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과 같은 구원
미국 사람들은 자동차 뒤쪽 범퍼에 간단한 경구나 재치 있는 유머를 적은 스티커를 부치기 좋아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산책 길에 어느 집 앞에 세워둔 미니밴의 스티커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마음은 낙하산과 같다. 열릴 때에 작동한다.”(Mind likes Parachute. Functions when opens.)
참으로 맞는 말 같습니다. 아무리 이 쪽에서 상대를 사랑하거나 잘해주려 해도 상대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목사라는 직업의식이 발동하다 보니까 저는 그 말씀이 의미하는 일반적 진리에서 한 칸 더 나가게 되었습니다. 낙하산이란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바로 죽음과 연결됩니다.
인간의 구원도 낙하산과 같지 않나 싶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 대신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으로 떨어져 죽음만이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자 자신의 마음을 반드시 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연다는 것이 단순히 예수를 믿어 지옥 가는 것을 면해보자는 자신의 선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뛰어내리는 것을 선택하여 낙하산을 작동시키는 사람은 공수부대 군인이나 취미로 스카이다이빙 하는 사람뿐입니다. 뛰어 내리지 않고는 바로 죽는 상황, 다른 모든 구원의 수단이 다 막히고, 오직 낙하산에만 자기 생명을 의탁하여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이 안 되고는 어느 누구도 낙하산을 작동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인간이 마음을 연다는 것은 십자가 외에는, 예수님이 자신의 구세주가 되지 않고는 자신은 완전히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만 자신의 전 존재와 일생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믿어 보기로 한 것, 예수님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 기독교의 가르침대로 따르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무엇이 좋아도 좋겠지 기대하는 것들을 두고 마음이 열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비행기 여행 중에 고장이 나서 추락하고 있는데 낙하산으로 살아 난 체험을 했다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생존 확률 제로에서 다시 온전한 새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와 똑 같은 기적을 체험하여 그 이후로는 그저 받은 덤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격을 갖고 자신의 일생을 생명의 은인되시는 주님을 위해 바치고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아침에 우리 모두 그런 감격과 감사와 헌신과 실천이 있는지 자신을 되돌아 보기 간절히 원합니다.
"구원은 낙하산과 같습니다. 십자가에 자신이 매달릴 때에 유효합니다.”(Salvation like parachute. Functions when hang myself on the cross.)
9/7/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