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지는 순간 인생의 끝인가?
어렸을 때에 어른들이 뒷짐 지고 걷는 모습을 보면 노숙한 멋도 있었지만 자꾸 거들먹거리는 것 같아 싫었던 기억이 더 큽니다. 요즘 제가 걸을 때 저도 모르게 자꾸 뒷짐이 져지는 것을 느낍니다. 양팔을 활발하게 흔들며 걸어야 제대로 운동이 될 텐데 그마저 귀찮아진 것입니다.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것 같아 괜스레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망건 쓰고 장죽 들고 사사건건 잔소리하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 되니까 말입니다.
육신이 쇠해지면 자연히 그렇게 되는구나 싶어서 어렸을 때 속으로 어른들의 그런 모습을 비난했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런데 제 잘못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비난했던 그대로 저에게도 괜히 나이든 생색을 내려는 의도가 은연중에 없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해 알 만큼은 안다는 자부심 비슷한 것이 자연스레 고개를 하늘로 향해 쳐들고 허리는 뒤로 젖혀지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말하자면 저도 인생에 대해 뒷짐을 지기 시작하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주변 일들에 대한 관심이 줄면서 서서히 방관자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인생이 헛되고 헛되니 아무리 용을 써도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체념이 생기는 것입니다. 거기다 내가 지난 세월에 쌓은 경험과 지식이 다른 이보다 훨씬 많고 또 내가 아는 것이 옳으니 내 눈에 벗어나는 일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독선마저 생깁니다. 남의 허물과 잘못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려고 항상 준비하고 있는 꼴입니다.
물론 그런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좀 더 여유롭고 초월한 입장에서 관조할 수 있는 태세도 생겼습니다. 당사자 혹은 관련자로 문제의 와중에 휩쓸려 있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바둑 급수가 낮아도 훈수는 잘 두는 이유가 승부를 초월한 국외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판세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어떤 일이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잠시 뒷짐 지는 여유를 부릴 줄 안다면 자기 어깨에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과욕, 고집, 편견 등을 조금은 벗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도 뒷짐에 그런 긍정적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 의인의 길로 걸어서 늙어 백발이 된 것은 하나님께 받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합니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잠 20:29) 노인들은 외모로나 힘으로는 내세울 것이 없으나 백발이 될 때까지 체득한 인생의 지혜가 아름답다고 합니다.
주목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백발이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현실 삶의 지혜를 젊은이에게 나눠주는 여유로움만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확신하게 된 인간의 근본에 대한 진리를 전파하고 또 몸소 실천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인생살이에 대한 지혜로운 잠언을 많이 기록한 솔로몬이 전도서에선 어떻게 결론 내렸습니까?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여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전12:9), 그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과 같다”(11절)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것이 세상 모든 잠언을 다 합친 지혜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아니 참 지혜가 바로 그것이라고 자신의 잠언에서 이미 밝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뒷짐 지고 걷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가슴을 앞으로 쭉 뻗으면서 시선을 약간 위쪽으로 해서 멀리 바라보면서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뒷짐 지고 양반 행세로 걷는 모습입니다. 만병이 정신적으로는 스트레스에서 오지만, 육체적으로는 자세가 똑바르지 못한 데서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뒷짐을 지면 구태여 자세를 바로 세우려 노력할 것 없이 자연히 그렇게 되기에 산보할 때 일부러라도 그렇게 걷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참으로 신비하지 않습니까? 나이가 들면 팔이 앞뒤로 움직여지지 않는 대신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뒷짐을 지게 되는 것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이 들수록 더 강건해지는, 정확히 말해 그 나이에 걸맞은 건강유지 비결을 육체 속에 이미 숨겨두었던 것입니다. 종일 책상 다리하고 앉았던 옛날 양반들도 자기들은 의식 못해도 뒷짐 지고 걷는 동안 자세를 곧추 세우는 스트레칭을 했던 것입니다. 모든 육체 안에, 그것도 뇌가 아닌 근육이나 세포조직 안에조차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양 즉, 고도의 지능이 심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골다공증 위험 경고를 받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연히 칼슘 섭취와 걷는 것이 필수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칼슘이 든 음식을 항상 많이 먹었고, 매일 삼십 분 이상씩 걷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각각 2%씩 부족했음을 몰랐습니다.
칼슘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비타민 D와 함께 먹지 않으면 오히려 체내에 누적되어 결석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비타민 D는 달걀노른자에 가장 많이 있지만 햇빛을 보면 자연히 가장 많이 생성된다고 합니다. 반면에 저는 실내에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가장 많았기에 칼슘부족보다 비타민 D 결핍이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저에게 가장 합당한 치유책은 햇볕을 받으며 뒷짐 지고 걷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인들이 유난히 따뜻한 햇볕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우선 생체 활력이 떨어져 추위를 잘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나이가 들면 뼈가 약해지기 시작하므로 하나님이 자연히 햇빛을 사모하게끔 육체 속에 이미 프로그램 해놓은 것입니다. 이 또한 참으로 놀랍고도 은혜롭지 않습니까? 이런 하나님을 어찌 경배하며 순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요체는 나이 들어 뒷짐 지고 걷기 시작한다고 인생의 끝자락에 이른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종하는 일을 그만두거나, 하지 않으면 아무리 어리고 젊어도 이미 백발이 된 것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나이 들어 백발이 성성하고 남들 보기에 건방지게 뒷짐 지고 걸어도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만 가슴을 곧추 세운다면 청춘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노욕(老慾)이 얼마나 삶을 망치는지에 관한 예가 많습니다. 엘리 제사장, 사사 기드온, 심지어 잠언과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마저 그랬습니다. 아니 지금도 유명한 목사님들이 젊었을 때의 공로를 다 까먹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지 않습니까? 반면에 나이가 들수록 백발이 더 영화롭고 아름다워진 자들도 많습니다. 에녹을 필두로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등 말입니다. 그래서 최근 햇볕을 받으며 뒷짐 지고 걸으면서 속으로 드리는 저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육신적 힘이 떨어진다고 자꾸만 인생의 방관자가 되려는 저의 나태함을 꾸짖고 영혼과 육신 모두를 소생시켜 주시옵소서. 매일 아침마다 인생의 첫날을 시작하는 영적 소년으로 거듭나게 해주시옵소서. 비록 제가 뒷짐을 지고 걷더라도, 아니 그렇게 걸음으로써 건강을 더 잘 유지토록 해주신 하나님을 날마다 순간마다 경배하고 순종하게 해주시옵소서. 나이 들수록 햇빛을 좋아하고 또 뒷짐 지고 걷게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7/26/2012
참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것, 그것이 진짜 지혜임을 시간이 흐를 수록 더더욱 깨닫고 머리가 하얗게 되어지는 의미도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다다가는 지혜가 쌓여가는 것이기에 그 또한 기쁘게 여기는 자가 되어져가길 소원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