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하나뿐인 맥도널드 가게
오래 전에 “빅맥 물가지수”(Big-Mac price index)라는 시사용어가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맥도날드는 세계 도처에 지점망을 갖춘 데다 재료도 전부 미국산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대표 상품인 빅맥을 현지 환율로 달러 환산해 비교하면 모든 나라의 물가 수준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맥도날드는 전 세계인에게 패스트푸드의 대명사가 되었고 어느 나라나 똑 같은 품질과 디자인을 유지합니다. 특별히 크고 노란 “M" 부호(emblem)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띄어 영어의 알파벳조차 몰라도 맥도널드 가게인 줄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이곳 LA 동부에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간판을 가진 맥도널드 가게가 있습니다. 주민 대다수가 한국인과 중국인인지라 한글로 "맥도널드", 또 중국어로 "麥當勞" 라고 병기해놓았습니다. 세계 모든 지점을 조사해보지 않았기에 그 나라 말로 표시해 놓은 곳도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영어까지 3개 국어로 적은 놓은 곳은 여기 하나뿐일 것입니다.
사실 제가 하나 뿐인 가게라고 말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어떡하든 손님을 많이 끌어야 하기에 간판을 그렇게 만든 것이야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느 가게를 가든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면 공짜로 주는데 유독 이곳만은 몇 십 센트 돈을 내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세계에서 하나뿐입니다.
어떤 분이 매니저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뭔지 아십니까? “너희가 티백(tea bag)만 달랑 갖고 와서 뜨거운 물을 얻어 타먹지 않느냐?” 아무 것도 안 사먹으면서 시설만 공짜로 이용하는 얌체 짓을 그만 두라는 뜻입니다. 아무래도 극심한 불경기의 여파이겠지만 물자가 풍부하기로, 사실은 그동안은 지나치다 못해 낭비하다시피 했음, 유명했던 미국 인심도 이제 한 물 갔습니다.
어쨌든 그런 말까지 듣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 잘못입니다. 중국인까지 합쳐서 “어글리 오리엔탈”(Ugly Oriental)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교통 요지에 많은 투자를 한 주인의 입장에선 공짜로 시설만 이용하는 고객 때문에 컵, 물세, 전기세, 인건비 등에서 손해 볼 이유는 전혀 없지 않습니까?
이는 어떤 면에선 서양과 동양의 사고가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일종의 문화 충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서양인은 이성적, 논리적, 객관적이기에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합니다. 비용이 소요되는 뜨거운 물을 주면서 응분의 돈을 받는 것은 너무나 정당합니다. (참고로 아무리 손님이 왕이라지만 미국에선 주인이 얼마든지 손님을 거부할 권한도 인정합니다.)
반면에 동양인의 생각은 “그깟 물 하나 갖고 뭐 그러냐?”는 식입니다. 나아가 “너희가 이왕에 뜨거운 물을 공짜로 주니까, 다른 것도 사먹으면서 티를 가져와 타먹었는데 뭐가 잘못이냐?”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도리어 주인에게 전가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고에 굉장한 유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고 흐름이 다분히 감성적, 직관적, 주관적이기에 공사를 잘 구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융통성을 발휘하며 적응하려 듭니다.
비유컨대 서양인 사고가 직선이라면 동양인 사고는 원입니다. 전자는 중도에 장애를 만나면 반드시 해결하고 나가지만 후자는 둘러 가면 그만입니다. 자연히 전자는 적극적, 능동적인 행동이 앞서며 비타협적 결과를 낳지만, 후자는 소극적 수동적인 사색에 치중하며 어떤 일에도 관용적입니다.
이 경우도 동양인은 주인이 따뜻한 물을 공짜로 주니까 단순히 티백을 갖고 와서 타먹은 것에 불과합니다. 스스로는 별다른 하자 사항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서양인은 가게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돈을 지불해야 하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일종의 주인을 속이는 행위(cheating)라고 간주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사고 중에 어떤 것을 선호할까요? 기독교가 서양 종교이므로 당연히 하나님도 직선적 사고를 가지신 분일까요? 이스라엘은 사실은 지리적으로 서양이 아니라 동양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외모는 서양인을 더 닮았으니 동서양을 잊는 가교(架橋)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릅니다. 실제로 사해는 지표에서 가장 낮은 곳(해발 -481 미터)이라 지구의 배꼽에 해당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연찮게도(?) 이스라엘의 그런 지리적, 인종적 위치와 일치하여 기독교의 하나님은 서양과 동양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분입니다. 직선이나 원 둘 중 하나만의 사고방식을 갖지 않습니다. 둘 다를 아우릅니다. 나아가 인종, 민족, 문화, 제도, 관습, 종교 등으로 인간을 절대 차별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분은 죄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비타협적인 직선을 유지하는 반면에 죄인에 대해선 한없이 포용적인 원으로 품어주실 뿐입니다.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에 드러난 진리만이 그분이 인간을 대하는 불변의 방식입니다. 시대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이 원리는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바꿔 말해서 구원 이후의 신자도 그분의 권능과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려면 그분의 이 원리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스스로 죄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타협하지 말아야 하되 자신의 연약하고 추한 모습에 대해선 오직 주님의 긍휼만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솔직한 모습은 오히려 그 반대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그깟 것 하나 해주면 어디 덧납니까? 저도 제가 모자라고 잘못하고 있는 줄은 압니다. 그러나 제가 뭐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제 코가 석자다 보니 먹고 살려고 그런 것 아닙니까? 천하를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분이 그 정도 융통성이 없으면 어떡합니까? 이번에 이것 하나만 눈감고 지나가주시면 다음번부터 정말로 하라는 대로 다 잘하겠습니다.”
내가 융통성을 발휘할 테니까 하나님도 융통성을 조금만 동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와서도 맥도널드 가게에서 하던 버릇을 전혀 버리지 못했습니다. 손님이 조금 임기웅변을 취했다고 돈부터 요구하지 말고 주인도 조금 더 관용적이면 될 것 아니냐는 식입니다. 융통성이 지나치다 못해 죄와 사단에까지 관용적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관용은 오직 신자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비타협적이 될 때에만 발휘될 뿐입니다. 구원 전에는 사단에 묶인 죄인이 하나님의 품성과 통치 원리를 알 수 없었기에 당신께서 먼저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온갖 수난을 당하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해주었습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융통성을 전부 다 발휘해주었습니다.
구원 이후에는 신자더러 그런 헛된 인간적 융통성을 버리고 오직 신의 성품에 참예하라고 요구하실 뿐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를 포용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상천하지에 한 분 뿐인 거룩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도 그분 앞에선 다른 어느 누구나 어떤 사건과도 견주지 말고 세계에서 하나 뿐인 거룩한 신자로 서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9/1/2010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맥도날드 있는 곳이요 ^^ 처음엔 무슨 미국에 있는 식당이며 패스트푸드점들이 이래? 하면서 부당함을 느끼고 동양인이 많아서 차별을 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참 경우도 없는 사람들의 행태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 ... 생각만 해도 참 재미있는 곳입니다 ㅋㅋ - 아무튼 그러고 보니 제가 하나님앞에 너무도 경우없는 짓을 하고 내것만 주장하고 살지 않았나 반성을 하게되네요... 오늘도 다시 다짐을 합니다. 거룩한 신자로 서 있을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