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자 마귀와 대문자 하나님
알다시피 영어에는 존댓말 표현이 없습니다. 선생님, 목사님, 심지어 부모님도 이름 그대로 부르기 예사입니다. 동방예의지국 출신으로는 그런 표현을 접할 때마다 잠시 당혹되기도 하고 심지어 무식한 놈들(?)이라고 경멸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저께 오랜만에 미국교회의 주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화면에 비춰지는 찬양가사 중에도 그런 표현이 있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석연찮게 여겨졌습니다. "We raise up holy hands."(우리 거룩한 손을 듭니다.) 어떻게 우리 손이 거룩할 수 있단 말입니까? '거룩(holy)'이란 오직 하나님에게만 적용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젠 존댓말이 없는 정도를 넘어 거꾸로 스스로를 높이다 못해 하나님을 모욕하는 죄마저 저지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어지는 가사가 이랬기 때문입니다. "to praise the Holy One."(거룩하신 그분을 찬양하기 위해) 하나님과 그분과 연관되는 모습은 반드시 대문자로 표현하기에 소문자 거룩은 그분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잠시 깜박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거룩하신 존재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믿음이 좋고 의롭다 해도 감히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의 임재 아래 들어가 거룩하신 그분을 진정으로 찬양하기 위해 높이 든 우리 손은 거룩해집니다. 실제로는 거룩과 전혀 거리가 멀지만 그분께서 거룩하게 여겨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으로 임재하신 하나님께 다가갔을 때 네가 서있는 곳이, 광야의 척박한 땅에 불과한데도, 거룩하다고 당신께서 칭해주었듯이 말입니다.
불현듯 우리말로는 이런 구분이 아예 없거나, 하려해도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주 크게(유일하게) 거룩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작게(덜) 거룩한 손을 들고 찬양합니다.”라고 표현하면 얼마나 어색하겠습니까? 거기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손도 거룩해진다는 의미를 이렇게 간단하게 담아낼 재간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런 생각에 잡혀 있던 중에 우연히 바로 앞줄에서 손을 높이 쳐들고 열심히 찬양하고 있는 중년남자의 티셔츠 디자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낚시에 걸린 송어 한 마리가 크게 그려진 아래위로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Live to fish, the only way to live." (낚시하려고 산다. 삶의 유일한 길이다.) 굉장한 낚시광인가 봅니다. 그가 비록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티셔츠에 야구모자 쓰고 예배에 나왔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은 분명히 그의 높이든 손도 거룩하다고 칭찬해주었을 것입니다. 또 그분의 속마음도 틀림없이 낚시보다는 "Live to praise, the only way to live."(찬양하려고 산다. 나의 유일한 삶의 길이다.)였을 것입니다.
여행 중인 호텔 방에서 영어성경으로 큐티했던 어제 아침에도 이런 식의 대문자와 소문자가 대조되는 성경구절과 또 마주쳤습니다. "Resist the devil and he will flee from you. Draw near to God and He will draw near to you."(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약4:7b,8a) 마귀(the devil, he)는 소문자, 하나님(God, He)은 대문자로 대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가 그분과 같이 대문자로 받을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소문자에 불과하기에 우리가 얼마든지 대적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마귀를 멀리만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아예 멀리 쫓아내시고 접근 금지를 명하십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마주치는 문제들 또한 그분에게는 지극히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그분보다 더 큰 환난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죄 가운데 있고 심지어 마귀의 조종에 놀아나고 있어도 그분께 가까이만 가면 그분은 우리에게 가까이 내려와 주십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 주관,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그 모든 피조물과 따로 떨어져 계시는 구별된 분입니다. 영어성경에서 대문자로 호칭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자칫 그분과 맞짱(?)도 뜰 수 있다고 여기는 마귀마저 소문자에 불과합니다. 그분 외의 모든 존재는 피조물로서 그분 앞에선 한갓 개미 같을 뿐입니다. 피조물끼리는 동등한 위치에서 도토리 키 재기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미워하고 다툴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 잡고선 마치 대문자처럼 행세하는, 사실은 속이고 있는, 마귀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너무나 교만하게도 내 자신만 대문자로, 하나님마저 포함해 나머지 모두는 소문자로 여기는 경우는 없을까요? 그 반대로 너무나 의기소침하게도 자기만 소문자로, 사단마저 포함해서 나머지 모두는 대문자로 여기는 경우는 없을까요? 신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산다. 내 삶의 유일한 길이다”라는 고백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분만이 대문자로 대변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며, 또 그분께 가까이만 가면 그 사실을 더 분명하게 체험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5/4/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