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6:1-3) 고난을 이기는 최선의 길

조회 수 1095 추천 수 34 2007.08.14 19: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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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6:1-3)


호세아 선지자는 죄악 가운데 배교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계속해서 여호와를 알라고 권고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여호와를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비록 이방신도 섬겼지만 어쨌든 성전에선 매일 율법대로 상번제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또 그분이 어떻게 자기 민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내셨고 그 뒤로도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 선조들로부터 반복해서 이어진 강화 설교로 들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만큼 여호와를 잘 아는 백성이 없었습니다. 아니 유일한 민족이었습니다. 당시도 수시로 필요하면 선지자를 보내서 당신의 뜻을 계시했습니다. 비록 선지자가 촉구한대로 회개하고 돌아오지는 않았더라도 더 이상 여호와를 알 필요는 없었지 않습니까?

여호와를 알라는 것이 신학적으로 더 깊이 알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다스리며 당신의 백성을 보호 인도하시고 간절히 기도하면 환난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모르는 신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눈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즉 세상에서 공의는 굽어지는 것 같고 당신의 백성들이 오히려 환난을 당하는 일이 생길 때에 그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때에 구태여 알라고 촉구할 이유는 없습니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가 찢으신 것까지는 알면서 도로 낫게 하실 것이라는 점은 자꾸 의심하고 잘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이유를 본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지만” 그 이틀을 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그날  당장에 구원해내라고 아우성치느라 그분을 알 생각을 하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틀 후에 살리실 양이면 왜 구태여 하루를 더 환난 중에 버려두십니까? 당신의 기분이 내키고 제반 형편이 허락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드러내는 데 장애가 될 요인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시겠다고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그대로 이뤄집니다. 지금이라도 배교하는 모든 죄인을 다 심판하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루를 더 두고 보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런 환난을 허락하신 당신의 뜻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미 여호와를 익히 알고 있는 이스라엘더러 하나님이 찢으시고 치신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을 치는 이유는 당연히 그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아는 것은 결국 그분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 그분을 제대로 알면 그분께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힘써 여호와께 돌아가자”라고 외치는 중입니다.  

성경은 또 전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호세아로선 단지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하라는 외침을 발했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령이 간섭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언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삼일 만에 일으키신다.”고 했습니다. 즉 구약성도에게 주는 직접적인 뜻은 그들을 삼일 만에 징계에서 풀어주실 것이라는 것이지만, 신약성도에게 주는 예언적인 뜻은 환난과 징계가 있더라도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특별히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인도하는 유일한 원칙이 바로 골고다의 십자가라는 뜻입니다. 어떤 죄악 가운데 있더라도 오직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으로 진심으로 돌아오면 다 용서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정죄가 없으며 비록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성도의 성숙과 더 큰 유익으로 합력하여 이끌기 위한 그분의 참 사랑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또 성도가 비록 세상에서 이유 없는 환난이나 복음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더라도 예수님께서 이미 다 승리하신 십자가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너무나도 자주, 아니 거의 언제나 십자가를 잊고 삽니다. 십자가는 처음 회심하여 예수님을 믿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아를 죽이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당하는 일에만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구원 이후 죽어서 천국 가기까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겪든 신자의 행동과 말과 생각을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요컨대 예수님이 십자가에 보여주신 신자를 향한 긍휼 뿐 아니라 죄악과 죽음과 사단을 향한 권능을 붙들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그저 긍휼만 붙들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사랑해달라고만 떼를 씁니다. “왜 나에게 이런 힘든 일이 생기게 합니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제가 그래도 열심히 기도하며 헌금도 많이 했지 않습니까?”

그래선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호세아시절의 이스라엘 백성들 수준입니다. 찢어졌다는 것만 알고 도로 낫게 하실 것이라는 것은 소망하지 않는 셈입니다. 간혹 알더라도 단 하루를 참지 못한 것입니다. 신자는 죄악과 죽음과 사단을 다 정복하신  그분의 너무나도 큰 십자가 권세 안에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영원히 그 권세는 취소, 변화, 약화 되지 않습니다. 어떤 환난이 있어도 십자가의 의미를 알면 담대하게 인내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니 승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더 크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이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5:3-6)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치 않고 심지어 그분과 원수 되었을 때에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모든 것을 다 베푸셨습니다. 그럼 이제 믿은 후에, 즉 경건하게 된 이후에는 하물며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혹시라도 우리가 경건하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도덕적으로는 항상 죄인일 수 있으나 예수님의 보혈로 덧입혀졌기에 하나님 보시기엔 영적으로 의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 신분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하나님 편에 붙어만 있으면 예수님의 십자가만 놓치지 않으면 우리는 경건한 자입니다.  

환난과 징계는 눈물을 뿌리며 울부짖고 기도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제사 지내면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알아야만, 그것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일에서 힘써 그분의 참 뜻과 참 사랑을 알면 사실은 이미 해결된 것입니다. 징계는 신자가 십자가 앞에 회개하려고 무릎을 꿇는 순간, 환난은 하나님의 십자가 긍휼을 붙드는 순간 그 즉시 해결되는 법입니다.

구약 성도와 달리 신약 성도인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를 성경을 통해 얼마든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성령의 깨우침으로 얼마든지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환난 가운데, 혹시 죄로 인해 징계를 받고 있더라도, 담대하게 승리하지 못합니까?

8/15/2007

김형주

2007.08.15 02:07:16
*.173.42.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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