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당신의 영원한 기업이 되어 있는가?

창세기강해 (75)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15:7-17)

 

 

거짓말쟁이 하나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서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 어떤 위험에서도 건져주시는 방패 되시는 하나님은 당연히 믿었다. 나아가 인간적으로 100% 불가능했던 아들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인간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해주셨다는 것은 하나님 당신을 주신 것과 같다. 따라서 당신을 상급으로 주시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칭의 구원의 핵심이었다.

 

본문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상급이 되어주신다는 약속이 더 확장되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가나안 땅을 소유로 삼아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트럼프 같은 부동산 재벌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실제로도 이 약속은 어긋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땅이 하나도 없었다. 창세기 23장에 따르면 아내 사라가 죽자 묘지로 막벨라 굴을 자기 돈을 주고 산 것 외에 평생 동안 자기가 소유한 땅은 하나도 없었다. 유일한 부동산이 굴로서 무덤 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도 없었다.

 

집에서 사병을 사백여명 데리고 있고 그들 가족까지 함께 기거해야 한다. 목초지 농경지 장막 터 등 아주 넓은 땅이 필요했다. 최근에 아브라함은 최초의 세계대전에서 최후 승리자가 될 정도로 세력이 당당해져서 이미 땅을 점거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이 묵인해 준 것이지 그의 소유는 아니었다.

 

가나안 땅에 처음 발을 디딘 10년 전만 해도 멸시를 받아 산꼭대기에 겨우 장막을 쳤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그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그만큼 신실했고 권능이 넘쳤음을 입증한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땅을 갖지 못한 채 죽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왜 이런 약속을 하셨을까? 하나님이 거짓말 할 리는 만무하다. 그럼 눈에 안 보이는 하늘에 예비 된 더 아름다운 장막을 주시겠다는 약속인가? 히브리서 11:13-16 말씀대로 아브라함더러 이 땅은 어차피 나그네의 삶이므로 하늘의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라는 권면인가?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이 땅을 업으로 삼을 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고 증거를 달라고 요청했다.(8절) 천국을 주신다는 뜻이라면 증거가 따로 필요 없다. 아니면 바울처럼 입신하여 삼층천을 갔다 오는 체험을 시켜야 하는데 그런 일이 없었다. 분명히 현재 점거하고 있는 가나안 땅을 완전한 소유로 바꿔주겠다는 약속이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인품이나 믿음에서 우리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그도 성정이 우리와 동일한 연약한 인간이었다. 하나님이 친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듣자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무엇이었겠는가?

 

본인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만 다녔다. 가는 곳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을 쌓았는데 다음 행선지를 지시 받는 절차였기도 했다. 그는 주님의 지시대로 이리저리 옮기며 장막에 주거했다. 문자 그대로 나그네 같은 삶을 살았다. 이제 노년에 얻게 될 아들은 그런 고생하지 않고 한곳에서 정착해 안정된 생활하기를 바랐다.

 

나아가 우르를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 문제가 하나 있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고 아들마저 없었다. 이러다 우리 가문이 자기 대에서 끊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미안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히브리인들은 동양적 사고를 지녔다. 구약 역사서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로 “왕들이 열조의 무덤에 장사되었다”는 것이 있는데 왕으로써 업적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렇지 못하면 왕으로 자격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가족묘지용으로 구입했다. 사라와 자기와 이삭이 함께 묻혔다. 나중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아버지 야곱이 애굽에서 죽었으나 할아버지 아브라함 곁에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했고 그대로 실행되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금 이왕에 아들을 주고 후손까지 창대케 해준다고 약속했으니 그들은 더 이상 유랑민으로 지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가문이 부흥된다는 확실한 증거를 요구한 것이다. 미국에 이민 와있는 1세들은 아브라함의 이 고민과 요구가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우리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완전히 떠났다. 항상 가문과 조상의 연결고리가 끊긴 것 같다. 뭔가 내 실존의 뿌리가 잘려나간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저는 차남이이라 이민 올 수 있었는데 장남이었다면 이민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부친은 20여 년 전에 작고하셨고 장남이자 문중의 일을 도맡아 했던 형님도 작년에 돌아가셨으니 더더욱 그런 기분을 느낀다. 제가 이민 올 때에 형님이 족보와 문중역대기를 주었다. 이국 땅 미국에서도 네 뿌리를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민 1세들이 대체로 영주권은 취득하지만 한국에 재산도 없으면서 시민권 신청은 주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 않는가? 미국생활 내내 이방인으로서 물에 기름 뜨는 듯 소외감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야 할 2세 3세들은 우리와 달리 미국 주류사회에 굳건히 자리 잡길 바란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는 후손들이 완전히 미국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썩 내키지 않는 마음도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7절의 약속을 다시 보라. 개역성경은 ‘업’, 개정판 ‘소유’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생존과 생업의 기반이라는 단순한 뜻이 아니다. 원어는 유산과 상속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대대손손 물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마음속 깊이 혼자만 품고 있던 갈등,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가문을 부흥시켰으면 하는 소원마저 하나님이 아시고 해결해 주시겠다고 한다. 본문 13-16절에서 어떤 약속을 하시는가? 후손들이 하늘의 뭇별처럼 창성해져서 결국은 사백 년 후에 큰 재물을 얻고 이 땅으로 돌아와 정착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특별히 15절에선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라고 했다. 조상들이 묻힌 바벨론 땅이나 아비 데라가 묻힌 하란에 묻힐 것이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가문이 네 대에 끊기지 않고 오히려 더 부흥시킨 선조로 기억될 것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을 믿음의 선조로 존경한다는 뜻이다. 또 그들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자기와 자기 후손에게도 미치길 소원한다는 것이다.

 

축복인가? 저주인가?

 

문제는 13절의 약속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고 그들은 네 자손을 사백 년 간이나 괴롭힐 것이라고 했다. 이는 축복의 약속인가? 아님 저주의 약속인가? 아브라함의 고민을 덜어준 것인가? 더 보탠 것인가?

 

아브라함 본인은 이방에 객이 되어 지난 10 여년을 고생했다. 이제는 가나안 땅 어느 누구도 무시 못 할 정도로 이름이 창대해졌다. 그들이 오히려 자기를 섬길 판이다. 그런데 후손이 다른 나라의 노예가 되어 혹독한 괴로움을 400년이나 당한다고 한다.

 

먼 후대의 일이지만 유다가 하나님을 거역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고생했지만 70년 만에 풀려났다. 자기 후손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 않는가? 차라리 애초에 자기에게서 생산이 불가능하기에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겠다는 생각이 더 나았지 않는가? 실감나게 비유하자면 여러분의 2세 3세들이 오래 전 미국 남부의 흑인노예처럼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청천벽력 같은 예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알라”(13절)고 먼저 확고하게 다짐부터 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방패이자 상급이 되어 주겠다는 약속이 바로 이런 저주와 다를 바 없는 약속이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 때부터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창15:1)고 전제한 것이다.

 

아브라함으로선 자기에게 패배한 4개국이 연합해서 다시 쳐들어올까 염려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가문의 부흥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하나님에겐 그런 일들은 전혀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후손이 4백년 후에는 노예가, 물론 노예가 되는 시점은 그보다 훨씬 앞섰지만, 될 것까지 미리 포함해서 두려워 말라고 다짐한 것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알라”(13절)고 다짐한 말씀의 ‘반드시’는 선악과 금령을 어기면 “정녕 죽으리라”고 명했을 때의 ‘정녕’과 같은 의미다. 그만큼 확고부동한 계획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나아가 실제로 죽음의 맹세 의식까지 거행했다.

 

아브라함이 이 땅을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것을 무엇으로 보장할 수 있느냐 따졌다. 하나님은 당시 중근동 지역에서 계약체결 후에 준수할 것을 다짐하는 관습을 행했다. 계약 당사자들이 동물 제물을 반으로 쪼개서 양쪽으로 늘어놓은 사이를 지나간다. 새는 둘로 가르지 않았는데 몸체가 작았기 때문이지 별다른 의미는 없다. 계약을 어기는 자는 동물 제물과 같은 신세 즉,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뜻으로 목숨 걸고 계약을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쌍무계약과 주종계약

 

당시 두 종류의 계약이 있었다. 첫째는 쌍무계약(雙務契約)으로 계약 당사자의 자격 신분 능력 등이 동등한 경우로 두 당사자가 제물 사이를 함께 지나갔다. 지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약속했다. 사래의 태가 죽은 줄 알고 있었기에 아예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일개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과 자격과 신분에서 절대 동일한 위치에 설 수 없다.

 

또 다른 계약 형태가 있는데 주종계약(主從契約)이다. 예컨대 노예가 주인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의식이다. 이런 경우는 하급 신분의 사람 혼자만 제물 사이를 통과한다. 본문의 하나님의 약속을 비유하자면 왕이 신하에게 네가 평생토록 나에 대한 충성에 변함이 없다면 가나안 지역을 네 후손에게 영지로 하사하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그럼 충성을 맹세할 당사자는 당연히 신하이지 왕이 아니다.

 

반면에 왕은 그 약속에 담보나 보장을 따로 걸 필요가 없다. 말만으로도 충분하다. 왕이라는 신분 자체가 권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고 왕더러 증거를 내어 놓으라고 따지는 신하는 아무도 없다. 그랬다간 왕에게 불충 모욕을 넘어서 기분 나쁘면 즉결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

 

지금 완전히 그런 판국인데도 하나님이 혼자서 제물 사이를 지나갔다. 그 의미는 어폐가 있는 표현이지만 하나님 당신께서 죽는 한이 있어도 이 약속을 꼭 지킨다는 것이다. 당신의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이 아브라함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아브라함의 반응이다. 이민 2세 3세가 미국의 노예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확실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사랑은 흔히 말하듯이 “내리 사랑”이다. 제가 할아버지가 되어보니 손녀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정말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정작 관심은 여전히 두 아들에게 가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백 년 후의 후손들이 창성하게 이 땅으로 돌아오는 것에는 정작 관심이 덜했을 것이다. “네 자손”(13절)이라고 말했는데 아들인지 몇 대 손자인지 구분이 없다. 히브리 어법상으로는 아들도 손자로, 후손도 아들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아들인 이삭부터 노예로 팔려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러분은 몰라도 저 같으면 당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역이민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저주나 다름없는 이 약속을 믿음으로 순종했다. 이어지는 16:1에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을 가지려 오래 동안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종 하갈을 대체 방안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는 노예로 팔려갈지 모르는 아들을 낳으려고 노력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상급이라고 말로는 자주 고백하고 또 그대로 믿는다. 그러나 반드시 행동으로 그 믿음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헛것이다. 아주 잘 봐주어야 종교적 지식일 뿐이다. 아브라함은 비록 증거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증거를 받자 그대로 순종했다. 하나님이 자기 전부를 주심을 확인하고 그도 자기 전부를 그분에게 드리는 믿음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인 것이다.

 

너무나 소름끼치는 증거

 

아브라함이 큰 부자가 되는 동안에 쌍무계약을 여러 번 체결했을 것이다. 또 집안에 종들이 있었을 테니까 주종계약도 맺었을 것이다. 구약성경에 일일이 기록은 되지 않았지만 그런 의식을 거행했을 것 같은 경우는 수도 없이 나온다. 예컨대 애굽에서 바로와도 다시는 애굽으로 오지 말라는 조건으로 큰 재물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나님으로 상징되는 횃불만 제물 사이로 통과했다. 그런 계약에 익숙한 아브라함으로선 하나님이 정말로 당신을 걸고 보증한다고 절감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 약속을 얼마나 엄중하게 여기는지 두말할 필요 없이 깨달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래서 미리부터 반드시 알라고 강조했다는 점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또 그래서 처음부터 하나님이 두려워 말라고 다짐했는데 이런 점까지 배려한 말씀이었다고 깨닫고는 더더욱 두려워졌을 것이다.

 

반드시 자기 혼자 지나가야 하는 종주계약을 하나님이 지나갔다. 이는 계약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브라함 쪽에서 그 실행에 개입하거나 기여할 부분이 전무했다. 하나님 쪽에서의 일방적인 언약이었고 은혜였다. 아브라함이 준행할 의무는 단 하나 없었다. 실제로 그의 후손들이 이방인의 노예가 되겠다고 스스로 자청할 리도 없다. 나아가 사백 년 후의 일에 자기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도 그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만 빼고 말이다. 정확히 말해 요구힌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그렇게 하면 아주 기뻐하는 일은 하나 있다. 바로 당신의 약속에 대한 순전한 믿음이다.

 

종주계약인데도 하나님 혼자 지나가셨다. 하나님 그분이 바로 노예라는 가장 비천한 신분의 자리에까지 스스로 내려오셨다는 뜻이며 그 점을 아브라함이 못 깨달았을 리 없다. 내가 죽기까지 이 계약을 실행시켜야 하듯 내가 너를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네 후손으로 온전한 나라의 터전을 세워주겠다는 약속을 어긴다면 내 목숨까지 내어놓겠다고 하지 않는가? 내 전부를 너의 상급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자기 후손이 이방민족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으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쉽게 용납할 수도 없다. 거꾸로 의심과 불만과 불신만 불러일으키는 약속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했는가? 당신을 노예의 위치에까지 먼저 내려왔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노예가 되겠다는데 인간 후손이 타 민족의 노예가 되는 약속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왕이 왕관과 관복을 다 벗어 제치고 신하 앞에 먼저 무릎 꿇고 엎드려 신하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었다면 신하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신하가 당장 똑같은 종의 위치로 내려가야 하지 않는가? 어느 누가 그러는데 주저하겠는가? 아니 기꺼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먼저 그러시고 너희도 내가 한 것처럼 너희의 발을 서로 씻어주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지금 비천한 종이 되어서 목숨을 걸고 아브라함에게 선포했다. 네가 행할 일은 단 하나도 없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실 하나만 “반드시 알라.”

 

아브라함에게 또 다른 두려움이 소름끼치듯 옴 몸을 감쌌을 것이다. 저절로 두 손과 두 발이 들리면서 진심으로 항복할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다. 첫 번째 것이 너무나 엄위하고 위대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지금의 두려움은 세상에 없는 너무나 무한한 자비와 긍휼하신 하나님에 대한 충만한 경외감이다.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영원한 계획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낼 때부터 가나안 땅을 소유로 삼게 해주겠다고 계획했다.(7절) 사백 년 후에 큰 재물을 이끌고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15절) 아브라함도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간다고 했다.(15절) 이어지는 18-21절에선 구체적으로 땅의 경계선까지 가르쳐 주었다. 비록 노예로 팔려가지만 절대로 실패하지 않고 반드시 창성케 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아브라함이 우상숭배의 땅을 과감히 등진 이후로 사백 년간 아니 영원토록 하나님은 그의 가문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후손으로 당신의 새로운 나라를 가나안 땅에 세워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후손들이 이방의 노예가 되는 것은 당장에 이해가 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이루시는 도구로 택했고 반드시 드러내실 당신의 영광스런 계획으로 가는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점은 분명히 인식하고 순순히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기 훨씬 오래 전부터 작정하신 자기와 자기 후손을 향한 계획이 단 한 치의 오차 없이 하나님이 지금 실현하고 있음도 알게 된 것이다. 또 그것이 자기에게도 유익이요 큰 축복임도 깨달았다. 당장에 평생 죽었다 깨어나도 인간이 이룰 수 없는 두 가지 소원을 이뤘지 않는가? 혹시 하는 미련은 조금 있어도 마음속으로 벌써 포기했었던 아들과 가문의 부흥을 하나님이 실현해 주신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당신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주시겠다는 약속 안에 담긴 너무나 오묘하고 풍성한 은혜와 권능이 넘치도록 많음을 알게 되었다. 후손이 노예로 팔려가는 것조차도 그분의 사랑이었다. 아브라함이 할 일은 정말로 갈 바 모르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발 한 발 그저 모든 것 내려놓고 그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지금 아브라함만 칭찬하려는 뜻이 아님을 여러분도 알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처음 구주로 영접할 때부터 하나님의 일방적 언약 안에 옮기어져 들어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려고도, 알려고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분을 거역하며 그분의 원수의 자리에 있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먼저 찾아 오셔서 세상에서 불러내셨다. 성령이 역사하여 나라는 존재를 속에서부터 완전히 뒤집어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다.

 

어디에서 그랬는가? 골고다 십자가 앞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동물 희생 제사를 마감하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려 당신을 영단번의 제물로 바친 곳이다. 본문에서 예표 된 대속의 구원대로, 말하자면 예수님이 양쪽으로 벌려놓은 제물 사이로 비천한 종의 자리에까지 내려 오셔서 혼자서 지나가신 곳이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횃불이었고 그 불이 바로 신자 인생의 유일한 빛이요 생명이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영광스런 당신의 빛을 비춰주시고 날마다 새 생명을 주고 계신다.

 

본문의 아브라함의 경우에 견주면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아브라함과 동일한 고민을 품고 이민 1세들은 미국 영주권은 받아놓고도 시민권 신청을 주저하고 있다. 특별히 요즘 돌아가는 미국 형편을 보면 당장 2세, 3세를 이곳에서 키우기가 두렵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하나님이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다. 우리 후손이 이곳에서 소수민족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벌써부터 백인우월주의로 돌아가고 불법 체류자들 즉, 소수 인종을 추방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임을 온전히 믿고, 또 그처럼 그 믿음에 걸맞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새 가문을 이 땅에 든든히 세워주신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자녀 후손들을 잘 양육하며 오직 믿음만을 그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면 된다. 그럼 우리의 후손들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며 그분 또한 그들의 지극히 크고 영원한 상급이 될 것이다.

 

육신적으로 우리 실존의 뿌리가 잘려나가는 것 같더라도 결코 아쉬워 할 것 없다. 돌아가신 아버님 형님에겐 죄송하지만 저는 족보와 역대기를 벌써 버렸다. 조상숭배 하면 안 된다는 목사로써의 종교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저의 인생 여정에 그것들이 실상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두 분을 인간적으로 가장 존경하고 그분들의 저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감사하고 귀했다. 그러나 그와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영원한 십자가 사랑 안에 제가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기도와 말씀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게 맡겨라 그럼 영혼의 쉼을 네게 주리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식과 후손들이 이곳에서 분명히 많은 어려움을 겪겠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믿음의 가문을 든든히 세워주실 것이다.

 

12/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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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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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하나님이 두려운 이유 (창세기강해#51-창6:5-7)

구약성경의 하나님이 두려운 이유 창세기 강해 (51)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뒤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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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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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2:29-36) 슈퍼 파워 미국이 하나님의 공의다. -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5)

(출12:29-36) 슈퍼 파워 미국이 하나님의 공의다.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5)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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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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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치다꺼리만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강해#45 - 창4:9-12)

뒤치다꺼리만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강해 (45)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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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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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3-7) 고난이 없으면 신자가 아니다. -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12) [1]

(고후1:3-7) 고난이 없으면 신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12)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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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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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30-39)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구원 얻는 믿음(12/완)

(롬8:30-39)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 구원 얻는 믿음 (12/완)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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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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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종을 죽이려는 하나님(출애굽기강해 #17-출4:21-26)

당신의 종을 죽이려는 하나님 출애굽기 강해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너는 바로에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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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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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20,21) 믿음의 본질은 뻔뻔함이다. [4]

(눅15:20,21) 믿음의 본질은 뻔뻔함이다. 돌아온 탕자 시리즈 (6)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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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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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스스로에게 평생 물어야 할 질문(출애굽기강해#52-출24:1-11)

신자가 평생토록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 출애굽기 강해 (52)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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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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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뜨게질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수6:15-21) [1]

(수6:15-21) 하나님의 뜨개질이 여리고를 무너뜨렸다.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13) / 여리고성 함락에 숨겨진 비밀 (10-완)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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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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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자가 반드시 받아야 할 진짜 축복(민수기강해#39-민24:3-9)

(민24:3-9) 모든 신자가 반드시 받아야 할 진짜 축복 구약성경강해 (49) / 민수기강해 (39) “그가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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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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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인간들(민수기강해#31-민20:14-21)

(민20:14-21) 선(善)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인간들 구약성경강해 (41) / 민수기강해 (31)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며 이르되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우리 조상들이 애굽으로 내려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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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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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승리를 방해하는 첫째 요소(출애굽기강해#67-完 출40:34-38)

믿음의 승리를 방해하는 첫째 요소 (출40:34-38) 출애굽기 강해 (67-完)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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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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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4:5-9) 신자가 평생토록 행해야할 한가지 일 [1]

(욘4:5-9) 신자가 평생토록 행해야할 한가지 일 요나서 강해 (10)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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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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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되 가장 모르는 하나님의 이름(출애굽기강해 #20 - 출6:1-9)

가장 좋아하되 가장 모르는 하나님의 이름 출애굽기 강해 (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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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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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좌파와 우파의 공통된 잘못(출애굽기강해#24-출9:4)

기독교 좌파와 우파의 공통된 잘못 출애굽기 강해 (24)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출9:4) 유대인에게 부족했던 딱 하나 하나님은 사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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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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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죽는다. (민수기강해#28-민18:20-24)

(민19;20-24)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죽는다. 구약성경강해 (38) / 민수기강해 (28)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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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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