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부끄러운 내 신앙의 모습

조회 수 1506 추천 수 108 2005.10.28 23:53:39
너무나 부끄러운 내 신앙의 모습



며칠 전 저희 홈피에 유상 코너로 칼럼을 연재해 주시는 김유상 집사님의 가정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장애인 선교 하시는 분들을 대접하려 함께 청했다는 말을 듣고 이곳 LA에서 장애인 사역을 하시는 분들을 모셨는가 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침 김 집사님도 장애인 아들을 하나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오신 분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중국, 몽고, 남미 등에서 장애인들을 상대로 선교하는 분들이 선교 세미나를 하기 위해 LA로 모였던 것입니다. 그 중에는 농아들만 대상으로 수화로 선교하시는 분도 있었고, 60 중반의 나이에 10년간 여자 집사님만 중국에 가서 선교하시는 분도 있었는데, 그분도 그분이지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 남편 집사님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다 크고 자리 잡아 아예 부부가 중국에 함께 들어가 살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한 중년 부부는 처음에는 중국에서 일반인 선교를 잘 하기 위한 수단으로 장애인들을 돌보다가, 오히려 그들이 너무 불쌍하고 사랑스러워 장애인 선교에만 완전히 전념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또 60대의 한 여자 목사님은 필리핀에서 혼자 그런 교회를 다섯 개나 개척해 섬긴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70이 넘은 할머니 권사님은 몸에 암이 퍼져 있는 데도 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의 열악한 오지에 나가 선교하는 것도 대단한데, 그곳의 장애아들만 돌보며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저로선  솔직히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이 자기 가정에 장애인을 둔 부모였습니다만, 핸디캡 시설이 완벽한 미국에서 자기 아이 돌보는 것만도 힘들 텐데, 그런 시설이 태부족한 후진국에서 장애인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긴다니 그저 열린 입을 닫을 길이 없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이곳 미국에 있는 신자들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편안하며 게으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부끄럽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땅에 오신 까닭은 그 길만이 비탄과 죄악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했기에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며, 연약함을 어루만져 주고, 죄악을 씻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가정에 장애아를 허락하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그 모든 어려움 가운데도 주님만이 주시는 위로를 체험하여 동일한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분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자 모두에게 당신을 닮아 바로 그렇게 하라고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꼭 해외에 나가 그런 어려운 사역을 감당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수시로 환난을 허락하지만, 그 중에도 소망을 주시며 얼마든지 승리하도록 넘치는 은혜로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겪은 똑 같은 환난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제가 오랫 동안 품었던 한 가지 의문이 반쯤 해결되었습니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야 자기가 겪은 아픔과 은혜 때문에 다른 장애아와 그 가정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아 자신이 겪는 그 어려움은 무슨 이유인가 말입니다. 아무리 피조 세계 전체가 죄악으로 부패되어 장애아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 본인에게는 너무 잔인한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풀리지 않은 채 있었습니다.

김 집사님 부부는 장애인 선교뿐 아니라 마약에 찌든 불량 청소년 갱들을 치유하는 사역에도 참여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 부모는, 특별히 엄마는 년 365일 장애아에게 항상 붙어 있어야만 하니까 도저히 쉴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선교회에서 일년에 한번씩 2박3일 장애인 어머님들의 휴가를 겸한 수련회를 개최합니다. 그 동안에는 자원 봉사자들이 그 장애아들을 일일이 한 명씩 맡아서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 불량 청소년들에게 장애아를 한 명씩 맡아 돌보며 2박3일간 합숙하도록 했습니다. 말하자면 장애인 선교와 청소년 선교가 합동 사역을 한 셈입니다. 놀랍게도 삼 일만에 그 비행 청소년들이 전부 눈물을 흘리고 진심으로 회개 하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처럼 장애아를 힘들게 돌보아 주면서 그 동안 자기들이 부모에게 얼마나  고생을 시켰고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을까 절실하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또 자신들이 겪는 아픔과 갈등은 장애아들에게 비교해 보니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 수련회도 전부 와서 도와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주님은 장애아를 통해 비행 청소년들에게 은혜를 받게 한 것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입니다. 자기와 최소한 동일하거나 더 큰 아픔을 겪는 자에게서만 위로를 받습니다. 여유가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것은 인간적 의나 값싼 동정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습니다. 베푸는 사람이 아무리 진정으로 전해도 받아들이는 자로선 완전히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법입니다.

장애인은 인간이 겪는 아픔 중에 가장 큰 아픔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가장 힘든 모습의 사람들도 세상에 있게 함으로써 그보다 못한 고난을 겪는 자들에게 자기가 겪는 어려움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요 또 그에 대한 불평과 불만은 그야말로 사치임을 깨달아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정상인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와 동일하게 힘들거나 더 힘든 자를 찾아가 진정한 사랑을 베풀 여력(餘力)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면 장애인들 본인은 세상의 온갖 죄악과 환난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우리보다 행복한 자일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을 두고 정상인이 함부로 말을 한다고 비난해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나 정상인으로 태어나길 원하지 장애인으로 살기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왕에 장애를 안고 태어난 사람을 결과적으로 두고 봤을 때에 그렇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다운신드롬을 비롯한 장애아들의 영혼이 가장 때가 안 묻고 순수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틀림 없이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찬 우리보다 그들을 훨씬 더 기뻐하시고 아름답게 여기실 것입니다.

나아가 신체적 장애아보다 정신적, 영적 장애자가 더 불행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자들이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신자 모두 주위의 영적인 장애인들에게 선교 사역을 지금 현재의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자기가 어려움을 겪을 때일수록 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저 환난만 없애달라고 조르거나, 너무 힘들다고 불평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10/28/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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