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된 Off-Line 상의 만남
연초부터 제게 아주 좋은 소식이 있었다가 너무나 아쉽게 금방 취소되었습니다. 멀리 독일에서부터 L 집사님이 저를 만나러 오시겠다고 했다가, 물론 비즈니스 출장을 겸하긴 했지만. 급한 사정이 생겨 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약 3년 전에 브라질에서 오신 K 장로님을 뵌 것을 제하고는, 물론 그 때도 다른 볼일을 겸해 오셨지만, 회원과의 Off-line 상의 만남은 이번이 딱 두 번째였는데 말입니다.
오늘 아침 다시 홈페이지를 살펴보니까 이 사역을 시작한지 햇수로 만 6년이 넘고 7년이 다되어 감을 새삼 발견하고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첫 글을 올린 날이 2003년 6월 17일임을 까마득 잊고 있었습니다. 아마 당시는 어떻게 하든 글을 빨리 많이 올리는데 주력하고 또 여러 무료 포탈사이트에 이 홈을 홍보하기에 바빴기 때문일 것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과연 이름 없는 목사의 사이트에, 그것도 동영상은커녕 사진이나 음악도 뜨지 않는 무미건조한 곳에 얼마나 들려줄까 염려 되었습니다. 쉽게 읽혀지지 않는 장문의 글만 갖고 나설려니까 바위에 계란 던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성경대로 전하기만 하자는 각오를 더 다진 것이 무식한 고집 같게도 여겨졌습니다. 그런 염려가 매일 클릭숫자를 집계하는 프로그램은 설치하지 않았던 숨겨진 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초창기의 설익었던 염려와 분주함은 그동안의 방문자님들의 성원으로 말끔히 씻어졌습니다. 이젠 회원도 500명이 넘어섰고, 오래 전 감히 회원 만 명을 목표한다는 각오도 나눴지만, 여러 사이트에 제 글을 퍼서 올리는 골수 팬(?)들도 몇몇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기에 더욱 충성할 것이며 또 방문자님들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얼굴을 맞대면 하면서 서로 체온을 나누는 교제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해결되지 못하는 숙제요 항상 지니는 불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올 초부터 독일에서 위로천사를 보내주셨다고 감사했습니다. 마치 편지로만 사귀던 애인을 처음 만나는 듯한 기분으로 집사람과 함께 며칠간 들떠 있었는데 취소되었으니 못내 아쉬웠습니다. 하나님이 더 좋은 기회로 더 많은 여유를 갖고 다시 만나게 해주실 것이라는 이메일 인사로 마감하기에는 기대가 조금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L 선교사님의 게시판에 올린 글로 그 조금 남아 있던 아쉬움까지 말끔히 씻어졌습니다. 자화자찬 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선교지에서 말씀을 혼자 파야하는 것이 현실인 가운데 , 영적으로 세울 우물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수년의 시간 ... 많이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그 수년이 바로 지난 7년이었는데 하나님은 제 부족한 글로도 주님의 향기를 맡으며 또 서로 얼굴은 몰라도 교제할 수 있는 당신의 남은 자들을 곳곳에 숨겨놓으셨던 것입니다. 저도 위로 받아야하지만 저를 통해 위로 받는 자가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하며 더 큰 축복이겠습니까?
주님은 정말로 우리의 모든 생각을, 그것도 미처 정리되지 못한 부정적인 느낌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시142:3) 또 그것으로 끝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우리 속에 내주하신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서 또 대신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주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한번만 따져, 아니 따질 것도 없이 그냥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님이 대신 간구하신 일이 응답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약속입니까? 아니 실제로 저와 여러분이 얼마든지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놀라운 은혜이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너무나 당연한 말씀을 두고 제가 너무 오버하는 것으로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 만남이 불발된 일은 아쉽긴 하지만 사실 작년 말에 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개인적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 제게 생겼고 아직 해결되지 않아서 최근에는 글 쓰는 의욕마저 상실될 정도였었습니다. 바로 그런 즈음에 주님은 선교사님의 글로써 제게 넘치는 위로를 베풀어서 소명을 되살리고 의욕을 재충전해주셨습니다.
작년 말 K 목사님의 파송예배 설교를 하기 전에 그 교회 교인들에게 대충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너무 섭섭히 여기지 말라. 영영 얼굴을 대면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렇다. 세상에선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말하지만 기독교에선 완전히 그 반대로 이자정회(離者定會)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우선 천국에서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다. 또 성령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더 아름답고 풍성한 교제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홈페이지는 마음의 창인 눈을 바라보면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간에 마음까지 알 수 있는 생생한 교제는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회원과의 Off -line에서의 만남은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더 뜸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글을 통해서 주님께 받은 각자만의 은혜를 나눔으로써 얼마든지 따뜻한 체온이 오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글이 아니라도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왜냐하면 성령님이 대신 간구해주는 일이 우리 생각보다는 훨씬 빈번히 일어날 것이므로, 놀랍고도 신기한 교제가 가능할 것입니다. 전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우리 주님과도 성령 안에서 얼마든지 교제를 나눌 수 있듯이 말입니다. 또 나를 대신해 죽으시어 새 생명을 허락하신 바로 그 주님과 기도 편지로만 주고받던 사랑을 천국에서 온전히 확인하고 나눌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엄청난 기쁨과 영광에 비하면 이 땅에서 잠간이면 지나갈 어려움이 뭐 그리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8-11)
1/10/2010
그러나 목사님께서 올려주신 생명의 말씀을 읽으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만져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말씀이 기갈인 시대에 생수같은 말씀...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상에서는 혹 보지 못할지라도 천국에서 뵐 때 목사님의 밝고 빛난 영광(?)앞에 감사하며 이야기 할 날이 오겠지요.
계속해서 수고(?) 부탁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