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가 출발하는 자리

조회 수 837 추천 수 75 2010.11.25 17:04:40
감사가 출발하는 자리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선 가장 큰 명절입니다. 기독교적 배경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젠 종교와 상관없는 국민적 명절이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불신자도 그 한해의 삶이 아무리 다사다난했던 간에 풍성한 식탁을 앞에 두고 잠시나마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내용을 갖고 누구를 대상으로 감사하는 지는 다 달라도 말입니다.

이 감사의 새벽에 한국에선 매일 40명이 자살한다는 글을 접했습니다. 얼마 전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최고 높다고 했는데 이정도면 세계를 통 털어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자보다 생각까지 해본 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요컨대 너무나 많은 이가 죽지 못해 겨우 산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살아가기 힘듭니다. 특별히 올해만큼 주위에서 웃음보다 한숨 소리가 더 많이 들렸던 해도 없을 것입니다. 계속 그럴 것이라는 예측은 우리로 더 낙심하게 만듭니다. 불신자들은 삶이 고달프면 정신수양, 취미활동, 스포츠, 담배, 술, 마약 등으로 이겨내려 합니다. 도무지 이런 처방이 통하지 않고 끝내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면 자살로 치닫습니다.

그럼 신자는 어떤 힘든 일에도 기도와 말씀으로 잘 이겨내는가요? 과연 하루 40명의 자살자 중에 교회 다니는 자는 한 명도 없을까요? 틀림없이 일반 통계상의 교인 비율 그대로 섞여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셨는데 과연 우리가 그럴 수 있습니까?

범사(凡事)란 당연히 이해 안 되는 일, 힘든 일, 슬픈 일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감사가 안 되어도 억지로 감사하려 노력하거나, 아무리 작아도 감사할 거리를 찾으려 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그런 노력은 금방 한계에 도달합니다. 진정한 감사에는 반드시 충만한 기쁨이 따르는데도 분명히 부정적인 일에까지 감사하려니 감정적 뒷받침이 도무지 안 됩니다. 그렇다고 감사할 일만 감사하게 되면 범사에 감사가 아니게 됩니다.  

우리 중 대다수가 범사에 감사하는 일의 출발점을 잘못 잡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꾸 감사만 하려 들기에 십중팔구 실패하고 맙니다. 대체 무슨 뜻입니까? 감사란 불평, 불만, 짜증, 분노, 고달픔, 슬픔 같은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없어져야만 가능하지 계속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의지적으로 감사하려 들면 스스로 속이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사의 출발은 감사에 두지 않고 감사 안 되는 것들의 제거에 두여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감사는 어떤 종류가 되었던 자기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을 스스로 좋다고 여겨야만 생깁니다. 반(反) 감사는 갖고 있는 것이 나쁘거나 좋은 것을 갖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 소망을 달성하지 못했거나 남과 비교해서 부족하면 절대 감사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감사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뿐입니다. 자기 소망이 이뤄질 것을 확신하면서 부단히 노력하거나, 남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기면 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성경에 가장 좋은 예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궁핍(窮乏)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秘訣)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바울이 지금 아무리 힘든 가운데도 현실적 감사거리를 찾아내려 노력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 궁핍으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또 경제적으로 궁핍하든 부유하든 근검절약을 몸에 붙여서 자족하며 살았다는 뜻도 사실은 아닙니다. 부유에도 처해봤다고 합니다. 그런 일반적 수신제가 차원과는 다릅니다. 그렇다고 기도하고 말씀에 전무했더니 기쁨이 충만하게 밀려왔거나, 어려운 일이 갑자기 해결되어 기뻐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자주 배고팠고 죽을 고비에 처한 적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앞에서 감사를 이루는 방안은 두 가지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자기 소망이 이뤄질 것을 확신하면서 부단히 노력하거나, 2) 남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너무나 빤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까? 한 가지 빠트리고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불신자와 신자의 구분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먼저 불신자는 자기 소망을 자기가 정해서 자기 힘으로 이루려 하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할 수 없으며 주위와 비교해보니 자꾸만 뒤처지는 것 같습니다. 결코 진정으로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근검절약하여 자족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인격적 수양을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면 금방 불만으로 치닫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범사에 감사하는 일은 그들에게 평생을 두고 달성해야 할 목표일뿐입니다.

반면에 신자는 1)주님이 주신 소망을 주님이 이뤄주시고, 2) 그 일을 이룸에 있어서 다른 이와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으므로 즉, 달리 부족한 것이 아예 있을 수 없기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자는 불신자와 달리 범사에 감사한다는 목표가 이뤄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이후로 이방인의 사도라는 주님이 주신 소명만 붙들고 평생을 달려왔습니다. 또 주님의 인도와 권능에만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하시는 주님의 일(자기 일이 아님)이기에 현실적 궁핍과 부요가 전혀 방해 될 수 없었습니다.  처형을 앞두고도 천국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음도 확신했습니다. 그러니까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옥에서, 그것도 사형을 눈앞에 두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한 바울의 차원을 짐작하시겠습니까? 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 끈질기게 기도하면 무엇이든 이뤄주신다는 뜻이 아닌 줄 알겠습니까? 소명 의식과 헌신이 약해지고 불신자시절처럼 자꾸 주위와 비교 되거든 기도하고 말씀보라는 것입니다. 천국 면류관을 생각하며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상처를 치유 받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 이상의, 물론 그런 일도 중요하지만, 너무나 거룩하고 신령하며 영광스런 차원으로의 초대입니다.    

절대 오해는 마십시오. 제가 그렇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도 올 한해는 다른 이들과 같이 현실적으로는 감사할 일보다는 괴로운 일이 더 많았습니다. 아마 지금껏 가장 힘들었던 해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그동안 제가 너무 게을렀다는 회한이 가득 밀려와서 많이 다운되었습니다. 맡겨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해 제가 받은 모든 것을 동원해서 헌신했는지 따져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아서 땅에 묻어둔 자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감사절 아침에 제가 범사에 감사치 못하고 오히려 실망에 빠진 진짜 이유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신자로서, 말씀을 맡은 자로서 정말 감사할 거리를 찾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소명은 저에게 여전히 유효하고 또 제 평생토록 주님께서 그 일을 이뤄 가실 것입니다. 아무리 제 겉 사람이 후패하고 속사람은 게을러도 영원하신 주님이 실패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할 일은 오직 하나 게으름을 고치는 것뿐입니다. 또 그러기 위해 비상한 노력과 열심보다는 현재 처한 자리에서 단지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되지 않겠습니까?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좋은 일만 찾아서 감사하려 마십시오. 또 부족하고 슬픈 일을 억지로 제거하려도 마십시오. 현재 처한 형편에서 주님 쪽을 향해서 한 걸음만 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조차도 관념상으로 감사하기보다는 실제로 그냥 한 번에 한 걸음씩 걸어가십시오. 감사는 자기가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채워주십니다. 신자는 불신자처럼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정확히 말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단 하루를 살아도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11/25/2010

김우승

2010.11.26 08:10:45
*.104.247.39

목사님 글을 통하여 많은 도움을 입은자로서 목사님께서 하나님앞에 더 잘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김순희

2010.11.26 14:27:33
*.161.91.154

너무나 거룩하고 신령하며 영광ㅅ런 차원에로의 초대장, 우리 모두 그 초대장을 받은 주인공이기에 그 곳을 향하여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걸어야겠습니다.

감사절에 하나님께 무한 감사하고 더불어 목사님의 수고하심과 애쓰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맡으신 사역위에 늘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축복하심이 있길 기도합니다.

Steve

2010.11.28 11:38:49
*.169.221.248

추수감사절에 즈음하여 올려주신 말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야할 조건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며 사는 오늘날의 교인들에게 주신 교훈의 말씀
감사합니다.

주제넘게 제가 배워 알고 있는 말씀도 목사님의 홈 페이지에 올려 함께 나누고 싶어 여기 올립니다. 항상 두려운 마음은 제가 올린 정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들이 목사님의 말씀의 광장을 찾는 분들에게 잘 못 전달되어 혼돈에 빠지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글 올립니다.

매일 매일 감사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 이 땅에서 신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준행해야할 의무인데도 그 거룩한 명령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때가 많은 오늘날의 교인들은 이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므로 자백 해야하는 분명한 죄입니다.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신자 또한 많을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또한 “십계명”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어기면 죄가 되는 줄 알면서 다른 명령들은 어겨도 두려움없이 신앙생활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눈에 들어나는 죄, 마음 속으로 범하는 죄 (자신을 자랑하는 것, 특히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 조차도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속으로 멸시하는 것, 질투하는 것,등등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기 위한 동기로 주변에 일어났던 예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하나님께서만이 그 동기를 하십니다-), 행동으로 (몸짓으로 하는 죄, 예를들어 화가나서 옆에 물건을 발길질 한다든지, 눈을 흘긴다든지, 어른들 앞에 문을 꽝하고 닫는 행위 등등), 입으로 범하는 죄 (거짓말, 욕설, 비난, 주변 사람을 범죄로 인도하는 이간질 등등) 다양합니다.

십계명만 지킨다고 죄에서 결코 자유로워 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과 교제를 유지하도록 주님의 십가의 공로로 지은 죄를 자백만하면 (요한 1서 1장 9절 말씀에 근거하여) 구원 받은 신자들이 언제나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이후 신자들은 더 이상 구세주응 믿는 믿음을 고백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지은 죄 때문에 일시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게 되니 범한 죄를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자백만 하면 됩니다. 그 때 요한 일서 1장 9절 말씀에 근거하여 지은 죄를 자백함으로 교제가 다시 회복이 됩니다.

추수감사절에 즈음하여 만약 감사의 생활을 망각하고 살았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에 대해 자백부터 해야할 것 입니다.

감사드려야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은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시편 118:24절 말씀 (시편 100:2)에


이 날은 여호와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최대로, 더 할 나위 없는, 풍부한 기쁨을 누리자). 성경에 기록된 즐거워하다의
헤브루어 원어 "שׂמְחָה (simchah) "는 한 단어로 번역될 수 없습니다.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super abundance of happiness' 로 할 수 있는데 '최대로 차고 넘치는 기쁨'으로 번역되어져야만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חֶסֶד (checed)
즉unfailing love -확실한 사랑, 다함이 없는 사랑, 인애, 실패함이 없는 사랑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밋밋한 기쁨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 더 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아가는 신자의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더더욱 로마서 8장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감드리지 못하고 슬퍼하거나, 불평하거나, 화를 날 때에 이 믿음이 부족한 행위는 “하나님은 거짓말 쟁이 입니다” 라는 간접적인 대항이며 불평이며, 투정입니다. 이따금씩 간증을 들으면 서스럼없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투정을 부리니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하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잘못된 믿음의 선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Righteousness)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의로우신 것을 인류에게 요구하십니다. 공의는 (Justice)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기준에 따라 심판 하십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 ( Virtue Love / AGAPE) 의 속성에 따라 작용하십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께 투정, 불평을 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의 자세는 아닙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에는 모든 것이 올바르고 정당해야만 합니다. 즉 동기가 올바르고 방법 또한 올바를 때 그 결과가 올바른 것이 하나님 앞에 용납되는 것이지 방법이나 동기가 어떠하든 간에 결과만 좋으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실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실 수 없니다.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이유에 대한 원칙:

1). 하나님께서는 하루 하루를 우리들에게 제공하시며 그 하루 하루를 즐길 수 있도록 교훈의 말씀을 제공하십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오늘 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다는 것은 내일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오늘 하루 말씀을 배워 쌓아 두고 또 내일 말씀 배우는 것을 그 위에다 쌓아 합치게 되면 장래의 큰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것을 소홀히 하면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만약 신자가 매일 매일 교훈의 말씀 배우기를 소홀히 하면 축복을 놓치는 날이 많아지게 되며 결국 그는 어떤 식으로든 심각한 곤경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매일 매일 최고로 풍부한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2). 오늘의 교훈의 말씀과 내일의 교훈의 말씀이 합쳐져 쌓이는 것은 장래의 큰 축복을 뜻합니다. 대체로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잘 깨닫지 못하여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잘못된 가치관과 우선 순위에 정신이 팔려 성경의 가르침을 일관되게 듣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공평하게 매일 24시간을 주십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그것을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시간 조차도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등한시합니다. 그의 교만이 그를 최고로 풍부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줄곧 방해합니다.

3). 순간의 축복을 놓침으로 장차 받게 될 축복을 더 뒤로 미루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자식이 없음을 푸념하였습니다 (창세기 15:2,3 참조). 그는 하나님께서 그 날 그 순간 (푸념하던 그날 그 순간) 그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축복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축복을 14년 뒤로 미루셨습니다. 그가 85세에 자식없음을 푸념하였습니다 (참조 창세기 12:2, 13:16). 그러나 훨씬 이후에 그가 마침내 그 축복을 받을 자격이 갖추어졌을 때 (감사할 능력이 있을 때)인 99세에 아들이 생겼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 모든 신자에게 매일 매일 교훈의 말씀을 제공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심 (의, 식, 주, 성경의 교훈의 말씀 및 그 이외의 축복들)을 확신하여 장래에 발생될 수 있는 좌절을 막으십니다.

2. A FORTIORI

"A FORTIORI"란 라틴어 구절로 "보다 더 강한 이유로"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뜻의 헬라어 구절은 "pollo mallon"입니다.) 이것은 두 사실을 비교하는 논리적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 방식으로 인해 우리는 두 가지의 사실에서 보다 강한 사실 또는 결론을 추론해 낼 수 있습니다. 보다 더 강한 사실 또는 결론은 설득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부정될 수 없으며 피할 수 없는 결론이 됩니다. 이 피할 수 없는 결론은 그것을 이용하는 교인에게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실례(實例):
첫째 사실: 하나님께서는 백합을 매우 아름답게 옷 입히십니다.
둘째 사실: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위하여 삶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십니다.
고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또는 피할 수 없는 결론: 만약 하나님께서 하찮은 백합에게 가장 좋은 옷을 제공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이성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하여 삶에 필요한 것을 당연히 제공하셔야만 한다 (그는 그렇게 하십니다)는 것이 보다 더 강한 이유로 당연한 결과가 됩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원문에는 가정절 IF로 되어 있음: 입히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pollo mallon: 보다 더 큰 이유로] [의복을 입히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태복음 6:28-30)!

하나님께서 그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들판의 보통 풀에게도 옷을 입히신다면, 그렇다면 보다 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위하여 더 많은 것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풀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수 있다면, (그 풀은 여러 가지의 곤란함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고, 개들이 방뇨하고 그리고 기후로 인하여 심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즉 가뭄으로 말라죽거나 홍수에 잠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하실 수 있을까요? 물론 보호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은 그 풀보다 하나님께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생필품에 대해 염려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3.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유로 인해) 신자는 최후의 심판(백보좌 심판) 때에 그곳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이 말씀이 사랑의 하나님을 더욱 더 잘 나타내고 있다고 믿기에 함께 올립니다.

하나님께는 어려운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정도의 견지에서 볼 때 가장 어려운 일은 죄 있는 인류에게 구원을 제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로우심이 만족할 계획을 설계하셔야만 했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신-인이 되시는 것을 동의하셔야만 했으며 화해(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장벽을 제거하는) 와 속죄 (만족시킴: 아버지 하나님 의를 만족시킴)를 제공하시는 것에 동의 하셔야만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인성 그리스도께서 완벽한 인간으로서의 의로운 상태에서 십자가의 사역을 이룰 수 있도록 능력을 제공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죄의 본성도 없으시고 죄도 없으셨습니다).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행하시기에 가장 쉬운 일 중에 하나는 기독교인들에게 영원한 보장을 제공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 구원 받는 그 순간 모든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귀속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살 자격을 갖추었다고 선언하십니다. 신자가 범하는 죄들과 다른 (하나님 말씀에 따르지 못한) 실패들이 구원 시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의를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장 어려운 일을 행하셨다면 그 보다 덜 어려운 일을 보류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을 위하여 최대한의 일을 하셨다면 (불신자들을 위하여 구원을 이루셨음) 그러면 그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훨씬 덜 어려운 것은 당연히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영원한 보장을 제공하심).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pollo mallon: 보다 더 큰 이유로써] 그 피를 인하여 [구속, 화해, 화목제물]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하나님의 의가 귀속되었으며 하늘에 갈 자격이 갖추어졌다고 선언됨: 의신칭의] 더욱 그로 말미암아 [십자가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진노하심에서 [불 못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로마서 5:8,9).

신자에게 구원 시 하나님의 의를 귀속시켜 주시고 그를 완전히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가장 어려운 것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심판 때에 신자를 지키시는 것은 하나님께는 쉬운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에게 (구원 전) 하나님의 의를 주셨으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으로부터 (귀속된 하나님의 의를 지니고 있는 교인: positional sanctification) 그가 주신 그 의를 뺏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사랑하지 않은 사람 (불신자) 에게 그의 의를 주셨습니다 (His Impersonal Love).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가 무한히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His Personal Love) 사람 (교인)에게서 그의 의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성적이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인은 인류 역사의 종말에 백보좌 심판대에 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A Fortiori" 즉 논법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15). 만약 교인이 이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를 위하여 최대한의 일을 행하셨으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여 단순한 것들을 제공하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시다 는 것에 동의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나라 대사 (Ambassador) 로서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명예로운 직책입니까? 이 직책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요? 특히 내 삶이 주변과 비교하여 비참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말입니다.

대사는 본국에서 파견된 나라에 파송되어 나가서 살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본국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신자의 본국은 하늘나라, 즉 주님이 계신 나라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거지 나사로와 같은 직책도 이 땅에서는 감당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 직분은 하늘나라에서 엄청난 상급이 따르는 직책일 것입니다. 해서 믿음이 적은 소자들에게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그런 직책을 아무에게나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람맘

2010.11.29 05:12:51
*.186.65.197

한국은 교회도 추수감사절 예배가 각각 다르고 추수감사절을 제일 크게 지내는 미국과는 달리 추석엔 서로 감사했던분께 (명목상이든 진심이든) 선물을 돌리기 바쁘고 선물 택배를 받기 바쁘게 지나갑니다. 추석도 명분은 감사인데 감사의 대상이 다르다는 면에서, 사실 대상이 다른게 아니라 잘못알거나 막연한 하늘이라는 점에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요즘은 그 조차도 못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감사해야할 대상이 분명하고 왜 감사해야하는지 알고 있으니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요... 전 제가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 때문에 감사할 수 없을때 주님께서 꼭 저의 죄를 떠올리게 하시고 저를 사랑하는, 용서하는 주님이 계심을 감사하게 하셔서 다른 것들도 감사하게 하십니다. 내가 받는 사랑이 얼만큼인데 제가 누구를, 무엇을 감사할 수 없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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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신토불이(身土不二) 제 철의 맛 [9] 운영자 2010-06-28 722
133 "마!" [3] 운영자 2010-06-16 752
132 마릴린 먼로의 7년 만의 외출 [6] 운영자 2010-06-07 921
131 나이 들수록 사이가 더 멀어지는 아버지 [2] 운영자 2010-05-17 782
130 기쁨을 오래도록 누리는 비결 [2] 운영자 2010-05-06 749
129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신자 운영자 2010-04-02 712
128 죽은 후를 대비해 기도하라. [3] 운영자 2010-03-17 793
127 또 다시 가슴이 답답합니다. [2] 운영자 2010-02-04 908
126 불발된 Off-Line 상의 만남 [4] 운영자 2010-01-10 891
125 사과나무에 못을 박아라. 운영자 2009-12-29 797
124 비타민C에 숨겨진 비밀 [3] 운영자 2009-12-01 985
123 저희 부부에게 마지막 소망이 있습니다. [6] 운영자 2009-11-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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