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가을을 다시 찾으며

조회 수 1395 추천 수 143 2005.11.07 19:42:28
실종된 가을을 다시 찾으며




캘리포니아 특별히 이곳 LA에 사는 이점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사시사철 온난하고 쾌적한 기후를 첫째로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표현한 대로 스키와 골프와 서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동시(同時)에 말입니다. 겨울에 LA 배후의 빅베어 마운틴에선 스키를 탈 수 있는 반면 바로 같은 시간 평지에선 골프를 또 바다에선 서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마 미국 전체, 아니 세계에서도 이런 곳을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한 가지 불만이 있습니다. 제가 과문(寡聞)한 탓인지는 몰라도 가을에 단풍다운 단풍을 구경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오랫동안 살았던 Utah주는 가을 단풍이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노랑 빛 Aspen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에 초록 색 침엽수와 온갖 색깔의 단풍과 회색빛 암석들이 기묘하게 점점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 그것도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햇빛에 반사되는 색깔들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완전히 혼을 빼놓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도 전부 다 갖추게 하지 않듯이 LA가 아무리 기후와 자연 조건이 좋아도 한 두 가지 결점이 있도록 한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LA에는 단풍만 없는 것이 아니라 가을과 겨울의 분명한 색깔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단풍이 없으니 가을 자체가 실종된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단풍이 아쉽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바로 제 책상 앞 창문을 통해 뒷 마당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없어진 가을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황갈색 낙엽이라 색깔만으로는 도저히 단풍(丹楓)이라 할 수도 없지만 가을 정취는 물씬 맡을 수 있었습니다. 가을이 실종된 것이 아니라 고이저녁하면서도 약간은 쓸쓸하게 바로 지척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집 주인이 제대로 알아 봐주던 몰라 보던, 가을은 자기 때에 자기 고유의 모습으로 찾아 왔었고 이제 계절의 뒤안길로 퇴장할 준비마저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뒷마당 가득히 가을을 흩뿌려 놓은 나무는 미국 벗꽃 나무입니다. 봄에 나무 잎이 생기기 전에 흰색 꽃송이들이 눈이 부셔서 제대로 쳐다 보지 못할 정도로 흐드러지게 핍니다. 그리고 또 꽃이 질 때는 완전히 눈송이가 바람에 날리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 나무는 봄에는 꽃송이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로, 가을에는 낙엽으로 뒷마당을 가득 덮어줍니다. 물론 겨울에는 앙상한 나무가지만 남지만 그럴 때면 인생을 생각하게 하고 어김없이 찾아올 새로운 봄날에 대한 소망을 키우게 해줍니다.
    
LA에 가을이 없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LA 특유의 색깔과 정취를 뽐내며 우리들 바로 곁으로 찾아와 줍니다. 마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그 자녀가 제대로 알아보던 아니던 반드시 있어야 할 때와 장소에 가장 당신다우신 모습으로 분명 함께 하듯이 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145:18)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 아! 돈이 좀 많이 생겼으면… [2] 운영자 2006-02-04 1687
41 TV 모니터 속의 아빠 운영자 2006-01-28 1346
40 주전부리의 깊은 맛 [4] 운영자 2006-01-20 1407
39 댓글에 목마른(?) 목사 [2] 운영자 2006-01-13 1275
38 나이 값도 제대로 못하는 목사 [2] 운영자 2006-01-06 1312
37 새해 결심도 하지 않는 목사 [2] 운영자 2005-12-29 1489
36 한 노병(老兵)의 이야기 운영자 2005-12-23 1283
35 먹는 것만 밝히는(?) 목사 운영자 2005-12-16 1293
34 너무나 경이로운 일 운영자 2005-12-05 1292
33 Thanksgiving Day와 Left-Over [1] 운영자 2005-11-27 1455
32 지옥까지 찾아가 벌주는 하나님 운영자 2005-11-16 1303
» 실종된 가을을 다시 찾으며 운영자 2005-11-07 1395
30 너무나 부끄러운 내 신앙의 모습 운영자 2005-10-28 1506
29 한국보다 더 극성인 페루 아줌마들 운영자 2005-10-22 1761
28 즐거운 비명 운영자 2005-10-14 1291
27 인간의 최소이자 최대의 소망은? 운영자 2005-10-11 1550
26 콜라 한 캔의 가공할 위력 운영자 2005-10-02 1265
25 두가지 나이 계산법 운영자 2005-09-22 1434
24 추석을 잃어버린 세대 운영자 2005-09-17 1389
23 NSJ Newsletter (3) – 홈페이지에 그림을 달았습니다. 운영자 2005-09-12 1335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