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값도 제대로 못하는 목사
저는 교만이 하늘을 찌를 듯 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로 달라진 것 중의 하나가 그 교만이 조금은 수그러들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나이가 조금씩 먹어가니 이전에 자랑했던 부분이 쇠퇴하여 내세울만한 것들이 하나씩 둘씩 없어집니다. 어쩔 수 없기 때문에라도 일단 겉으로는 겸손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태껏 제가 큰 소리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나이 되도록 머리 염색을 하지 않고 칠흑(?) 같이 검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지간해서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비결이 따로 없고 저는 감기를 아예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감기는 약을 먹으면 2주 만에 안 먹어도 보름 만에 낫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으슬으슬해진다 싶으면 약은 전혀 먹지 않고 아예 푹 쉬어 버립니다. 감기도 자존심이 있는지 자기를 너무 무시하는 제 같은 자에게 잘 덤벼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감기를 무시하고자 하는 힘마저 약해진 것인지 그저께부터 코가 막히고 눈알이 빠지는 것 같이 아팠습니다. 또 다시 약을 안 먹고 이를 악물고 이틀을 버텼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아예 피가 조금 섞인 누런 코를 쓰레기 통 가득 쏟아 놓았습니다.
저는 사실 7년 전에 받은 큰 수술의 후유증으로 오른 쪽 눈이 항상 시큼거리고 아팠습니다. 조금 무리하면 책을 읽거나 모니터를 보며 타이핑하는 일을 하기 힘들 정도라 아무리 수술 후유증이라도 해도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오랫동안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휑하고 크게 코를 풀었더니 신기하게도 눈이 갑자기 시원해졌습니다. 단순히 감기로 아팠던 눈뿐 아니라 이전부터 시큼거렸던 그 통증이 순간적으로 없어진 것입니다. 그 기도의 응답인지, 얼마나 이 효과가 오래 지속될지는 아직은 감기가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차라리 계속 코를 풀더라도 눈이 시원해진 것이 더 낫다 할 정도입니다.
인간의 신체를 하나님은 너무나 오묘하게 만들어 놓았지 않습니까? 많은 전사자를 콧물로 쏟아 내긴 했지만 몸이 알아서 병균과 싸워 결국은 이겨내지 않습니까? 나아가 오래 기도했던 통증마저 없애주었습니다. 반드시 고통을 거쳐야 은혜가 따른다는 하나님의 원리가 이 일에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감기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갈수록 감기 균도 독해져서 제가 무시하는 힘보다 더 세어질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무시해도 감기에 걸릴 확률은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감기에게 미리 항복 선언한 것은 아닙니다. 병이란 육신과 마음이 쉴 수 있고 또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몸의 다른 부분도 함께 강해지는 하나님의 축복인 줄 새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고통이 없으면 축복도 없기에 고통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로 한 것입니다.
이제 저에게 남은 자랑거리라고는 머리카락을 염색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 뿐입니다. 그런데 그 자랑거리마저 없어져야 비로소 제 교만도 완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겸손이 상당한 수준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기껏 나이에 걸 맞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백발이 면류관(잠16:31)이라는 성경 말씀이 하나 틀림 없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