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더더욱 오지랖이 되어라.
사람은 늙어가는 것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왜 나이만큼 대접 안 해주느냐고 화를 내는 자와, 늙은이 취급당하는 것을 오히려 싫어하는 자다. 또 연륜만큼 경험과 지식이 쌓였으니 젊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계해야 한다는 자와 시대가 격변하고 있으니 젊은이들이 알아서 잘 하도록 뒷전에 조용히 물러나있어야 한다는 자다. 너무 단순한 분류지만 적극 능동 외향적인 사람과 소극 수동 내향적인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매일 아침 운동하러 가는 체육관에 우리 부부가 ‘오지랖’이라고 별명을 붙인 미국 노인 한 분이 있다. 자기 운동은 거의 뒷전이고(?) 일일이 보는 사람마다 말 거느라 더 바쁘다. 그를 모르는 자 없을 정도다. 체육관 안을 전부 헤집고 다닌다.
저는 그 할아버지와는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가뜩이나 제가 벅벅거리는 영어를 하는데다 남부 악센트는 알아듣기 힘들고 노인이라 소리가 입안에서 웅얼거려 그렇다. 그래서 일부러 못 알아보게 구석 자리에서 운동을 하고 있어도 기어이 찾아와서 반갑게 말을 건다. 대충 미소와 고개 끄덕거리는 것으로 맞장구쳐주면 다음 사람으로 또 옮겨 간다.
그러나 남의 일에 훈계 간섭 충고하는 법은 없고 일상 안부가 전부다. 처음 제 집사람을 보더니 딸하고 같이 왔느냐고 조크를 했다. 원래 서양인은 동양인의 나이를 잘 못 알아맞히긴 해도 그만큼 젊어 보이고 날씬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 분이 말한 대로 전하는 것이니까 잠시 팔불출은 참아 주시길... 저는 한 술 더 떠 딸이 아니라 손녀라고 맞받았다. 그간 몇 번의 호칭변경이 있다가 이제는 여동생으로 부르기로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 했다.
오늘은 아내가 파트 타임 일하러 가는 바람에 혼자 가는 날이었다. 그는 이제 제 아내가 일하는 요일까지 알 정도가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씩씩하게 제 곁에 오더니 “네 나머지 반쪽(your another half)에게 건강 잘 챙기고 내가 기도한다고 꼭 전해 달라”고 했다. 이제는 이 할아버지가 사랑스럽고 감사하기까지 하다.
문득 나이가 들면 아니 들수록 오지랖이 되는 것이 참 좋겠다 싶었다. 이분처럼 보는 이마다 격려 칭찬하는 말만 적극 건네는 그런 오지랖 말이다. 그것도 이른 새벽에 그러니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정말로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만 좋은 것이 아니다. 본인도 그런 인사를 한 명도 빠트리지 않고 하려면 기억력도 아주 좋아야 한다. 치매 예방에도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문제는 저는 전형적으로 소극 수동 내향적이라 도무지 그럴 그릇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신에 하나님 앞에 오지랖이 되면 된다.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딤전5:5) 주변 사람이 갖고 있는 소망과 문제들을 다 기억해서 하나님 앞에 일일이 안부 묻듯이 아뢰면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노인은 외향적이면 남들에게 직접 말로 덕을 끼치고 내향적이면 하나님에게 다른 이를 위해 대신 간구해주는 오지랖이 마땅히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2/8/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