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부에게 마지막 소망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난 한 신자 청년이 교회가 신학을 가르치고 강조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지 질문해왔습니다. 선교지에선 사랑으로 섬기면서 교리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단순히 예수님만 전해도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국이나 미국의 번듯한 대형 교회에선 아무리 성경공부를 시켜도 실제 삶은 제대로 변화되지 않고 종교 지식적으로 똑똑한 교인들만 양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갖는 의아심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기에 생긴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 해법도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 잘못이라면 신학을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잘못된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 신학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따라서 정말 올바른 신학을 가르쳐야 하고 또 그러면 성령의 역사가 반드시 크게 일어나며 신자들의 삶도 변화됩니다.
선교지의 경우는 초대교회 때와 마찬가지로 십자가 복음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당연히 예수님 이야기만 간단히 전해도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신학을 안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수한 상황 하에서 특수하게 간섭하셨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선 그분이 메시야라는 사실부터 가장 먼저 확실하게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공생애 중에 많은 이적을 보였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마11:20) 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 같은 병자들을 이적으로 치료한 후에 그 무리들을 모아놓고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능만 보여선 즉,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도 온전한 믿음으로 인도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올바른 신학의 필요성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올바른 신학이라고 해서 특정교단의 특정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단끼리 교리의 우월성을 증빙하는 콘테스트를 벌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이 등수를 매길 수는 결코 없습니다.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는 내용이어야만 올바른 신학입니다. 예컨대 앞에서 언급한대로 하나님의 능력만 믿는 것은 절대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는 간단한 진리도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올바른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아무리 아담의 원죄 하에 그 영혼이 타락한 채 태어나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생래적(生來的)으로 절대자에 대한 인식은, 그 내용은 사람마다 각기 달라도, 어느 정도는 다 갖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방인들도 신에게 먹고 마실 것을 구하려고 빕니다.(마6:32)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비는 대상이 어떤 존재이며 자신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무지합니다. 그래서 그 신이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오직 자기가 신에게 요구하는 일밖에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신에 대한 올바른 학문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물론 종교마다 나름대로의 계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추론해낸 도덕률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이 땅에서의 안락과 형통을 더 얻어내기 위해 신의 비위를 맞출 목적으로 고안한 것들입니다. 살아계신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만이 그분의 완벽하고도 영원한 계시입니다. 인간이 당면한 궁극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성경 외에선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이 땅에 왜, 언제, 어떻게 존재케 되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결국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에 관한 절대적 진리 말입니다. 무엇보다 죄에서 구원 받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성경에만 드러납니다.
신학이 필요 없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알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있기 이전의 미혹된 상태로 다시 돌아가도 좋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구원의 길도 중구난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내용과 방식 등에 천차만별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를 왜곡, 수정, 가감, 무시, 외면하면 할수록 그만큼 인간적 사상만 성행하게 됩니다. 신학이 없어지면 결국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이 차지하게 되므로 신학이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은 의식했든 안 했든 간에 그렇게 하고 싶다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가뜩이나 현대 젊은이들은 감성에 치우치는 Visual 세대입니다. 눈에 보이는 순간적 Image에 특별히 더 약합니다. 어느 세대나 그런 면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실재(實在)가 아니라고 할 정도입니다. 자기가 멋지다고 여기는 것만이 의미와 가치를 가집니다. 지금 세대는 예외 없이, 대부분의 신자들마저도, 우주 중심에 자기를 세워놓고 그 주위 우주를 스스로 통제하려 합니다. 각자가 자기만의 색깔로 벽을 쌓은 왕국 안에 숨어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인터넷 문화가 이런 세태를 더욱 조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 공동체 안에 진정한 사랑이 실종되었습니다. 아니 인간관계 자체가 거의 와해되었습니다. 온전한 관심을 갖고 섬길 상대방들이, 가족 안에서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모든 인간이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에 대한 필요성마저 없어졌습니다. 아예 찾으려 들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하기는커녕 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철학(哲學)조차 하지 않습니다. 알기 쉽게 말해 성경도 인간이 저작한 인생 성공에 관한 여러 참고서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젊은이들조차 그러합니다.
이런 세대가 마주칠 결말은 극심한 혼동 외에는 없습니다. 그 인생이 향방 없는 달음박질과 허공을 치는 싸움으로 시종할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구원도 몰라 지옥으로 떨어지는 문제는 어찌 보면 부차적입니다. 당장의 삶에 아무런 의미와 가치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는 꼴입니다. 젊은이들이 실질적으로 죽어 있으면 인류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어집니다. 갈수록 성경의 절대적 계시가 더욱 절실하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인류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올바른 신학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모든 학문이 신학에서 시작되었음을 역으로 상기해 보십시오.
최근에 제가 절실히 느끼는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성경을 너무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저의 개인적 교만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성경 외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이 첨가되었고, 설령 성경 안에서 가르쳐도 성경이 진짜 말하고 있는 바와는 거리가 너무 멀게 가르칩니다. 근본적으로 성경 자체가 오류가 없는 궁극적이고도 절대적인 진리임을 전제도 하지 않습니다.
차츰 빛은 사라지고 어둠만 깃들고 있습니다. 성경의 절대 진리를 믿는 사람의 숫자가 현격하게,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안에 줄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이미 믿은 일부 기성세대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우리의 2세 3세들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신학이 고리타분하게 여겨져도, 아니 그럴수록 더더욱 그들에게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신학이 실종되면 예수님이 사라지고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함께 없어집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저에게 마지막이자 정말 가슴 애틋한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저에게 질문했던 그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성경이 어째서 온전한 진리인지, 또 자기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임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사랑이 실종된 이 세대에서 방황, 회의, 갈등하는 청년들에게 성경 진리를 통해 인생의 온전한 의미와 참된 가치를 발견토록 해주고 싶습니다. 프란시스 쉐퍼의 스위스 산언덕 라브리 같은 공동체를 이곳 LA 인근에 만들어 혹시라도 사색하는 젊은이가 찾아오면 함께 기거하고 섬기며 예수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 홈페이지와 병행해서 저희 부부가 마지막으로 섬길 사역이라 믿고 지금도 계속 기도하며 주님의 구체적인 인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생각나는 대로 함께 기도해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11/26/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