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산불에 가장 먼저 챙길 것은?
제가 사는 LA 일원에 산불이 번져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습니다. 가장 건조한 이맘때에는 강풍마저 겹쳐 산불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나지만 금년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벌써 800이 넘는 집이 소실되었고 수십만 명이 정든 집을 버려둔 채 피난 가야 했습니다. 금방 비가 올 것 같지 않아 수많은 헬리콥터와 비행기가 동원되었지만 언제 불길이 잡힐지 감감합니다.
이곳은 또 미국에서 가장 활발한 지진대 위에 자리한지라 수시로 지진이 들이 닥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긴급 사태가 닥쳐도 비교적 능숙하게 대처합니다. 각종 약품, 식품, 물, 침낭, 전등 등을 비상용 상자에 상비해 두고 있습니다. 그 외에 휴대폰, 컴퓨터, 중요서류, 귀중품 등을 당황하지 않고 차례대로 챙기고 마지막에는 애완동물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화재, 지진, 홍수를 당해 생명부터 건지고 보아야할 그런 긴급 사태에 잠시 말미가 주어진다면 과연 무엇부터 챙겨야 할까요? 가족이 다 무사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당연히 평소에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오고 싶을 것입니다.
저도 이곳으로 이주한 직후부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무엇부터 들고나갈지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막상 닥쳐서 당황하지 않도록 그 물건들이 있는 장소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여권, 집문서, 세금, 은행 관계 서류들은 007 가방에 따로 모아두었습니다. 물론 신용카드, 수표책, 핸드폰, 지갑 등은 바로 손이 닿는 일정한 장소에 항상 둡니다.
그런데 정말 일초가 급해 딱 한 번만 들고 나올 수 있다면, 즉 다른 모든 것은 포기하더라도 그것만은 절대 없애선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 경우는 단연코 한 손에는 컴퓨터를 다른 손에는 작은 상자에 별도로 넣어 둔 묵상메모지와 설교노트를 들고 나올 것입니다. 수년전부터 이런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다시 생각해보지만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돈이나 집문서부터 챙기지 않는 것을 자랑하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집문서는 법원에 원본이 있고 또 현찰은 가진 것도 없거니와 사실 미국에선 집안에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식량 물 약품 등은 구조 센터에 가면 얼마든지 신세질 수 있습니다.
제가 감사한 것은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을 정해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건진 후에도 계속 동일한 일을 하고픈 소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까?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먼저 챙길 수밖에 없는데 저에게는 예수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바꿔 말해 다시 태어나도 하고 싶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긴급사태가 닥쳐도 무엇부터 챙겨야 할지 모른다면 얼마나 불쌍합니까? 소중한 것을 미처 건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그 인생에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되는 대로 살았다는 반증이지 않습니까?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아무리 화려하고 풍성하게 쌓아두어도 막상 그 중에 딱 하나만 건져야 할 것도 정하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그 모두를 쌓는 것입니까? 정말 필요한 것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엄밀하게 따지면 인생은 버리는 싸움이지 쌓아가는 싸움이 결코 아닙니다. 그 이유는 아주 명료합니다. 인생은 태어나자마자 한시도 쉬지 않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며 또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갖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을 뵐 기대와 소망 말고는 말입니다. 그럼 누구에게나 이 땅의 최고 보물도 바로 천국소망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0/23/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