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실종된 인생들
오래전 한국에선 명절날 영화 구경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날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기 때문에 표를 구하는 것이 힘들어 명절날 나들이 하는 것만큼 촌스런 짓도 없다고들 말했습니다.
저는 이번 독립기념일 공휴일에 이 오래된 낙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촌스럽게(?) 하지 않으려고 외출은 하지 않고 집에서만 즐겼습니다. 여름 방학이라 조카들 책을 빌려주느라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가 영화 비디오를 세 개, 그것도 각기 세 시간이 훨씬 넘는 대작만 골라 와서 하루 반 만에 다 봤습니다.
미국 도서관에는 책은 물론 영화 비디오와 디비디 심지어 음악 CD까지 공짜로 빌려주는데 흘러간 명화는 도서관에나 가야 있습니다. 영화를 빌리러 일부러 가지는 않는데 이처럼 갈 기회가 생기면 이전에 감동을 받았던 추억을 되살리려 가끔 빌려다 봅니다.
이번에는 로버트 데니로 주연의 Deer Hunter, 폴 뉴만 주연의 Exodus, 피터 오툴 주연의 Lawrence of Arabia, 셋을 빌렸습니다. 원체 잘 만든 영화들이라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오래된 영화를 다시 보는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고리타분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런 오랜 영화들은 주로 제가 불신자 시절에 보았던 것들인데, 하나님을 믿고 난 이후 인생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져 미처 지나쳐버린 부분을 새로운 의미로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전에는 스릴, 서스펜스, 러브, 휴매니즘 등등 영화선전에 상투적으로 나오는 문구 그대로 순간적 재미와 감각적 흥분과 인간적 의리에 중점을 두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알고는 인간의 연약함과 죄성, 인생의 모순과 질곡, 또 그런 배경에 있는 눈에 안 보이는 섭리와 은혜들을 주로 봅니다.
불신자 감독이 만든 영화에 그런 메시지가 명시적으로는 없지만 이전 명화들은 인생을 아주 진솔하게 그렸기 때문에 은연중에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하나님의 신성이 만물 가운데, 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입니다. 요컨대 어떤 인생이라도 하나님이 만드신 한 편의 걸작 드라마이며 그것을 옛날 영화들이 아주 잘 표현했다는 뜻입니다.
요즘 영화에는 드라마가 없어졌습니다. 미국 영화의 주 고객층인 학생과 젊은이들이 드라마는 싫어 한다는 뜻입니다. 최고 대목으로 3달이나 되는 여름 방학에는 코미디, 액션, 판타지, 호러 만 판을 칩니다. 대신에 아카데미 작품상만 노린 드라마들은 시상식 일정에 가깝지만 2 주밖에 안 되는 겨울 방학에 잠시 맛만 보이고 치웁니다. 기자들, 평론가, 영화계 종사자, 드라마 매니아들만 겨우 본다는 뜻입니다.
드라마는 우선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게 만들고 또 반전이 반드시 있기에 끝에 가서야 결론을 알게 됩니다. 순간적, 감각적, 우발적, 비정상적인 것들만 좋아하는 이 세대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소위 Cool한 것만 찾습니다. Cool 하지 않으면 일단 따분한(Boring) 것입니다. 실제 삶도 그렇게 삽니다. Cool이란 순간순간 자신의 Feel에 뭔가 꽂혀야 하는 것으로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촌스럽게 여깁니다.
지금 이 자리(Now and Here)에서의 Cool이란 장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증입니다. 모두들 드라마가 실종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 세대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드라마를 좋아하기에 당신의 자녀들의 인생을 아주 기가 막힌 드라마로 이끈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저처럼 드라마 매니아입니다. 아니 제가 예수를 믿고 난 이후 그분이 만드신 드라마에 매니아가 된 것입니다.
Cool 한 인생과 Dramatic 한 인생 중에 과연 어느 쪽이 살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느 쪽을 좋아합니까? 전자는 불신자가 추구하는 인생이 아닙니까? 신자는 비록 눈물과 한숨과 상처들이 때때로 교차할지라도 하나님의 드라마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라야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지 않겠습니까?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함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이 되니까 말입니다.
드라마는 촌스러울지 몰라도 진실합니다. 하나님도 현세대들에게 촌스럽게 여겨질지 몰라도 너무나 진실합니다. 그분의 전적 주권 아래 맡긴 인생 또한 촌스럽지만 진실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의 인생이 굴곡과 모순이 많아 보입니까? 하나님의 기막힌 드라마가 지금 당신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나고 감격스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삶과 인생이 진실 될 뿐 아니라 언젠가는 하나님 특유의 너무나 오묘하고도 은혜가 넘치는 반전(反轉)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7/6/2006
모든 각본과 내용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드라마에 저를 참여시키신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