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52) 신자는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조회 수 1092 추천 수 35 2007.07.15 20: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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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2)



세상 사람은 자녀가 출생하면 남녀가 만나 교제하고 결혼하여 맺게 된 사랑의 열매라고만 봅니다. 당연히 그 아이는 오직 자기들만의 자식입니다. 신자에게도 아이들은 사랑의 열매이자 자기 자식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그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자기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신자가 그런 확신을 갖고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하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자녀와 평생을 함께 하십니다. 자녀의 출입을 지켜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그분의 참 생명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 믿음이 좋아 보이는 신자들의, 심지어 목회자들의 자녀들까지 나쁜 길로 빠지는 예를 주위에서 많이 본다는 것입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비행을 저지르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완전히 등지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끔 자녀를 말씀과 기도로 양육한다는 본질을 오해해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단순한 차원에서 접근합니다. 하나님을 평생을 통해 아이에게 현실적 고난이나 나쁜 일이 닥치지 않도록 막아주는 수호천사의 역할로만 한정시킵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해 구하는 것이라고는 현실적 평안과 개인적 형통뿐입니다. 자녀가 공부 잘하고 크게 출세해서 먹고 사는 일에 지장이 없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비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짓이라고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성경은 자녀를 초달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증거이며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선언합니다. 아이에게 부족한 것이 없도록 다 해주는 것은 멸망으로 이끄는 지름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아이의 장래 유익을 위해 때로는 매를 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의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서 현실적 형통이 보장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영적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거룩한 뜻과 계획을 이 땅에 실현시켜야 할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름 받았고 또 그렇게 양육되기에 가장 적합한 부모와 환경에 보내졌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아이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그 일생을 통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계획이 이미 세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알게 하며 영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그들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아이를 위해 정작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은 현실적 형통이 아니라 그분의 일에 아이가 충분히 쓰임 받도록 잘 준비되고 훈련 받게 해달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은 자기 자녀에게서 자기들의 모습만 발견합니다. 자기의 분신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자녀가 바로 자기입니다. 당연히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것으로만 먹이고 입히려 듭니다. 남에게 절대 뒤지지 않게 하려 합니다. 기를 안 죽이게 하려고 해 달라는 것을 다 해줍니다. 남들보다 앞서 출세하여 돈과 명예와 권력을 다 많이 쌓는 것만으로 인생의 목표로 삼게 합니다.

신자의 자녀에게 현실적인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자는 자기 자녀에게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분신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닮은 자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대행할 자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자녀를 당신의 온전한 계획에 따라 당신께서 직접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의 모든 것을 그분께서 책임져 달라고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자녀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라고 단순히 남들보다 착하고 순한 품성과 자질을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아이가 받지 못한 숨겨진 은사와 재능을 발견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아이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와 섭리를 실제 삶에서 발견하라는 뜻입니다. 자녀를 위해 간구할 것도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영원한 계획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게 하시고 궁극적인 영광을 향해 한걸음씩 인도해 달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비록 아이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아니 이미 생겼다 해도 그 고난이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목표로 가기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자녀가 그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많이 맛보아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아이를 양육한다고 부모가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말씀 들려주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이 아이 자신의 산 체험이자 기쁨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는 종교적 습관만 들이게 해선 안 됩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그런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만 그 이전에 아이 스스로 실제 삶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이어가게 해야 합니다. 힘든 일에서도 그분의 사랑과 권능을 기도를 통해 발견토록 하고 그것을 성경 말씀과 연결해 생각토록해서 그분을 갈수록 더 신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은 자녀의 키와 지혜를 키우는 것만을 자녀 양육의 목표로 삼습니다. 본문은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라고 말합니다. 문법적으로는 ‘지혜와 키’는 주어이고 ‘자라가며’는 자동사입니다. 지혜와 키는 가만 두어도 아이가 성장하면 그에 따라 자연히 자라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아이들에게 당신의 뜻대로 꼭 주어야만 할 키와 지혜, 즉 세상에서 사용할 현실적 자질과 능력은 이미 다 주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부모가 양육을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신자의 부모에게만 해당 되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은 자기 자녀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지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단지 세상에서 남들보다 앞서기만 원할 뿐입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끼친 영향력은 남은 일생이 어떻게 될지 가장 크게 좌우합니다. Gilbert Bears 라는 기독교교육학자가 “아이가 18세가 되었을 때에 도달되어야 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당장에 아이를 잘 입히고 잘 먹이는 것에 양육의 목표를 두지 말고 먼 장래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분의 충실한 일군이 되어있을 모습을 꿈꾸며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아이에게서 부모인 자기와 닮은 모습을 발견하면 가장 좋아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신자는 달라야 합니다. 자녀에게서 하나님을 닮은 또 닮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가장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녀의 삶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에만 의존해 이어지도록 자녀를 자기가 키우려 들기보다는 그분께 온전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뀌어져 있어야만 할 모습을 꿈꾸며 키워야 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지금 방식으로 자녀를 키워 18세가 되었을 때의 모습이 하나님이 원하고 계획해 놓으셨던 모습과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요? 요컨대 자녀가 일류대학에 들어갈 만큼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예수님의 참 제자로 바뀌어져 가는 것보다 더 큰 기쁨으로 삼고 있지는 않는가요? 자녀가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자 연약한 죄인에 불과한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중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7/1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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