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회가 참 교회(Real Church)인가?
마태복음 강해 (#171)



http://youtu.be/mvOUTHTg0tw
(클릭하시면 You-tube 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磐石)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마16:18-20)


데모 대신 기도만 하는 비겁한 신자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에는 대학생들이 공부는 뒷전이고 민주화 투쟁 데모하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일부 보수교단의 크리스천 학생들은 빈 강의실에 따로 모여 나라와 독재정권과 대통령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동료학생들로부터 비겁하다는 조롱과 독재정권을 위해 기도하다니 말도 안 된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미국에는 Real Church라는 이름을 붙인 새로운 교회들이 나타났다.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도시 빈민 같은 고난 받는 이웃을 섬기는 사역에 집중하는 교회다. 실생활에서 예수를 따르는데 초점을 모으기에 그런 간증과 나눔이 예배의 중요순서가 된다. 복음을 배우고 전파하는 대신에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다.

그들이 Real 교회라면 기존의 전통적 교회는 가짜 교회인가? 또 민주화 데모는 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비겁한 신자인가? 내 코가 석 자인지라 이웃을 섬기는 일에 등한한 것이 저를 비롯한 많은 신자들의 솔직한 실상이다. 그래서 교회 밖에서 예수쟁이들은 지역사회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교회에 모여 찬양하고 기도만 한다는 비방을 받고 있다. 또 우리 스스로 생각해도 과연 그러는 우리가 올바른 신앙인지 의아심이 들 때가 많다.  

이런 문제에 신자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자기 신앙에 자신이 없는 까닭이 하나 있다. 삶의 모든 이슈들을 도덕적 종교적으로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만 이분해서 인식하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거룩하고 전지전능하며 우주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그분과 정말로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서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또 그 동행이 의미하는 내용과 하나님의 역사가 삶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너무나 오묘하고 풍성하며 아름답다.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하긴 해도 그런 풍성함 중의 일부다. 매사를 선과 악의 기준으로만 인식하면 그 신앙은 오히려 가난해지고 자칫 또 다른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다.      

반석(磐石) 약속에 대한 기본적 오해

예수님이 교회와 신자에게 부여한 소명이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되는데, 19절 한절로 표현되어 있듯이 아주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지금껏 불행하게도 여러 오해들이 있었고 심지어 일부 교단과 목회자들은 자기들 유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곡해하여 가르쳐 왔다.

제일 먼저 살펴볼 사항은 예수님은 교회라는 단어를 이곳과 마태복음의 또 다른 한 곳, 단 2회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조직체로서의 개별 교회를 부인하는 무교회주의를 허용한 것은 결코 아니다.  

본문에서 당신께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능동적 직설적 화법으로 말씀하셨다. 본문 외에 유일하게 언급한 부분에선 더 확실하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한두 사람이 증참(證參)하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에 보고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 즉, 불신자처럼 대우하라고 했다.(마18:17) 이는 교회가 조직체로서 공식적 절차를 밟으라는 뜻임에 분명하다.

가톨릭에선 예수님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구절(18절)을 근거로 베드로가 설립하고 초대 감독이었던 로마 교회가 예수님께 인정받은 유일한 정통교회라고 주장한다. 헬라어로 반석과 베드로의 이름이 같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예수님은  “하늘로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는 바리새인의 잘못을 ‘하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다.(마16:1-4)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일종의 언어유희(word play)를 했는데,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16절)을 “반석”에다 은유(隱喩)한 것이다. 사실은 반석과 베드로의 헬라원어도 엄밀히 따지면 다른 단어다. 반석 ‘페트라’는 여성명사이고,  ‘페트로스’(베드로)는 남성 고유명사다. 여성 명사가 한 남성 개인을 대변할 수는 없다.

거기다 베드로는 이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여 제 생각대로 설치다가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물러가라는 야단을 맞았다. 말씀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한 그가 이 말씀을 붙들고 로마교회를 세우고 초대 감독을 하겠다고 작정했을 리는 없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도 베드로가 로마 교회를 설립했다는 근거는 전무하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했을 당시 이미 로마교회는 존재했다. 베드로가 바울보다 먼저 로마를 방문했다는 기록도 없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자 베드로의 설교에 삼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로마 교회는 그 부흥의 현장에 있었던 로마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행2:10)들이 그 설교에 감동을 받아 회심하여 예수를 믿고 돌아가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는 선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밝힌 서신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로마서 15:20이다. 만약 베드로가 이미 로마 교회를 세웠다면 바울은 자신의 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너무나 뻔뻔한 자가 된다. 다른 서신서면 혹시 몰라도 베드로가 세운(?) 로마 교회를 향한 서신에서 그렇게 말할 리는 없다.  

반석(磐石) 약속에 대한 결정적 오해

무엇보다 결정적인 증거는 본문 안에 있다. 천국 열쇠가 헬라 원어로 복수로 영어 성경에는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다. 베드로에게 열쇠들을 준 것이다. 그럼 그에게 열쇠 꾸러미를 준 것인가? 그래서 열고 닫아야 할 천국과 음부가 여러 곳인가? 그럴 리는 없지 않는가? 그 자리에 모인 제자들 모두에게 각기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동일한 열쇠를 주셨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목회자의 직분이 교회의 다른 직분보다 우월하거나 특권을 가졌다는 소위 성직신수설(聖職神授說)을 부인하는 말씀도 된다. 물론 사도의 경우는 다르다. 예수님이 직접 선택하였고, 당신께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직접 계시 받았으며, 초대 교회를 세웠고, 무엇보다 성경을 저작했다. 그들의 신분과 영광은 교회사적으로 보아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도 사도는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당신께서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했다(마28:18-20). 당신께서 그랬듯이 사도들도 제자들을 양육하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자기들이 예수님께 받았던 천국 열쇠를 똑같이 전해주라는 것이다. 루터가 말한 대로 신자라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수 있다. 또 바울의 말대로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름 받은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교회의 열쇠를 준다고 했다면 교황청이 유일정통 교회로서 모든 교회를 치리할 권리를 가진다는 가톨릭의 주장에 그나마 일말의 근거가 생긴다. 그러나 주님은 천국 열쇠를 주었다. 문자 그대로 천국 문을 여닫는 열쇠다. 음부의 권세는 사망이다. 사망을 이기는 길은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로마교회 식으로 교회가 구원과 심판의 권한을 소유했다는 뜻은 아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권한이다. 죄에 찌든 인간이 다른 인간을 구원할 권세는커녕 중보자나 희생제물도 절대로 될 수 없다. 교회가 침례증서나 제자훈련 수료증을 수여하는 것은 신앙의 성숙을 위한 필수적 훈련과정이긴 해도 천국보험증서의 역할을 결코 대신하지는 못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오해가 하나 더 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해서, 교회가 어떤 불신자를 두고 간절히 합심중보기도하면 필연적으로 자동적으로 구원이 이뤄진다는 보장이 아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관 사항이다. 그렇다고 어리석은 인간들로선 누가 보석이고 누가 돌인지 가릴 수 없기에,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섬기면 그 보상으로 당신께서 구원해주신다는 뜻은 아니다. 오직 흠 없는 완전한 대속 제물로 바쳐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만이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어떤 공로, 자격, 신분, 능력, 수고가 심지어 그 믿음조차 구원을 결정하는 단 한 치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반석(磐石) 약속의 간단명료한 의미

다시 말하지만 본문 19절의 뜻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교회와 신자가 땅에서 매거나 풀어야만 구원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와 신자가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구원을 못 이루시거나, 전혀 구원하지 않으신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 말해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고전1:21).

믿음의 사람 요나는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타락해 극악무도했던 니느웨를 제발 심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기도와는 무관하게 니느웨 사람들은 물론 그 육축까지도 당신의 주권으로 구원하셨다. 어떻게 구원하셨는가? 땅 끝까지 도망가려던 요나를 기어이 붙잡아 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어쩌면 요나의 메시지에는 싫고 귀찮은 기색이 은연중에 드러났을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역사하여 그런 요나의 회개의 메시지를 통해 그들을 회개케 하길 기뻐하셨다.

좀 더 알기 쉬운 방식으로 이 구절을 설명해보겠다. 민주화 데모나 가난한 자 구제는 불신자나 타종교인이나 진보적인 좌파 기독교인들까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수까지 사랑하여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고 순종하는 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분의 십자가 은혜를 맛본 신자 외에는 독재자의 영혼마저 너무나 불쌍해서 기도해 줄 수 있는 자는 없다.

요컨대 하나님은 교회와 신자가 반드시 행해야 하고, 그들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맡기셨다는 것이다. 다른 조직체나 개인이 절대 할 수 없는 교회와 신자만의 고귀하고 막중한 임무는 바로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도록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교리와 실천, 또 진리와 사랑이라는 두 주제를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혹은 먼저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 신자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선하게 살아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자는 교리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서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 안에서 사랑해야 한다.

무조선 사랑의 실천만 먼저 강조하면 신자라도 아직 죄의 본성이 많이 남았는지라 인간적 교만과 자기 자랑과 의가 앞설 수 있다. 또 내가 죽고 남을 살리는 예수님 같은 사랑보다는 나에게 남아도는 잉여분으로 행하는 적선에 그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섬김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반석(磐石) 약속에서 간과해선 안 될 세 가지 사항

예수님이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약속에서 정작 간과해선 안 될 세 가지 사항이 있다. 먼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해주고 또 그런 고백을 하게 해주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또 천국 열쇠도 인간이 수고하고 노력하여 쟁취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고백 위에 주셨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그 고백이 순수하고 확신에 찼다면 이미 천국열쇠를 받았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직접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점이다(18절). 교회는 정말로 예수님의 교회다. 그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된다. 신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 어디에나, 조직체 교회에나 그분은 실제로 항상 실재(實在)하신다. 교회를 통해서 세상 앞에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길 기뻐하신다. 교회와 신자가 그 일에 충성한다면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는 반드시 그분의 때와 방식으로 풍성하게 실현된다. 그러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다. 니느웨 같은 악한 도성도 하루아침에 회개하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  

교회라는 헬라어 단어 ‘에클레시아’는 알다시피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나온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불러내셨다면 그분의 뜻과 계획이 없을 리 없다. 또 그분의 계획이 있다면 그 일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여건과 일정이 이미 다 마련되어 있음도 당연하다.

신자와 교회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 꼭 해야만 하는 일, 다른 사람과 조직이 할 수 없는 일을 맡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꼭 해야만 하는 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 다른 어떤 존재도 할 수 없는 일을 신자와 교회가 대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엄청난 영광인가? 신자와 교회가 이런 고귀한 신분과 특권과 소명을 제대로 확신하고 수행하고 있다면 기독교 밖으로부터 조롱과 비방에 지금처럼 주눅이 들 수는 결코 없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아들이라는 순전한 고백을 했다면 이미 천국 열쇠를 소지하고 있다. 음부의 권세를 능히 이긴다. 모든 신자가 사도나 목회자가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초대교회의 신자처럼은 될 수는 있다는 뜻이다. 세상의 어떤 조롱과 핍박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자기 생명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된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또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또 못해서 산 채로 맹수의 밥까지 될 수 있다. 그것도 기쁨과 감사와 함께 기꺼이 말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다. 정말로 예수님의 부활생명, 참 생명을 소지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현실적 상황은 어떠하든지 간에 그 참 생명이 그들 가운데서 역동적으로 주관하여서 주님의 권능이 겉으로 강력히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럴 수 있었던 이유도 오직 하나다. 그들은 정말로 예수님을 인격적 개인적으로 대면하여 자신의 지정의를 포함해 전 인격체, 전 존재가 완전히 뒤집어엎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믿어 음부의 권세를 이긴다고 해서 신자가 당장에 거룩한 성자가 되었거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슈퍼맨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예수님 한 분만  붙들고 살아도 온전히 만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수가 없으면 그냥 조금의 부족, 열등, 결함, 실패가 아니고 완전한 절망 즉 죽음임을 깨닫는 것이다. 예수 없이는 재충전하여 소생하거나 회복될 가능성이 전무(全無)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것이다. 이전에 세상 재물, 쾌락, 명예, 권력을 아무리 추구했어도 만족을 얻지 못하며 헛되고 헛되었음을 예수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아무리 좁고 협착한 가시밭길이라도 그 길만이 참 진리요, 참 생명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걸어야할 길이며, 그 길을 걸어가지 않는다면 인간이 참 인간답게 살 수 없음도 잘 아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길을 걸어가노라면 주님의 오묘한 은혜와 권능을 실제로 풍성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데모보다 기도인 이유는?

데모하여 독재정권을 민주정권으로 바꾸거나,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는 일은 아주 소중하고 귀하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의는 물론,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한 독재정권이 무너져도 그보다 더 치사하고 사악한 정권이 다시 들어설 수 있다. 가난한 자들도 항상 있게 마련이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인간이 어려서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 뿐이고 죄악만 일삼아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이 만들어낸 모순과 잘못이다. 다른 것에 핑계될 것 전혀 없다. 인간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만 없애봐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 의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용서 받아 그분의 자녀로 바뀌고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 안에 거해야 한다. 인간의 근본을 갈아엎지 않고는 인간 사회의 어떤 모순, 갈등, 상처, 분노, 저주, 죄악도 해결할 수 없다.

신자가 데모하지 않은 것이 독재정권의 핍박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면 비겁한 것이다. 그러나 데모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확신하고 주님의 긍휼만 바라고 기도했다면 절대 비겁한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의가 즉, 독재정권의 권력자는 물론 정의감에 불타 열심히 데모하는 열혈 청년과 강의실에 따로 모여 원수를 사랑하려고 기도하는 자기들의 의까지 누더기에 불과함을 스스로 잘 알고서 기도했다면 비겁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인간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면 더럽고 추하며 버러지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또 그래서 예수님이 불어 넣어주시는 새로운 영의 숨결이 아니고는 그 타락한 영혼에 아무 소망이 없음을, 자신이 예수님과 대면하였던 체험을 통해서 잘 알게 되었고, 나아가 그 독재자와 하수인들의 영혼에 예수님이 없음이 너무나 불쌍하여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다면 절대 비겁한 것이 아니다. 죄가 관영한 세상이 새롭게 되려면 하늘에서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역사해야만 가능함을 알기에 하나님 제발 이 땅을 불쌍히 여기시고 깨끗케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면 신자로서 꼭 해야만 할 일에 충성한 것이다.

참 교회(real church)가 되려면?

정작 신자가 비겁한 일은 따로 있다. 십자가 진리 안에 있다면 이미 천국 열쇠를 소지하고 있고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또 알아도 객관적 교리로만 받아들이고 삶에 실제로 반영이 되지 않으면 너무나 비겁한 것이다. 사랑만 있고 십자가 진리가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자랑이다. 십자가 진리는 있는데 사랑의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종교적 치장에 불과하다.

신자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진 곳마다,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과 십자가 복음의 진리가 아무 가감, 변질, 조정, 곡해, 타협 없이 성경 그대로 선포되어야 한다. 신자와 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셨고, 하나님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셨고, 하나님이 따로 불러 모았고, 하나님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셨고, 또 그 사랑을 누리고 사는 모습을 하나님이 불신자에게 보여주신다.

신자는 그래서 정말로 예수로 인해 기뻐하고, 예수에 의해 아름답고 진실하고 선해져야 하고,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그분께 내어드리며 그분의 영광만 나타나도록 살아야 한다.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 가운데, 특별히 세속적인 직업을 성실히 수행하는 중에 예수님의 냄새를 주위에 피워야 한다. 어떤 이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냄새가 또 다른 이에게는 영원한 죽음의 냄새를 맡게 해야 한다.

신자를 보는 이들이 그가 정말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고, 하늘에 소망을 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자를 통해 예수 생명의 냄새를 맡음으로써 그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를 자기들도 알고 싶고 또 의지하고 싶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거창하고 의로운 행위를 해야 한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예수님이 진짜로 자기 인생의 주인임을 주위에 보여서 알게 하면 된다. 예수 믿기 전과 비교해서 예수 믿은 후에 바뀐 모습이 드러나면 된다. 정말로 예수님과 동행하기에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며, 어떤 환난이 닥쳐도 하나님을 믿기에 요동치 않으며,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풍성하고 아름답고 진실하고 의롭게 변해져 가는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왜 제자들에게 당신의 그리스도 됨을 비밀로 하라고 했을까? 쉽게 말해서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데모는 하지 않고 따로 모여 기도모임만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로 설명한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비겁하고 치사하다는 조롱만 들을 뿐이며 말을 할수록 더 이단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틀렸다고 여기고 배반했다. 그 위대한 고백을 한 베드로마저 자기가 음부를 이길 권세를 받았다는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세 번이나 배반했지 않는가?

진리는 구태여 변명이나 핑계가 필요 없다. 진리는 스스로 진리임을 드러낸다. 거짓 진리나, 인간이 만든 종교라면 인간의 공로와 열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노력하고 수고해도 연약하고 어리석고 죄에 찌든 인간의 한계에 부딪혀 실패로 끝나기에 항상 무거운 짐과 멍에만 될 뿐이다.

참 진리라면 진리 안에 거한 자를 진리 자체가 책임져 준다. 신자는 아무 말 없이 십자가 진리 안에서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예수님만을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고, 진정으로 그분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실제로 자신의 전부를 드리며 유일한 소망으로 삼아서, 정말로 그분과 동행한다면 당신의 권능과 은혜를 세상사람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분께서 역사해 주신다.

현재 비록 내 코가 석자라 구제와 선행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최소한 예수님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소원만 있어도 주님은 놀라운 은혜와 권능으로 함께 해주신다. 당신께서 도리어 신자가 그 자리에 게으르게 머물러 있는 것을 참고 보지 못하신다. 이미 예비해 놓으신 거룩과 의의 자리까지 당신께서 반드시 이끌고 가신다.

복음의 진리는 풍성한데 변화된 삶이 따르지 않거나, 사랑의 실천은 왕성한데 복음의 진리가 선포되지 않으면 둘 다 잘못된 교회다. 순전한 참 복음을 제대로 알고 그 복음대로 살면 변화된 삶은 필연적으로 따라 온다. 또 그래서 참 복음이다.

신자가 평생을 두고 꼭 기억할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하셔야만 할 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하나님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신자가 대신 맡았다는 사실이다. 더 많은 이를 천국으로 인도하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살면서 거룩하고 의롭게 자라게 하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섬기게 하는 그 일을 신자가 하나님 대신에 열심히 준행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찌 보호 인도하지 않겠는가? 어찌 그 외의 일로 염려하고 불안할 필요와 이유가 있겠는가?

5/19/2013


양요한

2013.05.22 13:53:33
*.98.166.6

리얼처치....주님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보혈로 씻어 주셔서, 리얼처치가 되게 하소서.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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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찬양 집회(출애굽기강해#32-출15:1-11)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찬양 집회 출애굽기 강해 (32)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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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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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뒷모습이라도 보는가?(출애굽기강해#60-출33:18-23) [1]

하나님의 뒷모습이라도 보는가? 출애굽기 강해 (60)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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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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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0:1-5, 22-24) 역전된 인생을 살고 있는가? [1]

(창30:1-5, 22-24) 역전된 인생을 살고 있는가? 야곱 바로 알기 (13)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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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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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30-33) 하나님은 인간을 저주할 수 없다.

(요6:30-33) 하나님은 인간을 저주할 수 없다. 오병이어 기적 (9)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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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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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소명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마28:16-20) [1]

November 12, 2017 Morning Service from Kirby Woods Baptist Church on Vimeo. 설교 요약: 마태복음 28:16-20 제목 (가제): “위대한 사명 (임무) Commission” 요약: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시면서 끝을 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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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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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질투하고 있는가?(출애굽기강해#63-출34:29-35) [1]

(출34:29-35) 하나님을 질투하고 있는가? 출애굽기 강해 (63)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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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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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무덤을 밟고 지나가는 이성적인 믿음 (민수기강해#15-민14:4-10) [1]

(민14:4-10) 예수님의 무덤을 밟고 지나가는 이성적인 믿음 구약성경강해(25) / 민수기강해(15) - 가데스 바네야의 불순종(5)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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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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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14-19)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던 둘째 아들

(눅15:14-19)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던 둘째 아들 돌아온 탕자 시리즈 (5)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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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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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7,10,32) 그런데도 아직인가? 그러나 이제는인가?

(눅15:7,10,32) 그런데도 아직인가? 그러나 이제는인가? 돌아온 탕자 시리즈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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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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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4:8-12) 내년에도 지금까지처럼 똑같이 살아라.

(요14:8-12) 내년에도 지금까지처럼 똑같이 살아라. 2021 송구영신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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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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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0:1-7&17,18)생명을 살리는 선지자로 기도하라-기도시리즈(8) [1]

(창20:1-7 & 17,18) 생명을 살리는 선지자로 기도하라. 기도 시리즈 (8)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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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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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3:1-5) 여성인권을 무시하는 가부장적인 하나님 [1]

(룻3:1-5) 여성인권을 무시하는 가부장적인 하나님. 룻기 강해 (8)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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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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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66-71) 너희 모두가 마귀니라. [1]

(요6:66-71) 너희 모두가 마귀니라. 오병이어 기적시리즈 (14)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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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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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다.(출애굽기강해#3-출1:15-22)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다. 출애굽기 강해 (3)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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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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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41-50)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간단한 방안

(요6:41-50)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간단한 방안 오병이어 기적 시리즈 (1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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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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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66-71) 오병이어의 이만 배 축복이 이천 배로 축소되었다. [1]

(요6:66-71) 오병이어의 이만 배 축복이 이천 배로 축소되었다. 오병이어 기적시리즈 (15-완)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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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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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8:23-26)주기도문의 구약성경버전-기도시리즈(7)

(창18:23-26) 주기도문의 구약성경 버전 기도시리즈 (7)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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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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