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5:16) 당신은 진정 거듭났는가?

조회 수 1148 추천 수 40 2007.11.20 20: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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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정 거듭났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5:16)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났으니 이제부턴 오직 자기들을 대신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신자가 새롭게 바꿔 살아야 할 가장 근본적인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면서 전도하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흥미롭게도 전혀 다른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육체대로 알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이전과 달리 육체대로 알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의 해답을 구하려면 먼저 새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부터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본문대로 풀이하면 예수를 육체대로 알다가 육체대로 알지 않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정확하고 간명한 설명입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예수를 객관적으로는 세계 사대 종교 중의 하나인 기독교를 창시한 위대한 스승으로, 주관적으로는 이천년 전 로마제국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된 유대인 사형수로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흔히 “예수가 나의 죄와 무슨 상관이 있어? 예수가 밥 먹여 주나? 아무 종교라도 택해 선하게 살면 그만이지 꼭 예수만 믿어야 하는 법은 없지 않는가?”라고 반발했던 그대로입니다. 그야말로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럼 예수를 육체대로 보지 않게 된 것은 불신자 시절의 관점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영원히 살고 죽는 관계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객관적으로는 그분은 종교를 창시한 인간 스승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온 메시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또 주관적으로는 예수가 아니면 나의 죄는 씻을 길이 전혀 없으며 그분이 나의 밥을 먹여주는 분이며 그분이 아니면 절대 소망이 없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를 보는 관점이 완전 정반대로 바뀔 수 있었습니까? 비유컨대 초록색이 빨간색으로 바뀌어 보이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인간 예수가 하나님 예수가 되었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가 그분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 과연 자신의 노력으로 가능했던 변화입니까? 아닙니다. 초록이 빨강으로 보이려면 눈 자체를 바꿔야지 단지 생각을 바꿔먹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성령이 간섭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인한 중생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우리의 지정의로 파악할 수 없는 영혼의 영역에서 이뤄낸 것이라 구체적으로 그 과정을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결과뿐입니다. 요컨대 어느 날 갑자기 주는 것 없이 그렇게 싫던 예수가 정말로 주는 것 하나 없는데도 너무나 좋아진 것만 알게 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분이 먼저 우리를 절대 육체대로 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만약 육체대로 사람을 알려 했다면 선행과 구제와 기도에 열심이었던 경건한 바리새인을 먼저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성전 구석에서 하늘을 감히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세리에게 향했지 않습니까? 그분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만하는 자는 철저히 외면하시고 대신에 죄악과 고난의 무거운 짐을 지고 스스로 어쩔 줄 모르는 자만  먼저 찾아가 사랑해주셨습니다. 그것도 당신과 원수 된 자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물론 우리를 만드신 분이라 우리 체질이 진토로 너무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줄 우리보다 더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죄악과 사망으로 묶여 있는 사단의 멍에를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풀길이 없기에 당신께서 그 사슬을 직접 끊어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사단에 미혹된 영혼을 성령이 내주하는 영혼으로 거듭나게 한 것입니다.

영혼의 중생을 너무 경건하고 신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영원한 세계가 있고 오히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통용되는 가문, 학벌, 외모, 재산, 권력, 명예 등이 인생의 참 만족과 행복을 결코 줄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것들이 전부인줄 믿었기에 어떻게 하든 더 풍성하고 화려하게 누리려 추구했지만 이제는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신 예수 안에서만 얻는 영혼의 참 안식이 더 중요함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의 설명대로 하자면 예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육체대로만 알려 했던 우리의 고정 관념이 완전히 깨어진 것입니다. 바꿔 말해 다른 사람의 육체보다는, 육신(body)이란 의미가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객관적 조건을 의미함, 그의 영혼을 보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예수님이 육체대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니까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한다는 단순히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자신을 보니까 너무나 불쌍하고 또 다른 사람도 하나 같이 불쌍하지 않은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몰랐을 때는 육체만이 중요했기에 자기가 자신을 판단할 때도 세상에서 쟁취한 것에만 의존했고 또 남들도 그 소유로만 가름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영원한 가치를 절대 드러내지 못하기에 그것들을 추구하려고 아등바등 살던 모습이 얼마나 소용없고도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철저하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럼 새 사람이 된 의미를 다시 정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또 삶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우선 세상에서 통하는 가문, 학벌, 외모, 재산, 권력, 명예를 우습게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 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원한 가치는 결코 지닐 수 없기에 그것들로 인해서 더 이상 염려 불안 초조해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것을 기준 삼아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불신자 가운데도 그럴 수 있는 자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는 신자만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먼저 예수의 영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반드시 판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외모대로 판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궁극적인 관심은 항상 우리를 사단의 영에서 풀어 내려느는 데에 두었지 않습니까?  모든 자를 예수의 사랑이 시급한 불쌍한 자요, 또 그 사랑을 받을만한 고귀한 자요, 나아가 그분의 소명을 받아야 할 권세 있는 자로 보아야 합니다.

결국 신자로서 새롭게 살아야할 삶의 요체는 자기 자신이 경건하고 고상하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를 거룩하게 가꾸는데 힘쓰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실체가 얼마나 추하고 불쌍한지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해지고 그 가난해진 심령이 애통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또 그럼으로써만이 다른 사람의 영혼도 얼마나 불쌍한지, 예수의 사랑 없이는 썩어져갈 수밖에 없는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듭났음을 무엇을 기준으로 확신합니까? 또 성령 안에서 새롭게 바뀐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요컨대 아무도 육체대로 알지 않고 있습니까? 나아가 그들과의 관계를 예수 안에서만 새롭게 형성하고 있습니까? 혹시라도 교회에서 감당해야 할 종교적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만으로 삶이 바뀌었다고, 아니 거듭났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11/21/2007

조인구

2007.11.21 07:10:45
*.222.149.224

아멘 !!!

국중후

2007.11.21 09:01:23
*.222.149.224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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