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뤄질 수 없는 두 가지 꿈
저는 아마도 평생을 두고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은 꿈 두 개를 갖고 있습니다.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한국 월드컵 때의 구호나,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적 형편이 그렇습니다.
우선 수염을 한 번 멋지게 길러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일마다 교회를 가야하니까 기르고 있는 중의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기 싫고 또 한국인들 사이에 수염이 별로 깨끗한 이미지를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열심히 길렀다가 주일날 아침에는 주저 없이(?) 면도한 적이 그동안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저처럼 얼굴이 검은 사람에게는 수염이 잘 어울리지 않는데다 그 관리가 여간만 귀찮지 않음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괜히 남성적인 매력의 상징인 것 같고 나이 들어 중후한 맛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또 다른 꿈은 아예 아주 한적한 시골로 들어가서 말씀과 기도에만 전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든 그럴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고 또 글을 쓰는 확실한 일거리가 있지만 집사람이 너무 외로울 것 같아 결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아무 수입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은퇴 계획이 전혀 서있지 않는데다 자식들이 보고 싶어 그 근처에 살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이 또한 꿈으로만 끝날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잘 아는 분이 LA 공항에 몇 시간 경유하기에 오랜 만에 잠시 만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턱수염을 길러서 영 딴사람이 되어서 나타났습니다. 제가 도저히 이뤄보지 못한 꿈을 저보다 최하 십년은 젊은 분이 벌써 달성한 것입니다. 이 분은 미국 직장에 다니면서 얼마 전부터 미국 교회에 출석하니까 과감히 수염을 길러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생활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미국인들도 아주 단순합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나아가 그들에겐 수염을 기르는 것은 아무런 흉이나 꼴불견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오직 수염을 길러보겠다는 일념으로 미국교회에 출석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신에 사람이 꿈을 이루는 방법이 사실은 아주 단순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위 사람 눈치 전혀 보지 않고 그냥 결단해서 일단 첫걸음부터 시행하고 보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부차적 요인이나 시행 후 일어날 부작용은 무조건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사정을 다 안중에 넣다보면 아무 일도 못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주일날 교인들의 눈치를 안보면 수염도 기를 수 있고, 또 아내나 아이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지금부터라도 시골로 들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제가 가진 그 두 가지 꿈은 인생에서 살고 죽거나 꼭 해야만 할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실현이 안 되어도 미련은 남겠지만 그것으로 그만이고 실현되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꼭 이루어야 할 한 가지 꿈이 있다면 무조건 시작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그 꿈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실 텐데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지 않겠습니까?
2/16/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