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13-15) 모세의 놋뱀에 숨겨진 의미

조회 수 141 추천 수 1 2025.03.02 12:06:14

 

 

(요3:13-15) 모세의 놋뱀에 숨겨진 의미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7)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3-15) 

 

모세와 예수는 동격?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하면서 당신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니고데모에게도 곧바로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말하자면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마지막 때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인류 역사를 주관 통치 마감하실 수 있으므로 인간이 마지막 때를 절대 판단 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가장 흔한 이단은 지금이 바로 세상의 종말이므로 모든 일상 생활을 중지하고 자기들 가르침대로만 따르라고 부추기는 종파입니다. 주님을 나사렛 출신의 이름없는 랍비라고 무시했던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 지도층들은 주님을 유대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단 교주라고 판단하고 배척했습니다. 

 

반면에 니고데모는 면담을 요청하며 주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이라고 칭했는데, 같은 바리새인이라도 자기 생각은 조금 다르다는 뜻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다는 그 선언이 정말 사실인지 또 사실이라면 자기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13절)라고, 즉 네가 나를 정확히 보았다고 먼저 인정해주었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의 예언에 비추어서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이므로 네가 궁금해하는 문제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께서 앞으로 이 땅에서 베풀 구원에 관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14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여호와께 원망함으로써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되었으나, 모세가 만든 놋뱀을 쳐다본 자는 살아났던 사건을 인용했습니다. (민21:4-9)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뜻하므로. 주님은 모세의 놋뱀과 당신의 십자가를 같은 차원에 둔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인간 선지자 모세와 같은 신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이미 죽게 된 사람을 구원해 주는 방식의 그 외적인 모습만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구원의 길을 가르치면서 그 둘을 비교한 의도를 정확하게 알려면, 불뱀 사건의 의미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후에 그 의미를 지금 니고데모와 나누고 있는 대화의 앞뒤 문맥과도 비춰봐야 할 것입니다.    

 

심술궂은 하나님

 

출애굽 직후 가데스 바네야에서 이스라엘의 1세대는 가나안을 점령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함으로써 광야를 방황하다가 죽어야 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민13장) 그 후 38년 동안 그 1세대는 거의 다 사라지고 이제 2세대가 가나안을 향한 여정의 막바지에 이르른 때였습니다. 그 행군 길에 위치한 에돔 족속에게 물 값과 기타 경비를 다 지불해 줄 테니 통과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가뜩이나 오랜 광야 행군으로 지쳐있는데 또 다시 멀리 우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21:5)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었고 많은 백성이 물려 죽었습니다.(6절) 

 

백성들이 뒤늦게나마 잘못을 회개하고 모세더러 뱀들이 떠나도록 여호와께 기도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은 하나님은 불뱀과 동일한 모습의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달아 올리고 뱀에 물린 자들로 그것을 바라보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뱀에 이미 물렸어도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다 살아났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이 동족을 사랑하는 모세의 마음을 미쁘게 여기고 기도에 응답해주었다고 단순하게 해석해선 많이 부족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불뱀을 보냈다고 기록하지만, 사실은 지난 38년간 방황했던 광야 어디에나 많이 있는 뱀이었습니다. 아라바 지역과 시나이 반도에 서식하는 독사로 한번 물리면 살아날 수 없었습니다. 붉은 색깔 반점의 있었고 독성이 치명적으로 강하다고 불뱀이라고 칭한 것입니다. 하필 이 때에 사람을 물었다면 그 전에는 하나님이 막아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광야 생활 전반을 회상하면서 물도 없는 건조한 광야를 통과할 때 여호와가 불뱀과 전갈에서 우리를 지켜 주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신8:15) 

 

이 2세대로선 자기들이 영적으로 완전히 미숙할 때에 1세대가 불순종한 죄로 인해 지난 38년간 억울하게 광야를 방황했습니다. 부모들의 불순종과 그 결과를 목격한 자식들로선 하나님을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지난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서 이제 새롭게 각오를 다지며 가나안을 막 정복하려는 참이었습니다.   

 

광야 방황을 마감하고 가나안을 코앞에 둔 순간에 에돔으로 인해 또 다시 광야을 우회하며 지체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가 할 수만 있다면 에돔으로 협조하도록 이끄실 수 있었을 것이며, 또 그러면 가나안 정벌의 소명도 더 빨리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 마지막까지 자기들 앞길을 당신 멋대로 가로 막는 너무나 심술궂은 존재 같았을 것입니다. 

 

원망한 진짜 이유

 

그들의 지친 육신과 고달픈 마음을 이해는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이번에는 불뱀을 막아주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난 38년 간 자기들을 먹여 살린 만나를 두고 “이 하찮은 음식이 너무 싫다”고 그 속내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만나가 없었다면 먹을 것 하나 없는 광야에서 생존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반석에서 생수를  내고 하늘에서 메추라기를 내려주었기에 지금처럼 강건한 군대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모든 은혜가 그저 하찮았을 뿐이라는 뜻이므로 하나님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잘 따져보면 그들이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불평을 터트리는 와중에도 그들은 만나를 먹고 있으며, 그 때문에 지금껏 살아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으므로 기본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보다 에돔에게 통과를 거절 당해 우회한 것 때문에 잔뜩 화가 난 것입니다. 군대 숫자로 보면 에돔 쯤은 단 번에 패배시키고 그들의 성읍에서 그동안 지친 육신과 마음이 휴식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에돔과 싸우지 못한 이유는 모세의 율법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과, 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인  모압과 암몬 족속과는 절대 싸우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신2:1-23) 출애굽 2세대로선 수백 년 전 선조들의 후손이라 사실상 아무 혈연 관계가 없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도 하나님은 손해를 보더라도 그들과 화친하라고 하니까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최초의 선조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후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해 모든 족속에게 당신를 믿고 따르는 복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창12:1-3) 그 사백 년 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실현시키려고 모세의 인도로 애굽 노예 살이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 직후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도 모든 족속 앞에 제사장 나라로 서겠다고 기꺼이 맹세함으로써 그 언약을 갱신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 언약대로 다른 족속들 앞에서 당신을 아는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게 하려고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세상 족속은 자기들 우상 신에게 현실적 형통과 부요만 채워주길 간구합니다. 반면에 여호와는 현실 축복과 관계 없이 당신과 거룩한 영적 교제로 인도해서 그 삶과 인생에 참 기쁨과 진정한 만족을 풍성히 채워주십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며 도덕적 영적으로 의롭게 살면 이방 족속들은 여호와를 따르는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충만한지 목격하게 되고 또 그럼으로써 자기들 우상숭배가 잘못이자 큰 죄라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에돔 족속은 애굽에서 사백 년간 노예로 살다가 이제야 나타났으니 이스라엘에게서 형제 국가라는 동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주 창성한 군대라서, 그것도 세계 최강 애굽을 꼼짝 못하게 만든 경험이 있는지라, 자기들도 쉽게 패배시키고 재산을 약탈해 갈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통과만 시켜주면 마신 물값도 지불하겠다고 하니까, 자기들을 안심시킨 후에 기습하려는 계략이라고 더더욱 의심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에게서 그렇게 속이려는 기색이 전혀 없고 정말로 그런 진정성만 보였다면, 그렇게 거룩하게 구는 꼴이 보기 싫고 자존심까지 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자기들 족속 중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을 따라 나설 자가 있을까 두려워서 에돔 왕은 자기들 경내를 통과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인정하는 일인데도 남이 행하거나 그렇게 권면하면 괜히 싫어지고 미워하는 청개구리 습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흔히들 네 충고는 분명히 옳지만 내 기분은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참 하나님을 모르고 대적하는 에돔 족속으로선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인데 여호와께 원망한 진짜 속내는 율법대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 거추장스러웠던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도 아무런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율법대로 싸우지 않고 양보했는데도, 에돔은 그런 우리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자기들 경내에 한 발자욱만 들여 놓아도 칼로 맞서겠다고 덤볐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에 대해 아예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만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광야를 우회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율법대로 살아가려니까 너무 힘들다고 투정 불평 원망했던 것입니다.   

 

쳐다만 봐도 낫는다.  

 

물론 이들의 잘못은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는 훨씬 약했습니다. 특별히 1세대는 출애굽 직후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서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신이라고 칭하면서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 온 민족을 멸하고 모세의 자손으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할 정도로 격노했으나, 모세가 차라리 자기를 심판하고 대신 동족을 살려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런 큰 죄에도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 기도만으로 배역의 주모자만 빼고 모두 살려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2세대는 단지 말로만 불평했기에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둔지라 하나님은 말로만 크게 야단쳐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불뱀을 막아주지 않았고, 거기다 왜 굳이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라고 명했는지 조금 의아합니다. 놋뱀을 쳐다만 봐도 낫는다고 하면 믿음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여기고 쳐다볼 것입니다. 간단하다 못해서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지시지만, 하나님의 뜻은 절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선 불뱀이 하나님에게 대놓고 불평한 자들만 골라서 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평하자 뱀에 물렸으니까 곧바로 하나님의 벌이라고 여기고 진정으로 회개한 자라면 놋뱀을 곧바로 쳐다봤을 것이고, 하나님도 곧바로 그 치명적인 독을 제거해 주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불만을 품은채 모세의 어이없는 지시가 무슨 효력이 있을까 의심하는 자는 금방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므로 독성이 너무 강하니까 곧바로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먼저 쳐다본 사람이 낫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뒤늦게 쳐다보는 믿음이 없는 자들도 낫게 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역사는 완벽하고 한치의 하자 없이 이뤄집니다. 벌 받을 죄인에겐 반드시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고, 복 받을 의인에겐 반드시 그보다 더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믿음이란 그래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예컨대 에돔이 통과시켜 주지 않아서 다시 지체하며 우회하는 너무나 고달픈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의 전부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도 인간적인 상식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 그것도 너무 무리해 보이는 지시에도 아무 불평 원망 없이 그 즉시로 따르는 것입니다. 모세가 지시를 내리기 전에 이미 자신의 죄를 깨닫고 마음으로 회개했던 자들은 지체없이 그 놋뱀을 바라봄으로써 불뱀의 맹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건짐을 받았듯이 말입니다.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실은 믿음의 근본적인 뜻인데 평소에 하나님의 온전한 율법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거룩한 진리 대로 살 때만 인생의 참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는 체험적 확신이 믿음입니다. 에돔이 통과를 거절해서 우회하게 되는 것도 율법대로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전혀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이 주신 그 힘든  환난 가운 데에서도 그분을 기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에 비해서 솔직히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잘 믿어야만, 율법대로 잘 따라야만, 교회 생활에 충실해야만, 기도가 응답이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매번 믿음을 더 견고하게 키우려고만 듭니다. 신자 쪽의 종교적 의지가 강해진다고 믿음이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과 이미 맺어진 온전한 관계를 세상 어떤 것도 끊거나 훼방할 수 없으므로 그분께 모든 것을 마음 턱놓고 의탁하면서 평안하게 그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해야만 복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믿음이란 구원 이후에 생기는 것이며, 구원은 타락 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비유하자면  선악과가 에덴 동산 중앙에 달려 있어도 따먹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갔던 타락전의 아담처럼,  장대에 달린 놋뱀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두고서 항상 그것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세상 죄악을 따를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계획한 그분의 일에 어떤 형태로든 쓰임받게 됩니다. 당연히 그분이 이미 마련해 놓은 하늘의 열매도 풍성히 맛볼 수 있습니다. 

 

왜 하필 불뱀인가?

 

불뱀 사건으로 하나님이 계시하고자 했던 진리는 아주 간단하고도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원망한 내용이 바로 하나님이 심판한 이유와 목적이 됩니다. 이스라엘더러 너희가 만나를 하찮게 여겼던 이유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라는 뜻이었습니다. 말로는 만나가 싫다고 했으나 속내는 하나님을 하찮게 여긴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열번의 재앙과 마지막 홍해를 가르는 엄청난 이적으로 애굽에서 구원해 준 하나님인데도 지난 38년 간 끊임없이 불평을 제기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너희들을 엄격히 되돌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고 해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몰염치범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그들도 이성적으로는 하나님과 모세에 대한 기본적인 감사는 갖고 있었으나, 너무 지치고 고달파서 얼떨결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속내를 내뱉은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  불평 속에 자기들 진심이 은연 중에 드러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당장 지금 이 자리에서의 풍요와 안락만, 최소한 고통없는 무사무탈만 바랐던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율법을 지키면서 이방 족속들 앞에 거룩하게 서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지시하니까 어쩔 수 없이 지키는 척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순전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자도 간혹 있었겠지만 그렇게 순종했으면 반드시 응분의 보상이 따라주기를 바란 것입니다. 율법대로 거룩하게 살기보다는 그냥 현실에서 호의호식하고 싶은데 왜 그렇게 안해 주느냐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이 거룩해지는 것보다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식의 생각을 이 복음서를 지은 요한 사도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이는 뱀으로 위장한 사탄이 선악과를 바라보는 이브에게 심어준 바로 그 생각이었습니다. 이브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창3:6) 여겨지는 정욕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을 하찮게 여겼던 것입니다. 최초 인간의 능동적 적극적인 배역의 결과로 그 교만과 탐욕이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의 사고의 근본적인 틀을 강력하게 묶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는 불뱀 외에도 전갈이나 독버섯 등 다른 치명적 위험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제쳐두고 굳이 불뱀을 보낸 까닭이 바로 사탄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지금 당신에 대해서 원망한 것도 바로 사탄에게 그 영이 미혹되어 있다는 증거이므로 불뱀으로 심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더러 원죄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는 당신에 대한 원망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영적 진리를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뱀에 물려 독이 서서히 몸에 퍼져 나가는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믿음으로 장대에 달린 놋뱀을 한번만 힐끗 쳐다보아도 곧바로 완전히 낫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공적과 선행이 필요 없는 하나님만이 베풀 수 있는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비록 너희가 한 번은 실패했으나 당신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을 받았으니까, 이제 그 새롭게 된 믿음으로 오직 당신만 의지하고서 가나안 전쟁을 성실히 수행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사탄에 승리한 예수

 

주님은 지금 니고데모와 상담하면서 육으로 난 자와 영으로 난 자,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상호 비교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당신의 정체성을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라고 알려주었기에, 모세가 놋뱀으로 죽어가는 자를 살려 주었어도 그는 땅에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대조한 것입니다.     

 

놋뱀 사건은 인간 선지자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대신 전한 것 뿐이며 또 땅에서 살고 죽는 인간의 육신만 낫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원히 살고 죽는 문제와는 사실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성령으로 그 영이 거듭나야만 영의 사람으로 변해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니고데모에게 이미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했는데, 하늘에서 내려 온 당신이 십자가에 죽어야만 그 일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면서 그 죄인의 영을 살려주어야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놋뱀을 장대에 매단 것은 사탄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그 뜻을 정확히는 몰랐으나 어쨌든 당신께 돌아왔으므로 당신이 내린 죽음의 형벌을 취소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선생인 니고데모는 그 사건을 잘 알 것이니까, 모세가 놋뱀을 들었듯이 당신이 이제 곧 들릴 것이라고 미리 예고해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선지자 모세를 통해서 땅에서 육의 몸을 고쳐주었다면, 이제 하늘에서 내려온 성자 하나님이신 당신은 영으로 인간의 영을 거듭나게 해서 새롭게 고쳐주겠다는 것입니다.

 

불뱀에 물려 독이 온 몸으로 퍼지고 있는 자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라 놋뱀을 쳐다보지 않고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중에도 진정으로 회개하고서 하나님과 모세를 완전히 믿은 자만 나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 상태에서 동일한 마음으로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자기 죄로 인해서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고 그 심판에서 구출 될 다른 방안이 하나도 없다고 절감하는 자입니다. 

 

지금 니고데모처럼 인간 세상에선 어떤 방안도 자기 영혼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조차 없다는, 천하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이 절로 나와야 합니다. 또 역으로 말해 그런 자만이 나무에 달려 죽은 예수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영적 시체가 된 인간은 아무도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성령이 먼저 거듭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니고데모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 귀찮고 제대로 지켜도 보상이 없다고 원망했던 놋뱀 때의 선조들과는 달랐습니다. 현실적 보상을 전혀 바라지 않고서 모세 율법을 비롯해 자기들이 정한 전통과 관습까지 성실히 다 지켰는데도 영적 충족은 없었습니다. 결국 주님이 그에게 놋뱀 사건을 인용한 더 깊은 뜻은 율법으로는 오히려 죄의 저주만 따르지 절대로 영원한 구원은 얻지 못한다는 진리를 계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전부를 의탁하려는 순종의 믿음이 없으면 사탄에게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자기 삶의 한 복판에 모세 놋뱀의 장대가 서있지 않다면 현재 사탄에 미혹되어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인자로 온 까닭은 간단합니다. 온 세상에는 사실상 불뱀에 물려 지옥 사망으로 걸어가는 자들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대뜸 성령으로 영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모세 놋뱀에 비추어 보면 정말로 너희의 삶과 인생을 원망 불평하고 싶지 않다면 그 영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체험적으로 절감해서 사탄에게 넘어가 원죄로 묶여 있는 심령을 새롭게 깨끗이 씻어야만 인생을 원망하지 않고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아담이 타락했을 때부터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는 최초의 복음(창3:15)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실현해 나가는 과정 중의 한 사건이 모세의 불뱀이었고 결국에는 골고다 언덕의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전히 실현되었습니다. 니고데모도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후에는, 주님이 땅에서 인간이 육으로 살아나는 일인 모세 놋뱀에 비추어서 성령으로 영이 살아나는 하늘의 일을 자기에게 미리 가르쳐 주었다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모세 놋뱀과 골고다 십자가를 한마디로 줄이자면 사탄에 대한 예수님의 완벽하고도 영원한 승리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그 의미를 모르면 어떤 인간도 아무리 이 땅에서 형통 출세해도 평안이 없고, 평생토록 하늘에 대해선 그 어떤 소망도 절대로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님의 십자가가 여러분의 존재와 삶과 인생의 중심에 온전히 서있고 항상 그 십자가를 쳐다보고 계십니까? 

 

(3/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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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13) 예수로 인해 실족하는 신자

(요3:13) 예수로 인해 실족하는 신자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6)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3) 하늘에 계신 예수님 구원의 길을 물으러 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성령으로 사람의 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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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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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9-12) 땅의 일도 믿지 못하는 신자.

(요3:9-12) 땅의 일도 믿지 못하는 신자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5)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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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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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6-8) 예수님도 설명할 수 없는 성령의 거듭남

(요3:6-8) 예수님도 설명할 수 없는 성령의 거듭남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4)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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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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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1:12-14) 주의 종이 갖추어야 할 첫째 가는 자질 [2]

오늘 (2/3, 월) 이곳 엘에이 소재 미주장신대(장로교 신학대)의 신학생 채플에서 전한 설교입니다. (실제 설교는 대화체라 아래 원고와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 (빌1:12-14)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첫째가는 자질 미주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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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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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6-7) 육에 머무는가? 영으로 났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5)

(요3:6-7) 육에 머무는가? 영으로 났는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구원 토론 (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7) 육에 머문 니고데모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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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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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4-5) 예수님과 선(禪)문답을 해본 적이 있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5)

(요3:4-5) 예수님과 선(禪)문답을 해본 적이 있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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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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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3:1-3) 천국 열쇠를 사용하고 있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3)

(요3:1-3) 천국 열쇠를 사용하고 있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3)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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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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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1-3) 매일 반복되는 하나님의 시험 - 새롭게 읽은 구약 성경 (21) [1]

(창22:1-3) 매일 반복되는 하나님의 시험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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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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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14:1-3) 진심만으론 많이 부족하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20)

(호14:1-3) 진심만으론 많이 부족하다.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20)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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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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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31-34) 올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2) [2]

(롬8:31-34) 올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2) / 2024 송구영신 예배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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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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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6-11) 초림보다는 재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1)

(행1:6-11) 초림보다 재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1) / 2024년 성탄 주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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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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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6-8) 혼란한 비상 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0)

(행1:6-8) 혼란한 비상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20)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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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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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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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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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9)

(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19) - 2024년 추수감사절 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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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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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8)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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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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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7) [1]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7)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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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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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6) [2]

(왕하 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6)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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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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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1]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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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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