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간 부활 기사의 조화에 관해?

조회 수 0 추천 수 0 2024.05.24 15:49:38

복음서 간 부활 기사의 조화에 관해? 

 

[질문]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28:8-10) 마태에 따르면 여자들이 처음 무덤에서 천사들을 만나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알려주려고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는 당부를 전하라는 말씀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0:11-18에 따르면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이 빈 것을 확인하고서 집으로 간 후에 여자들이 2번째 무덤에 방문했을 때 예수님을 또 뵌 것처럼 보입니다. 복음서 간에 모순이 없으려면 여자들이 예수님을 두 번 봤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지했다면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발을 붙든 것도 모순처럼 여겨집니다. 

 

[답변]

 

복음서 간의 불일치 문제

 

구체적으로 답변드리기 전에 네 복음서 간의 불일치에 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부터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보다 후대에, 최하 한 세대가 더 지난 후에 저작했기에 공관복음에서 이미 다룬 내용은 많이 생략했습니다. 실제로 요한은 스스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들만 선별해서 기록한다고 밝혔습니다. (요20:30-31, 21:25) 그는 특별히 예수님의 정체성, 그중에도 신성을 강조했고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사실은 모든 성경 저자가 자기가 강조하려는 특별한 주제가 있기에 공관복음서끼리는 물론, 같은 사건을 기록한 요한복음을 합하여 네 복음서 사이에도 구체적인 진술에 약간의 불일치가 나타납니다. 추가적인 이유로는 우선 예수님 생전에 사역할 때마다 일지 쓰듯이 일일이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도 한참이 지나 바울의 서신서들보다 더 후대에 저작되었습니다. 예수님 사건이 주는 의미가 너무 생생했기에 당시로선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바로 어제 일어난 것 같은 사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가르침, 사역, 죽음, 부활, 승천에 대한 직접적인 증인들과 제자들이 여전히 살아있어서 굳이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일1:1) 

 

예수 이야기는 그 증인들에 의해 구전으로 급속히 전파되어 갔으나 점차 첫 증인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기다 교회 안에 유대주의자 같은 거짓 선생과 영지주의자 같은 이단들이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 기록해서 다음 세대의 신자들에게 정확히 가르치고 또 기독교 진리를 변증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예수 사건의 감격이 컸어도 요즘처럼 녹음이나 영상으로 남길 수 없어서 저자들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각 저자가 대상으로 삼은 독자층과 본인이 처한 여러 정황과 당시 교회 정세에 따라 저작 동기도 각기 달랐습니다. 요한뿐만 아니라 공관복음의 저자들끼리도 같은 사건을 두고 해석하는 관점이 다르고 강조하려는 포인트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사건 전체의 줄거리와 주제는 같은데 구체적인 진술에서 조금씩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컨대 부활 기사에서도 주님의 빈 무덤에 나타난 천사에 대해 마태는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마28:2)라고 한 사람인 것처럼 기록했습니다. 반면에 누가는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눅16:5)라고 두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마가는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막16:5)라고 기록했습니다. 우편에 앉은 천사를 설명했기에 좌편에 한 천사가 더 있었다는 뜻이므로 누가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결국 마태의 관심은 천사의 숫자보다는 그 형상과 그들이 했던 말에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천사 둘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세 복음서가 천사가 광채가 나는 흰옷을 입었고 여인들에게 전해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설명이 일치합니다. 결국 세 기록을 대조 검증해 봄으로써 약간의 불일치에 대한 합리적인 변증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성경 저자가 강조하려는 주제에 따라 선별해 기록한다면 기록된 순서가 꼭 연대별 이라고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사건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다양한 때와 방식으로 일어났지만, 저자가 비슷한 주제를 지닌 사건들끼리 묶어서 저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간 저자가 자기 임의대로 자기 의견만 강조하려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성경의 저작 과정에 성령이 저자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지라 인간 저자의 특색을 살려 두면서도 신자가 꼭 알아서 신앙생활에 적용해야 할 당신의 절대적 진리를 얼마든지 온전히 계시할 수 있습니다.(딤후3:16,17) 

 

부활의 여자 증인들 

 

성경해석에 관한 이런 기초적인 지식을 갖고서, 먼저 요한복음을 살펴보면 부활의 증인으로 막달라 마리아(이후로 편의상 ‘마리아’로만 칭함)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시신이 도둑맞은 것 같다고 제자들에게 알립니다.(20:1,2)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지 못한다”(20:2)고 전했으므로, 공관복음서 대로 다른 여인들과 함께 천사들을 만난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요한은 이미 다른 복음서에 기록된 사항을 생략하고 마리아만 강조한 것입니다. 

 

요한은 마리아로부터 보고를 들은 제자 중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급히 달려갔으나 빈 무덤만 보고 도둑맞은 게 사실인가보다 여기고 크게 실망하여 돌아갔다고 기록했습니다.(20:3-10) 그리고 이어서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11절)라고 설명합니다. 

 

전통적인 의견은 비록 접두사나 시간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11절을 앞의 10절과 이어지는 기록으로 봅니다. 그래서 마리아 혼자서 제자들과 함께 다시 확인하러 온 것으로, 혹시라도 다른 여인들도 따라왔다면 제자들처럼 실망하여 먼저 돌아갔고 마리아 혼자만 남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제자들은 부활을 믿지 못해 돌아갔으나 마리아는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주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 간 것이 확실하다고 여기고 크게 낙담해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마태의 기록입니다.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빈 무덤과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갈 때(마28:8), 예수님이 그들을 만났고 여인들은 주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고 합니다.(마28:9) 구체적으로 여인들 이름이 없고 단순히 주님이 ‘그들을’ 만났다고 했으므로 가능성은 둘 뿐입니다. 마리아 혼자서 빨리 먼저 달려간 후에 나머지 여인들에게 주님이 나타났거나, 아니면 마리아도 이때 부활한 주님을 함께 만난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때 먼저 달려가느라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요한복음의 기존 해석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그녀가 부활하신 주님을 이때 만났다면 제자들에게 단순히 도둑맞았을 것 같다고 걱정하며 보고할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부활하신 주님을 오는 길에 만났다는 소식부터 먼저 전했을 것입니다. 

 

물론 마태의(마28:8-9) 기록에 시간과 장소와 여인들의 이름이 생략되었고, 요한의 마리아에 대한 기록(11-18)에도 시간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부활 주님을 두 번 만났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고 말한 원어의 뜻은 “계속 붙들고 늘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도에 이미 한 번 주님을 뵈었지만, 제자들과 무덤에 왔을 때 안 계시다가 다른 사람이 돌아간 후에 그녀에게만 다시 나타났으니까 너무 반가워서 놓지 않겠다는 갈망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앞에서 설명한 대로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부활 주님을 만났다는 보고부터 하지 않았기에, 그녀만 먼저 달려오느라 부활 주님을 중도에 만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무엇보다 마리아와 함께 무덤에 직접 확인하러 간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했기에 그의 진술대로 믿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가 여인들이 부활 주님을 만난 후에(28:9,10) 제자들에게 보고한 내용은 기록하지 않고 생략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대신에 여자들의 말을 들은 경비병들이 대제사장에게 무덤이 빈 사실을 보고했다는 내용만 기록했습니다.(28:11-15) 십자가 처형 직후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 비워지고 부활한 주님이 제자들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성안에 퍼져나갔을 것이고, 십자가 처형을 주도한 대제사장과 관원들이 크게 당황하며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들로선 궁여지책으로 주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 갔다는 식으로 헛된 소문을 퍼트릴 수밖에 없었다고 마태는 증언한 것입니다. 마태가 요한보다 훨씬 먼저 복음서를 저작할 당시까지도 사람들이 예수의 시신이 도둑맞았다는 억측을 하고 있었기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려 한 것입니다. 관병들이 밤새도록 지켰기에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었고, 관병들이 돈을 받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이는 그렇게 매수하는 현장에 있었던 어떤 사람이나, 직접 돈을 받은 관병이 실토했기에 가능한 기록입니다. 또 복음서가 초대 교회에 회람되고 있었는데, 서슬이 시퍼런 유대 당국이 만약 없었던 사실이라면 그런 기록을 보고 그대로 두었을 리는 없습니다.     

 

반면에 요한이 마태보다 훨씬 후대에 복음서를 저작할 때는 사람들이 점차 주님의 부활 사실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고, 무엇보다 영지주의자들이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은 껍데기에 불과한 가짜라는 가현설을 퍼트렸습니다. 요한으로선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확증하려는 의도로 첫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 중심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당시 여성은 법정의 증인으로 설 수 없었고, 마리아는 귀신 들렸던 창녀로 유대 사회에선 아예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가장 비천한 신분이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지어냈다면 그런 여인을 최초의 증인으로 내세울 리는 절대 없습니다. 당시의 문화 관습에 능통한 복음서의 최초 독자들이 마리아를 강조한 요한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같은 맥락에서 마가의 증언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16:9)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과 이어지는 10-11절로 마리아가 혼자 먼저 제자들에게 달려가느라 주님을 미처 만나지 못했고, 빈 무덤을 확인하고서 실망하고 제자들이 돌아간 후에 혼자 남았을 때 주님이 그녀를 만나 주셨다는 전통적 해석이 더 타당해집니다.

 

문제는 여전히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는 진술과 마태가 기록한 여인들에게 주님이 나타난 사건(마28:9,10) 사이에 시간적 순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행동이 너무 빨라서 주님이 무덤으로 다시 돌아온 그녀를 먼저 만나 준 후에 여인들을 길에서 만났다고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마태가 여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시간과 만난 후의 행동에 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기에(28:11-15) 그런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아니면 그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느라, 예컨대 제사장들의 동향을 알아보러 갔고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한참 지나서 부활 주님을 만났을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누가의 기록과 충돌이 생깁니다. 누가는 24:8–10에서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돌아가 빈 무덤에 관해 보고했다고 말합니다. 

 

누가에 따르면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무덤에 관한 보고를 한 여인 중에 막달라 마리아도 포함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눅24:10) 다시 마태의 기록과 연결하면 마리아도 다른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오는 길에 부활한 주님을 만났다고 봐야 합니다. 마태는 그 후의 여인들이 어떻게 행했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이젠 요한의 기록과 모순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다행히도 부활 직후의 상황에 관한 마가와 누가의 기록은 사실상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마가복음 16:9부터 마지막 20절까지가 주요 사본에 빠져 있어서 대체로 후대의 필사자들이 추가했다고 봅니다. 성경에도 그런 의미를 드러내려고 9-20절을 (  )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마침 눅 24:10도 (  )로 후대의 첨가 기록이라는 사실을 밝혀 놓았습니다. 만약 마가와 누가의 기록이 후대의 필사자들이 첨가했다면 아무래도 구체적인 사항에서 정밀성이 떨어질 것이므로 마태와의 시간적 순서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마가와 누가는 후대의 기록이 일부 첨가되었고, 마태는 여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생략했으므로, 셋 다 본문 자체에 일관성이 조금 결핍됩니다. 반면에 요한은 마리아와 함께 무덤에까지 따라간 직접 증인이었고 전후 문맥에도 모순이 전혀 없기에 우선적으로 참조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마가와 누가의 기록과 마태의 기록 사이의 시간 순서를 굳이 따지지 않는 대신에 전통적 해석대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마가의 “먼저 보이시니”라는 말씀도 "다른 모든 제자보다 마리아에게 먼저 보였다"는 의미로, 혹은 그녀가 새벽에 가장 먼저 무덤에 왔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가장 타당할 것입니다. 

 

상기에 설명한 그런 해석학적인 문제들을 네 복음서를 상호 비교하여 추적한 클레이그 L 블롬버그라는 신학자는 부활 당시 정황의 순서를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1)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먼저, 그 후 몇 명의 여인들이 동틀 무렵에 무덤에 왔고,  2) 두 명의 천사를 만났는데 그중 한 명이 주님의 메시지를 전했고, 3) 여인들은 공포에 질려 열두 제자들에게 알리려 가는 중에 마리아가 먼저 달려갔고, 4) 부활하신 예수님이 길 가던 나머지 여인들을 만나서 당부했고(마리아는 그 자리에 없음), 5) 다른 한편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와서 비어 있음을 확인했고, 6) 베드로와 요한이 떠난 후 마리아가 예수를 만났다. - “예수와 복음서”(기독교문서선교회 번역 발간)의  Page 556-7에서 발췌 인용함.

 

언뜻 마리아가 다른 여인보다 뒤에 주님을 만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네 복음서가 두 사건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으며, 블롬버그도 "다른 한 편"이라고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났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굳이 여인들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난 사건의 시간적 순서는 따지지 말고 그가 설명한 대로의 전체적인 윤곽과 사건 내용만 정확히 기억하면 될 것입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특별히 복음서 모두 막달라 마리아를 첫 증인이라고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말입니다. 

 

살펴본 대로 네 복음서의 기록이 부분적으로 일치하지 않은 것 같아도 전후 맥락을 잘 따져보면 합리적인 변증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를 더욱 강조한다는 점을 성경해석에선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4/1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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