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에 노예가 된 목사
한 달 전쯤 갖고 있던 스마튼 폰이 고장 나서 약 2주간 사용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주 불편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다가 차츰 그 상황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내의 전화를 급하면 사용했고 카톡 교신은 컴퓨터로 지장 없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 전화기를 마련할 때쯤에는 꼭 스마트 폰이 없어도 지낼 수 있겠다는 건방진(?)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제일 싼 구형모델을 새로 구입해 사용하면서 배터리를 아예 Ultra Save Mode로 바꿔버렸다. 자주 사용하는 최소의 앱만 오픈되고 모든 화면이 흑백으로 뜨는데 한번 충전에 닷새 정도는 사용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72%가 남았는데 3.5일을 사용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옛날 휴대전화기에 카카오톡, 텍스트, 인터넷접속 기능만 보탠 정도이다.
이렇게 일주일 정도 사용해보니, 물론 그 동안 충전은 한 번 밖에 하지 않았음, 제가 그 동안 너무 스마트폰에 중독 아니 노예가 되었다는 점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누워 자다가도 눈만 뜨면 열어보고 별일 없는데도 이런 저런 앱을 사용하느라 만지작거렸다. 새 전화기는 그야말로 전화기 고유의 기능밖에 하지 않는다. 카톡 교신은 컴퓨터로, 사진촬영은 집사람 스마트 폰으로 하면 되니까 실제로 하루 종일 제 책상 옆에 흑백화면인 채로 놓여있다. 그 화면도 1-2초 만에 사라진다. 전화 벨 소리가 날 때만 받으면 그만이다.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해방된 자유로움에 서서히 편안해져 가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겸 신학자인 자크 엘롤의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선 큰 주제를 말하면 현대는 기술적 수단이 진리 탐구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성공, 효율성, 능률인데 더 빠르고 더 정확하면 무조건 좋은 것이 되었다. 성공한 것은 좋은 것이고 실패한 것은 나쁜 것이다.
그래서 기술로서의 수단에는 어떤 한계도 없어졌다. 모든 종류의 대상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기술법칙 외에 다른 규칙은 모르며 어떤 가치판단도 받지 않게 되었다. 한마디로 인간이 기술의 노예가 된 것을 넘어 수단마저 수단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이다. 수단이라는 절대군주의 무차별적인 지배는 영적인 영역에까지 미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세상속의 그리스도인”, 대장간 1992년 번역출판, 2013 개정3쇄판 92-115 page에서, 저자 엘롤은 훨씬 더 심오하고 복잡한 주제를 다루지만 알기 쉽게 간략히 줄여서 인용함)
지금보다 거의 1세기 전 사람(1912년 생)의 1948년 저작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심지어 오늘날보다 더 앞서가는 상황까지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예측했다. 제가 스마트 폰에 속박되었던 사소한 경험도 그 심층을 파고들면 엘롤의 분석과 정확히 일치한다.
엘롤이 제 가슴을 더 서늘하게 만든 것은 영적인 측면도 동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작금 교회사역에서 수단이 목적과 가치를 앞서버린 측면이 너무 많다. 영적 선각자(?)들에 의해 신자들에게 영적으로 새롭게 장려 권면되는 것들도 수단 일색이다. 신자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이 되지 않고 사역이라는 수단이 영적절대가치를 뽐내게 되었다. 그런 수단을 잘 활용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적 목회를 하고 있다는 칭찬까지 받는다. 혹시라도 제 일상 삶은 물론이고 섬기는 교회와 인터넷 사역에 수단의 절대화로 인해 하나님의 목적과 가치를 뒷전으로 돌려버리는 일이 없는지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7/15/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