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남의 아들이잖아?

조회 수 1436 추천 수 169 2006.12.21 19:55:19
당신은 남의 아들이잖아?


저에게는 아주 고약한 습성이 하나 있습니다. 남이 제 물건을 만지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심지어 제 아내가 제 책상에 앉거나 제 컴퓨터를 만지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합니다.  아내 전용 컴퓨터를 하나 별도로 마련해 주었을 정도입니다. 반면에 제 아들이 만지는 것은 언제든 오케이입니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습벽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끔 아내의 원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반발할 여지는 있습니다. 아내도 아들에게만은 항상 저보다 잘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질투 섞인 불평을 하면 만천하의 엄마들이 다 하는 변명, “재는 내 아들이지만 당신은 남의 아들이잖아!”라고 하면 갑자기 제가 할 말이 없어집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아들은 자기 피가 섞인 혈육입니다. 아내와 남편은 수십 년을 살을 맞대고 살았어도 여전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남입니다. 흔히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자기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경쟁상대로 의식하기에 사랑을 옆으로 주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반면에 밑으로 주는 것은 자기가 우월한 위치를 드러낼 수 있어서 의외로 쉽지 않겠습니까? 거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식이야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부부 사이만큼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인간관계는 없습니다. 장점뿐만 아니라 온갖 허물과 약점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그 허물을 감싸주어야 하는 것이 부부사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자식과의 관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서로 감추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다투고 때로는 완전한 남남으로 갈라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오히려 자기 허물과 약점을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싫어서 그것을 어떻게 하든 덮거나 만회하려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탈린이 권좌에 오르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자기 어렸을 때의 친구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내가 제 책상과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을 금하는 이유도 아마도 저로선 새로운 허물로 또 다시 약점 잡히기 싫어 무엇이든 감추려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피가 섞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로의 분신(分身)이었습니다. 그래서 벌거벗었으나 하나 부끄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아담이 이브에게 자기 책상 서랍을 열 수 있는 열쇠와 개인용 컴퓨터 파일을 열 수 있는 패스워드까지 다 가르쳐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죄가 들어오자 사정은 급변했습니다. 서로 딴 주머니를 차기 시작했고 부부 공용의 비밀번호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구속하는 부모가 싫어져서 머슴살이라도 좋으니 남의 집에 가서 살겠다고 가출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에서 거짓의 아비 사단을 부모로 두는 거짓의 자녀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담과 이브 사이에도 거짓으로 서로를 감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게 남의 아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졸지에 자기 자녀를 사단에게 빼앗긴 하나님으로선 비상조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의 독생자와 바꾸어서라도 그들을 되찾아 와야 했습니다. 남의 아들이라면 찾아올 필요도 없고 또 설령 찾고 싶어도 당신의 아들과 바꿀 필요가 전혀 없지 않겠습니까?

아기 예수가 태어난 감사의 계절에 저는 아직도 성육신의 의미를 잘 깨닫지도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제 책상과 컴퓨터를 맘 놓고 사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에게 아래나 위로만 사랑하지 말고 옆으로 더욱 사랑하라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사람은 아래로는 자기 자랑을 하려고, 위로는 뭔가 얻어내려고 손쉽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옆으로는 파이를 함께 나눠 먹어야 하니까 서로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도 연말에 구제 헌금 내는 일에도 선뜻 응할 수 있는 신자마저 그것도 동료 신자들끼리 시기 질투가 끊이지 않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죄가 가장 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매일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간에도 서로의 허물을 용납해주기는커녕 더 감추려 들고 조금이라도 자기 영역을 침범해 오면 화를 낼 정도로 우리 모두는 아직도 너무나 치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날이 갈수록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이트를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이 성탄의 계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당신의 아들로 삼아주신 의미를 잘 깨달아 새해에는 옆으로부터 아주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Merry X-mas and Happy New Year!!

12/22/2006    

허경조

2006.12.24 01:01:23
*.80.180.87

목사님의 정확한 지적에 아멘입니다.

권 세진

2006.12.24 18:13:51
*.98.55.55

목사님 글을 읽고 다시한번 십자가 밑에서 내 모습을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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