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손녀 자랑
이전부터 집안 식구를 자랑하는 것은 팔불출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순태 집사님이 손녀 자랑을 하라고 해서 (어디까지나 제 본의가 아니라^.^) 좀 하겠습니다. 돌잔치를 비롯해 제 혼자 경사를 다 즐겨놓고는 빈손으로(?) 인사드리기가 미안하기도 해서 말입니다.
손녀는 십 개월이 지나서부터 걷기를 시작해 돌에는 거의 띄다시피 할 정도로 발육이 빠릅니다. 여자 아이라 가냘프기는 해도 무척 건강한 것 같습니다. 나아가 벌써부터 자기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할 만큼 아주 똘똘합니다.
저희 거실에 장식으로 놓아둔 골동품 타자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물건인데 아니나 다를까 그것을 한창 붙들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어떤 키를 작동 해보려다 되지 않자 할머니가 그 전에 시범으로 한번 해보인 것을 기억하고는 손으로 할머니를 부르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또 한 번은 할머니가 자몽을 까서 조그맣게 잘라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아이가 먹기에는 너무 신 맛이라 당장 뱉어 내고는 아예 더 주지 말라고 할머니 쪽을 향해 손사래를 쳤습니다. 할머니는 어떡하든 많이 먹이려고 열심히 까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손녀의 사랑을 서로 더 차지하려고 제 집사람과 불꽃 튀는 경쟁이 붙었습니다. 누가 이겼는지 아십니까? 손녀가 아내보다 저와 더 친해졌습니다. 집안 식구 자랑에서 이제는 제 자랑까지 하게 되었습니다만 한 번 정도는 애교로 보아주실 수 있겠지요?
그 이유는 할머니는 어떻게 하든 당장 손녀의 사랑부터 얻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니 자꾸 많이 먹이려 들고 장난감도 억지로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저는 손녀의 눈치를 세심히 살핀 후에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해주었던 것뿐입니다. 저와 아내의 우월의 차이가 아니라 여자를 감성적, 남자를 이성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원리를 하나 배웠습니다. 바울 사도가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고전13:5), 그 반대로 상대의 유익부터 먼저 구해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아내에게 손녀의 사랑을 빼앗기리라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사랑에는 아무런 방식이 필요 없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영혼이 있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선 아무래도 감성적인 여자인 할머니의 사랑이 더 뜨겁게 손녀에게 전해질 것은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2/28/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