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身土不二) 제 철의 맛
한국방문이 마칠 즈음에 여행 시에만 휴대하는 작은 전기면도기가 고장이 나 편의점에서 일회용 삼중 칼 면도기를 샀습니다. 미국서 사용하던 G사 제품도 있었지만 마침 값도 제일 싼데다 오랜만에 향수(?)에 젖어볼 양으로 국산 D사 면도기를 골랐습니다.
사용한 후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피부가 매끈매끈한 도자기 표면처럼 여겨질 정도로 말끔히 깎였습니다. 지금껏 느꼈던 감촉과는 전혀 달랐으며 면도하고 그렇게 기분이 좋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미제를 사용할 때와는 달리 군더더기 수염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잠시 혼돈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품질이 좋은데 수입품보다 값이 싼 이유가 반미 정서가 강하긴 해도 여전히 미제 수입품은 좋아하는지, 아니면 오래 만에 모국을 방문해서 느낀 친숙함과 편안함에서 생기는 저만의 착각인지 분간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다 스스로 해답을 찾았습니다. 미국사람에 비해선 수염이 가늘고 덜 억센 한국 사람에 맞추다 보니 세 면도날 사이를 미제보다 아주 촘촘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하게 된 것입니다. (손톱깎이가 그러듯이 실제로 면도날의 품질이 세계 최고였을 수도 있습니다.)
마침 미국에서 십몇 년을 지내다 한국으로 역이민 간 자매님께 이런 말을 들은 후였습니다. “한국에 사는 큰 장점 중의 하나는 제철에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땅에서 제 철에 나는 것을 먹어야 건강에 가장 좋다고 하지 않아요.” 말하자면 저의 한국산 면도날 체험에도 신토불이의 원칙이 적용된 셈이었습니다.
만 6년 만의 이번 한국 방문에서 느낀 소회가 이전의 것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처음으로 긍정적 감상이 부정적 느낌보다 더 컸습니다. 그 이유는 여럿일 것입니다. 우선 한국이 모든 면에서 눈부시게 발전하고 질서도 많이 잡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이전 방문 시에는 집안의 위급한 일들로 전혀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두 번의 만남 때문일 것입니다. 이전에 담임했던 유학생 교회의 교우들과의 회합을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가졌으며, 또 이 홈페이지 회원들 중에 활발하게 댓글 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시는 몇 분을 개인적으로 만났습니다.
이 두 만남을 통해 제가 오히려 더 큰 위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물론 정성어린 융숭한 대접과 함께 말입니다. 많이 부족한 저를 따뜻하게 격려해주시었습니다. 또 작금의 한국교회의 힘든 사정들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복음의 퇴색 내지 실종을 염려했습니다. 저로선 더더욱 성경을 바로 전하는 일에 충성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의 이번 한국방문이 아주 선하게 매듭지어진 까닭은 전적으로 주님 안에서 만난 형제들과의 아름다운 교제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이번에 신자가 반드시 섭취해야만 하는 신토불이를 맘껏 맛본 것입니다. 바로 한 성령, 한 주님, 한 믿음, 한 소명 안에서의 연합 말입니다. 또 비록 오랜 세월이 경과된 후의 첫 만남이었지만 하나님이 작정해 놓으셨던 제철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어서 더더욱 좋았던 것입니다.
여러 지역에서 여러 모양으로 흩어져 있는 성도들과의 두 만남이었지만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참 교회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머리로 삼을 때에 이뤄지는 공동체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홈페이지 사역을 통해 더욱 충만하고 풍성한 주님의 우주적 교회가 세위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회원과 방문자님들도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든 신자가 누릴 제철의 신토불이를 함께 맘껏 맛보게 되기 바랍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게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4:4-7,13)
6/29/2010
방문 중에 저를 환대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개인적으로 인사도 올리겠지만
우선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운영자 부재중에도 이 홈피를 뜨겁게 달궈주신 분들께는 더더욱 감사합니다.
너그러이 양해를 구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만난 분들에 대한 저의 쌩얼 미팅 보고서를 혹시 기대하실지 모르지만
각자의 프라이버시도 존중해주어야 하는 만큼
감히 상기 나눔의 글로 간략하게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글에서 약속드린 대로 더욱 충성하겠습니다. 샬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