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경이로운 일

조회 수 1291 추천 수 93 2005.12.05 20:08:02
너무나 경이로운 일



미국 TV에서  존 트라볼타가 주연하는 "Phenomenon"(한국에선 어떤 제목으로 상영되었는지 모르지만 구태여 번역하자면 '경이로운 일')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자동차 수리 일을 하는 한 평범한 남자(조지)가 UFO(?)가 비췬 빛에 쏘여 잠시 기절한 이후로 천재가 되어 겪는 에피소드인데 결국 뇌종양으로 일년 만에 죽는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스토리는 별 것 아니지만 그런대로 재미 있는 영화입니다.  

그 중에 흥미로운 장면이 몇 번 나옵니다. 조지는 하루 저녁에도 전문서적을 몇 권씩 읽고 그대로 다 기억해 버리며 또 손만 내 뻗어도 만지지도 않은 큰 유리가 깨어집니다. 그가 초능력을 발휘하자 마을 축제날 매스컴이 몰려 와선 대중들의 흥미를 자극할 질문만 퍼 붇고 또 다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나타난 부모가 한 번만 손을 얹어 달라고 달려드는 등 온갖 소동이 벌어집니다. 그는 도저히 밀려드는 사람들의 등살에 못 이겨 그 자리에서 기절해 쓰러집니다.

조지는 자기의 해박한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진정 도움이 될만한 일을 가르쳐 주려는데 사람들은 큰 능력만 보길 원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자 사람들은 왕으로 삼으려고 밀려들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죄에 묶인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것이 목적인데도 사람들은 오직 병 고치고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으로선 때로는 사람들을 피해 몸을 숨기고 또 중풍병자, 봉사, 귀신 들린 자 등을 고쳐 주신 후 주위에 비밀로 하라고 당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조지에게 도대체 그런 초능력이 나타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마음을  깨끗케 하여 모든 잡념을 없애고 완전히 순수해지면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예수님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14:12)라고 했고 또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마21: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심치 않는 마음은 바로 두 마음을 품지 않는(약1:8) 순수한 마음입니다.

조지는 또 뇌종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되었음을 알고 사랑하는 애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를 사랑해줄 수 있겠는가?" 그러자 그 애인은 단번에 "No"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고쳐 대답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당신을 사랑하겠다." 즉 당신이 죽을 동안만이 아니라 그 이후 자기가 죽을 때까지 평생에 걸쳐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주님은 잡히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질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곁에서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26:40)고 물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미 주님은 곧 잡혀 죽으실 것을 제자들 모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시한부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라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있겠는가?”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이제 곧 세상 죄를 지고 형극의 길을 갈 스승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피곤함을 못 이겨 잠에 골아 떨어진 것입니다. 오직 먹고 마시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이땅에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 된, 아니 당신과 원수 된 자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당신이 살아 계신 동안도 참다운 사랑을 못하는 제자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것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인류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를 빼고는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시 오셔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했던 똑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어가 조금 바뀔 것입니다. “너희가 그런 경이로운 구원을 얻고 난 이후에라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그때 과연 우리가 “처음 구원을 얻어 믿었을 때 뿐만 아니라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을 사랑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말입니다. 그럴 수 없다면 그 경이로웠던 골고다의 십자가가 나하고는 전혀 상관 없는 단순히 이천 년 전의 한 로마 사형수의 처형 사건에 불과하게 되지나 않을까요?

12/5/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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