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병(老兵)의 이야기

조회 수 1283 추천 수 124 2005.12.23 18:51:13
한 노병(老兵)의 이야기




저는 항상 전쟁 중에 직접 총을 싸서 적을 죽이고 또 곁에서 아군이 죽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도한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저 같으면 너무 두려워 숨어버리거나 탈영을 하더라도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을 피할 것 같은 겁쟁이 내지는 비겁한(? ) 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몸이 병약해 군대를 면제받아서 총을 쏴본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 한 결혼식의 피로연에서 그런 분을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한국 육군사관학교 5기로 한국 전쟁에 대위로 참전해 중령일 때 종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미 연세가 80 가까이 된 분으로 평생을 일선 지휘관만 하신 분이었습니다. 사람 죽는 것은 수도 없이 보았고 직접 총을 쏴 죽인 적도 많은 분이었습니다.

드디어 내내 궁금했던 그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첫 대답이 "내가 부하들을 너무 많이 죽였어!"였습니다. 지휘관으로서의 죄책감을 가장 먼저 내 보였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소명감에 그런 두려운 마음이 들 여유가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처음 전투에 겁이 좀 났지만 바로 곁에서 자기 부하가 죽는 모습을 보면 그 두려움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대신에 부하를 살리고 자신이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맨 앞장에 서서 돌격했지만 이상하게 죽으려고 하는데도 마치 총알이 피해가는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가슴을 활짝 펼치고 부하 대신에 제발 나를 죽이라고 소원(?)을 해도 평생을 두고 그 많은 죽을 고비에서 딱 한번 총알이 철모를 스쳐 지나간 적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는 예수님의 말씀이 실제로 실현 된 것 같습입니다. 그분은 신자는 아니었지만 자기 목숨을 바쳐가며 부하를 사랑했던 그 마음을 하나님이 선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또 그런 불쌍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덧붙이기를  당시에 이름도 빛도 없이 죽어간 일반 병사들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도 지금은 아무도 기억도 해주지 않고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서 너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그들에 비해 지금은 진보든 보수든 정권 반대 데모하고 감옥만 조금 갔다 오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엄청난 경제적 보상을 받고 정치적 권력마저 차지하니 도대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탄 하셨습니다.

전쟁은 분명 죄악입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닥칠 때에 한 개인으로서 선택할 방도는 따로 없을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 뿐일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분처럼 자기 생명을 버리더라도 부하나 동료를 살리려 하든지, 자기 생명을 아끼려고 주위 사람을 대신 희생시키든지 말입니다.

신자의 삶은 총알이 오고 가는 싸움은 아니지만 단 한시도 전쟁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영들에게 대해" 순간순간 싸워야 합니다. 모든 전쟁의 결말은 승리 아니면 패배 둘 중 하나뿐입니다. 인간끼리의 전쟁에는 간혹 휴전이 있을 수 있지만 사단과의 전쟁에는 그것마저 없습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과 불쌍한 이웃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칠 때에는 반드시 승리하고 내 영적인 생명마저 보존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결과도 정반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신자 모두가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만나는 사건 속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싸워야 하는 십자가 군병입니다. 정말 사나 죽으나 우리 대신 죽으신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싸울 때에는  간혹 총알이 우리 철모를 스쳐 지나갈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 심장을 절대 꽤 뚫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중간에 그 방향이 휘어지며, 나아가 사단의 심장을 향해 U-turn할 것입니다.

12/2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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