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만 밝히는(?) 목사

조회 수 1291 추천 수 105 2005.12.16 18:20:06
먹는 것만 밝히는(?) 목사



어제와 오늘은 코가 비뚤어지도록 아침 늦게까지 누워 잤습니다. 사연인즉 Utah주 Salt Lake City에 있는 한 유학생 교회의 창립 10주년 기념 예배에 말씀을 전하느라 지난 6일 간 여행을 다녀 왔는데, 저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푹 자지 못해 밀렸던 잠을 보충하느라 그랬습니다.

사람에 따라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선 아무리 좋은 호텔과 식당에 가더라도 음식과 잠자리를 불편해 하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본인의 기질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단순하게 성격이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식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거나, 둘 다 아주 잘 적응하면 당연히 성격 탓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처럼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데 잠은 잘 못 자거나, 잠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는데 음식은 잘  못 먹는 사람들을 성격 탓으로만 돌릴 수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분명한 색깔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역으로 따지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성격인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타당한 해석을 해 주실 분은 없는지요?

모든 신자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 소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해외 선교사의 자격 요건 가운데 하나는 어떤 잠자리건, 무슨 음식이건 잘 소화시키는 분이어야 합니다. 온갖 기묘한 음식을 접해야 하고 문화시설이 전혀 되어 안 되어있는 곳에서도 거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낯선 잠자리를 불편해 하는 저는 해외 선교는 아예 반쯤 포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해외 선교사였던 바울은 자신의 여행 체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그에게는 음식과 잠자리에 관해 불평할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디서든 머리가 땅에 닿으면 잠을 취했을 것이며, 무엇이든 차려 주는 대로 먹고 마셨을 것입니다. 없으면 굶고 있으면 먹고, 앉으면 쉬고 누우면 잤을 것입니다. 그야 말로 예수님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하신 말씀 그대로 살았습니다.

집만 떠나면 잠자리 타령하는 저는 아직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는 한참 먼 것 같습니다. 바울이 잠을 뒤척인 경우는 오직 한가지 경우 뿐이었지 않습니까?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1:28-30)

바울은 연약한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느라 잠을 설치는 것만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이룬다는 것을 국내외 전도 여행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에 핑계로 동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앞으로는 먹는 것만 밝힐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도 함께 밝혀야겠습니다.

12/16/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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