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가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
어떤 40대 중반의 미국 교포 신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사십 줄에 들어설 때에 늦둥이로 둘 째 딸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기를 가지려 할 즈음에 엄마가 아닌 아빠가 꾼 태몽이 재미있었습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자답게 태몽도 낚시 꿈으로 꾸었는데 커다란 잉어가 낚이어 올라오는데 시퍼런 이끼가 잔뜩 끼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기를 주시는 것은 분명한데 아마도 첫 아이와 터울이 너무 커서 이끼가 끼었나보다 했습니다.
늦둥이답지 않게 아주 건강하고 영민한 딸애는 부모는 물론 교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습니다. 그런데 만 두 살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까무러치려 해서 응급실로 데려갔더니 소아 당뇨로 판명 났습니다. 체내에서 인슐린 생산이 약해지는 노인성 당뇨와 달리 생산 자체가 아예 안 되기 때문에 평생을 인슐린을 체외에서 주사로 공급받아야 하는 장애입니다. 그 부부에게 태몽의 이끼는 아기를 주되 장애아를 준 것이라는 의미로 바뀌어졌습니다.
며칠 전 엄마가 아빠에게 큐티를 마치고 이런 나눔을 했습니다. “이끼 낀 잉어 태몽의 의미는 하나님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세상에 내어 보내기로 결정했는데, 어느 집의 누구에게 맡길까 살펴보다가 당신과 우리 집이 적합할 것 같아 택한 것이다. 그 아이를 충분히 사랑으로 감당할 만한 자로 선택 받았기에 우리로선 얼마나 큰 은혜이자 감사할 일인가? 또 그 아이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런 계획이 있음에 틀림없으니 더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감사해야 해.” 마지막으로 이끼는 인간의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확정 되었습니다.
또 다른 50대 중반의 한 남자 교포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결혼하여 얻은 첫 아들이 다운 신드롬 장애아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의논하여 둘째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처음 장애아가 태어나면 둘째도 그럴까 염려해 단산하거나, 둘째만은 정상아를 갖고 싶어 출산을 더 서두르는 것이 일반적 반응입니다. 그러나 이 분의 경우는 전혀 달랐습니다. 둘째가 만약 정상아로 태어나면 장애인 첫 아이에게 사랑을 제대로 쏟지 못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장애아를 태어나게 하는 이유를 신학적으로 몇 가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그분만의 이유 또한 따로 많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보아야만 알 수 있는 이유도 분명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왜냐하면 장애아들의 영혼이 거의 대부분 아주 순수하고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소자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그 중에서도 더 순수한 장애아를 더 좋아하실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며칠 전 그 큐티 나눔을 전해 듣고는 평소에 제가 생각했던 하나님이 장애아를 세상에 보낸 이유를 더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애아는 두말할 것 없이 사랑하지만 그런 순수한 영혼을 지니지 못한 정상인들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장애를 인내해야 할 의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부부나 남자집사님처럼 오히려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고 받아 누리며 또 나눠서 그 사랑을 더 키우는 통로로 대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장애아를 보는 정상인더러 자기들이야말로 오히려 더 중증 장애인임을 깨닫게 해주시려는 목적입니다. 과연 보통의 부모가 참 사랑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야 참 사랑을 베푸는 것인지 장애아 자녀를 키워보는 부모만큼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겠습니까?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이 만난 자들도 엄밀히 따져 보면 전부 당시 사회의 중증 장애인들이었지 않습니까?
부끄럽게도 저는 하루에도 혈당 검사와 인슐린 주입을 위해 열 번도 넘게 1학년 딸아이의 팔에 주사 바늘을 찌르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자신은커녕 믿음조차 솔직히 지금은 없습니다. 또 장애아 첫 아이를 사랑하는데 방해 될까 둘째를 갖지 않을 자신도 믿음도 없습니다. 아마 직접 겪어야만 그것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께 불만, 의심, 분노를 터트리며 떼를 쓴 후에서야 겨우 생길지 모릅니다. 마치 사단에 미혹된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던 그 큰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그분을 만나지 않고는 미처 제대로 알 수 없듯이 말입니다.
3/11/2008
장애인들을 우리 곁에 두시는 이유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우리 향한 사랑을 더 잘 깨닫게 하시려 함외에도, 우리 인간이 원래 그렇게 부족한 존재란 것을 깨닫게 하려 하심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키우고 완성시키며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하려 하심일 것입니다.
그 남자 집사는, 하나님 눈에는 아들이 아니라 자기가 장애인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니다. 아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어진 사명 (아둔한 제 아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쳐 주라는) 제대로 수행하며 살고 있으나 , 제 아둔함으로 아들에게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게끔 한 아비는 멀쩡한 사지와 남못지 않은 지능을 가졌으면서도 아직도 제대로 말씀을 준행치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