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4:16-18) 불신자와 거꾸로만 살아라.

조회 수 1065 추천 수 46 2007.11.05 20: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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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와 거꾸로만 살아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망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6-18)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다 사하려 죽으셨다는 그 은혜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까 많은 신자들이 문자 그대로 자꾸 믿어보려 노력만 합니다. 엄밀히 따져 기독교라는 종교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은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남부터입니다. 또 거듭남이란 반드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야만 합니다.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너무 신비한 영적 현상으로 파악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예수 믿기 전과 후의 자신을 스스로 비교하면 중생이 되었는지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이전 상태에서 더 나아지려 노력하고 있으면 중생이 아니라 도덕적 종교적 훈련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이전 상태와 정반대가 되어 있으면 당연히 중생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영혼이란 측면에서 그 변화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그 판단의 너무나 확실하고도 쉬운 기준입니다. 우선 예수를 모르면 속은 후패해도 겉 사람이 날로 새롭게 되기만 원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낙심합니다. 신자는 그 반대여야 합니다. 겉 사람이 아무리 후패해져도 속이 날로 새롭다면 절대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현실의 환난들은 잠시 받는 지극히 경한 것이라고 여겨야 신자입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어떠했습니까? 환난이 잠시 받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해결되지 않고 끝없이 계속되면 어쩌나 그저 불안했지 않습니까? 어떤 환난도 경하게 여겨진 적은 없고 오히려 지극히 중해서  초조, 짜증, 반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 않습니까?

나아가 환난 가운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환난으로 생기는 것이라곤 오직 불이익, 손해, 실패, 상처, 고통, 심지어 죽음뿐이라고 생각되어 빨리 벗어날 수만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환난 중에 기뻐서 감사하기는커녕 어떤 소망도 키울 수 없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예수 믿기 전에는 돌아보는 것이라고는 보이는 것뿐이었고 또 그것만이 영원하다고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기에 오히려 그것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진리는 알기는커녕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신자가 된 후에는 보이는 것은 절대 영원하지 않고 썩어 없어질 뿐이므로 영원히 섞지 않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살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시 정리해 봅시다. 불신자는 겉 사람만 날로 새롭게 되려고 노력하며 그렇지 않으면 낙심하고, 환난은 어떡하든 빨리 없애려 노력하며 그 속에 은혜가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며, 보이는 것만이 영원하다고 믿고 삽니다. 신자는 완전 그 반대여야 합니다. 그런데 저부터도 불신자 쪽에 가까워 보이니 어찌된 연유입니까?

그 이유는 다른 것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이 쏠려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일에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또 영적으로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불신자시절의 습관으로 돌아가 자신의 힘으로 의로워지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알 수 있기에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로 속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불신자 시절과 반대로만 가면, 즉 옛사람만 죽여도 충분한데도 최고 신자가 되기 위해 자꾸 새사람의 겉모습에만 신경을 쓴 것입니다. 그 자체도 종교적 위선이자 불신앙인 줄 모르고 말입니다.

11/6/2007


조인구

2007.11.06 0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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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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