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는 본문 식으로 말하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 같이 된 상태로 죽을 때까지 가는 즉, 영생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는 자신이 철저히 깨어져서 죄인의 자리에까지 내려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니 예수 십자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한다. 물론 그런 자도 자신이 완전한 의인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평균 이상이기에 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그런 선을 평생 실천했으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것 하나 없다고 큰소리친다. 자기 심령의 가난함에 대해선 한 순간도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와 동일하게 하나님을 제거하여 그분이 부재하는 인간 사회의 기준으로만 선하다. 마지못해 인간사회에서 통용하는 식으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아무도 없다는 점만 시인한다. 이야말로 인간이 선악을 분별함에 자기 생각대로 한다는 가장 여실한 증거다.

 

올 한해를 마감하며

 

반면에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순전한 선은 이와 전혀 다르다. 그렇다고 단순히 티끌 하나 없이 악과는 절대 공존하지 않는 완전히 절대적 독단적 폐쇄적 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 용어로 율법적 선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흉악한 죄인이라도 예컨대 십자가상의 강도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서 용서하고 사랑해 주는 위에 영생까지 주는 선이다. 단 선악과 금령대로 하나님 품으로 되돌아오기만 하면 하늘로 옮겨진 에덴낙원에서 당신의 보좌 앞에 세워주신다.

 

인간의 생각으론 말도 안 되는 이런 엉터리는 없다. 선악을 여전히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악인은 물론 원수까지 인정해주는 일은 하나님만이 판단 시행할 수 있는 선이다. 어떤 악인도 하나님 안에선 선인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만이 베푸시는 그분의 선이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시기에 그분이 행하는 일은 무조건 다 선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 그분이 하나님 중의 하나 같이 된 천하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 중의 하나같이 되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본체이면서 그 동등 됨을 취하지 않았고 종의 형체를 가져 십자가에 죽기까지 철저히 낮추셨다.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창녀, 세리, 죄인, 고아, 과부, 불치병자, 불구자, 귀신들린 자들고 교제했다. 당신께선 죄가 전혀 없지만 죄인의 자리에 함께 섰다. 인간의 선으로 인간 선한 자의 모습으로 그들을 선하게 도우려는 뜻이 아니었다. 인간사회에서 평생 남을 도와서 선을 실행할 여유가 전혀 없기에 남에게 도움만 받아야 하는 인간사회의 죄인들의 아픔과 상처와 고뇌와 슬픔을 실제로 함께 겪고 나누려고 온 것이다. 그들이 울 때 함께 울면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려고 온 것이다.

 

주님은 인간이 겪는 고통과 문제가 단순히 도덕적 결함 때문이 아님을 깨우쳐 주려 오신 것이다. 남 탓만 하고 내 탓은 하려들지 않는 근본 원인이 인간 심령에 100%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등을 짐으로써 하나님의 선을 공급 받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내 탓이오 운동도 성공하지 못함을 제발 깨달으라는 것이다. 의인으로써 그렇지 못한 자를 도와선 인간사회 갈등은 절대 해결되지 못하며 똑 같은 죄인끼리 눈물과 고통을 함께 감당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을 자기 심령에서 밀어내고 죄에 찌든 인간 양심으로는 행하는 윤리적 분별력은 너무나 불완전하고 부족할 뿐이다. 하나님 그분을 심령의 중심에 모셔야 한다.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 같이 되지 말아야, 즉 판단 기준을 자기 생각으로 삼지 말고 오직 성경에 계시된 그분 뜻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 중의 하나 같이 된 십자가는 기독교, 아니 인류역사 최대의 역설이다. 그런데 그 역설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 역설은 바로 본문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에덴에서 쫓아내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이해하겠는가?

 

이번 주는 2015년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다. 정말로 올 한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웠는지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중에 어느 단계에 도달했는지 점검해야 한다. 내 탓이오 훈련과 실천을 얼마나 했는지 점검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그보다는 예수 십자가에 드러난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했는지 봐야 한다. 예수님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한 것처럼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마디로 자신을 철저하게 깨뜨려 죄인의 자리에까지 내려간 일이 얼마나 많은지 점검해야 한다. 그럼 자연스레 죄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는데 과연 얼마나 그렇게 섬겼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여겨지면 다가오는 새해의 계획을 바로 그 일에 충성하겠다고만 세우면 된다. 종교적으로 거창하고 신령한 계획을 세울 필요 없다. 바로 이 일에만 충실하면 새해 계획으로 충분하고 차고 넘친다.

 

12/27/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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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2:31-34) 사탄에게 제자들을 넘겨준 예수님 성탄절기 설교 (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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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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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1:1-4)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1]

(학1:1-4)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2021 신년주일 설교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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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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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0:25-32) 정말로 바보처럼 살고 있는가?

(창30:25-32) 정말로 바보처럼 살고 있는가? 야곱 바로 알기 (14)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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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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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8:15-20)합심하여 기도해 무엇이든 풀어라.-기도시리즈(11) [1]

(마18:15-20) 합심하여 기도해 무엇이든 풀어라. 기도 시리즈 (11)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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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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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1-3)소명을 붙들고 기도하지 못해도-기도시리즈(15-완)

(창12:1-3) 소명을 붙들고 기도하지 못해도 기도 시리즈 (15- 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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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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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을 단물로 너희가 바꾸어라.(출애굽기강해#33-출15:22-27)

쓴물을 단물로 너희가 바꾸어라. 출애굽기 강해 (33)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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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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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몰랐던 성탄절의 의미 (민35:9-15)

미처 몰랐던 성탄절의 의미 성탄주일 설교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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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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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7:21-25)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겨라.-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3)

(롬7:21-25)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겨라.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3)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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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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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2:8-16) 어떤 신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가? [1]

(룻2:8-16) 어떤 신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가? 룻기 강해 (6)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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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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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6:14-18) 목사와 교인이 함께 망하는 지름길

(눅16:14-18) 목사와 교인이 함께 망하는 지름길 돌아온 탕자 시리즈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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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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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0:15-20) 교회에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가?

(신30:15-20) 교회에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가?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3)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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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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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하나님의 신호등을 무지개색으로 바꿔라.(민수기강해#6-민9:15-20)

(민9:15-20) 올해는 하나님의 신호등을 무지개색으로 바꿔라. 구약성경 강해 (16) / 민수기 강해 (6)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어되 항상 그러하여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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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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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보다 이성의 믿음을(출애굽기강해#66-출35:30-36:1) [1]

열정보다는 이성의 믿음을. (출35:30-36:1) 출애굽기 강해 (66)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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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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