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에 못을 박아라.
요즘은 미국교회의 주일 아침 8시에 드리는 1부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회중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노인 부부들이 2, 3부에 비해서 유난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가보다 여겼습니다.
흔히들 20대는 시간이 기어가고, 30대는 걸어가고, 40대는 뛰어가고, 50대 이후는 날아간다고 말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길이와 간격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각 자가 체감하는 빠르기만 다를 뿐입니다. 거기다 나이 들수록 시간은 오히려 더 많이 남아돌지 않습니까? 우선 하는 일이 적어지는데다 밤에 잠도 줄어 꼭두새벽부터 일어납니다. 주일 1부 예배를 마쳐도 여전히 아침 9시이지 않습니까?
어떤 분석에 따르면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현상이 기억과 관련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뇌는 의미 있는 체험이 아니면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데 노년이 될수록 그렇다는 것입니다. 항상 반복되는 일을 하면 시간이 더디 흘러 지루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신선한 느낌의 체험이 없으니 기억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는 기억이 없으니 의미 있는 시간도 없기에 시간 자체가 실종되는 셈입니다.
반대로 어릴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은 새롭고 신기한 체험을 매번 할 수 있어서 그 기억도 풍성해지기에 시간도 함께 풍부한 것 같이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어린애들이 정신없이 종일 놀기만 하니까 시간이 모자랄 것 같지만 오히려 그들은 일주일 내내 일주일 전체의 기억이 머리에 새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노인은 일주일 내내 기억거리가 없으니 일주일이 자신 곁에 가까이 오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참 공평하지 않습니까? 일반 상식과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니까 말입니다. 노년에는 잠이 없게 만들어 시간이 남아돌게 했습니다. 반대로 할 일이 많아 시간이 태부족할 것 같은 젊은이들은 오히려 시간이 더디 가는 것처럼 여기게 만드셨지 않습니까?
결국 늙으나 젊으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시간을 붙드는 지름길이 됩니다. 최소한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의미와 보람을 느끼면 됩니다. 늙어서도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면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더디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작가 제임스 미치너가 노년에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내가 45세 때, 우리 동네의 한 농부가 나이가 들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과나무에 못을 여덟 개나 박았다. 그 해 가을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 지친 늙은 나무가 맛있는 빨간 사과들을 더 풍성하게 맺은 것이다. 농부는 ‘못을 박으니까 나무가 충격을 받아 자신이 할 일을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80세에 접어들 무렵 나의 나무 기둥에도 못들이 박혔다. 심장수술, 현기증, 왼쪽 인공 고관절 수술 등이다. 지각 있는 사과나무처럼 나도 다시 열매를 맺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고난을 당해야만 정신을 차릴 수 있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자기가 꼭 해야만 할 일이 정녕 있다면, 최소한 그런 기억이 되살아나기라도 하면, 노년일지라도 의미 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시간도 의미 있게 기억될 것입니다. 주일 1부 예배에 참석하거나 새벽잠을 설쳐 남는 여유들을 빈둥거리면 시간이 날아갈 것이지만 할 일이 있으면 시간을 다시 기어가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나이는 숫자일 뿐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나이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밝아 오는 새해에는 “늙어도(나이 들수록)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정해지는”(시92:14) 저와 여러분이 되도록 합시다.
12/29/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