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모니터 속의 아빠

조회 수 1346 추천 수 99 2006.01.28 17:53:27
TV 모니터 속의 아빠



한국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구정이 설인 것 같습니다. 해가 새롭게 바뀌었다는 인식은 이미 양력 설에 가졌습니다만, 고래로 내려오는 민속 명절로서의 감흥은 음력 설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민 와 있는 우리들은 그런 기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성묘 갈 산소도 없고 다 함께 모일 부모 형제 친척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 주위에 본가, 처가 식구들이 그것도 부모 형제 전부 이민 와 있는 가정을 보면 그만큼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제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몰라도 16년째 접어드는 이민 생활 중에 지금까지 딱 한 가정 보았습니다.)

미국 와서 자리 잡고 자식들도 반듯하게 자랐어도 여전히 부모 형제가 없으면 항상 하나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무엇이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우리의 뿌리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그렇다고 무조건 믹스된 짬뽕이라는 뜻은 더구나 아닌, 정체성의 상실 내지는 부족으로 구정이 설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미국 살면, 언어 문화 제도 관습 법률 등이 달라 항상 까닭 모를 일말의 불안감이 떨쳐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제 글에서 우리는 두 발이 땅에 완전히 닫지 않고 항상 공중에 붕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산다고 표현했었습니다.

그런데 정체성의 혼동은 그것과는 또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문화적 장애는 현실에서 직접 부딪치며 살아야 하는 땅의 문제라면 뿌리는 영혼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하늘을 향한 갈등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과연 이렇게 가는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고 옳은 길인가? 내 자녀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은 과연 어떠할까? 내가 느끼는 아쉬움과 갈등을 느끼지 않아야 할 텐데…. Etc.

물론 이젠 글로발 시대이며 앞으로 세계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좁아질 것입니다. 지구상의 어디에서 사나 거의 일일 생활권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서 일초도 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아내와 아들이 있는 어떤 유학생이 인터넷 무료 화상전화로 시차에 맞추어 새벽에 깨어나 어린 아들에게 매일 자장가를 불려 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아빠 얼굴과 음성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참으로 편하고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이 한 가지, 정말 아쉬운 것은 아들과 굳나잇 뽀뽀를 서로 모니터 화면에다 대고 밖에 못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실제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아빠가 아니라 TV 속의 차가운 아빠인 셈입니다.    

아직도 컴맹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로선 구정을 맞아 한국에 있는 모친과 형제들에게 겨우 전화 한 통화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 한 살 더 먹은 모습은 확인 못하고 그저 전파에 실린 음성으로만 자신의 뿌리를 확인해 보는 아침입니다. 어서 빨리 화상 전화라도 배워 내년 설에는 시도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자녀와 또 그 자녀들이 모니터 상으로나마 세배들 드리게 말입니다.

그러나 위를 향한 뿌리는 결국 예수님 안에서만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화상 전화로 서로 세배를 주고 받더라도 이런 날 다 같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기쁨보다야 더 하겠습니까? 아직도 한국에는 십자가 은혜 안에 들지 못한 형제가 있으니 설날 안부보다 솔직히 복음의 안부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 더 아쉽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미국에서 혈통의 뿌리는 거의 잊고 있을지언정 우리의 존재와 영혼의 뿌리는 더 키울 수 있어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별히 이런 명절은 더욱 주님 앞에 가까이 가고 싶습니다. 한쪽 구석이 채워지지 않은 채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실 이도 오직 주님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의 보혈을 나눈 믿음 안에서의 형제들도 주위에 많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마침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며칠 전에 오늘 저녁 초대를 받았는데 그 때는 그저 일상적인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뿔싸 단순한 초대가 아니었습니다. 음력 설날 서로 주 안에서 뿌리를 찾고 위로하자는 참으로 감사한 뜻이었습니다. 성도를 통해서도 위로를 베푸시는 너무나 세밀한 주님의 은혜이지 않습니까?

방문자 여러분 모두도 오직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함께
감사와 기쁨으로 구정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주님의 선하신 인도에 따라
이전보다 더 넉넉하게 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


1/28/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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