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해변을 덮친 암울한 그림자
지난 주말에 저희 부부는 결혼 33주년을 기념해서 오랜만에 둘이서 조촐하게 일박이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근 일 년 동안 저희들 손발을 묶고 있던, 사실은 우리 스스로 종이 되기를 자청했지만, 첫 손녀의 묶임에서 탈출한 것입니다. 3월초면 둘째 손녀도 태어날 예정으로 차후로는 짬을 내기가 더 힘들 것 같아 감히(?) 주일도 포함시켰습니다.
캘리포니아 Central Coast에 있는 Pismo Beach의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한 호텔로 향했습니다. 마침 마르틴루터 킹 연휴가 겹쳐 겨우 방을 구했습니다. 그곳 백사장은 끝이 안 보일 정도인데 아마 그 길이와 폭이, 순전히 제 짐작으로, 거의 세계 최대이지 않나싶습니다. 모래가 부드러우면서 마치 포장해놓은 것같이 단단해 신발에 모래가 전혀 들어오지 않아 산책하기에 아주 적격입니다. 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사장이 커서 한적하게만 여겨지기에 간이 의자에 앉아 종일토록 책 읽기에도 좋습니다.
날씨가 너무 화창한 데다 때 아니게 기온이 아주 높아 완전 여름날 같았습니다. 실제로 물에 들어가 수영하는 자들도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캘리포니아가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그런 날씨였습니다. 열대지역도 아닌데 일월 중순에 해수욕을 할 수 있다니 감히 상상도 못할 일 아닙니까?
그런데 불현듯 제 머리에 오래 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현재 이곳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재임하고 있는 아놀드 슈와츠네커가 주연한 Terminator 2라는 영화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평화스럽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핵폭발로 멸망의 그림자가 겹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불시에 인간이 멸망한다는 암시였습니다.
드넓고 길다란 사장 곳곳에선 아이들은 모래 장난을 하거나, 공이나 막대기를 던져 개들을 훈련시키고, 젊은 연인들은 다정하게 손잡고 거닐고, 어른들은 드러누워 책을 보거나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좋은 날씨가 모든 사람들로 평온과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자연스레 연출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무지 염려 불안과는 거리가 먼, 최소한 잠시 떠나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비정상적인 날씨는 바로 지구 온난화의 결과가 아닙니까? 같은 날 미국의 중동부는 기록적인 한파가 덮쳤는데도 서부 해안은 해수욕을 즐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행 가기 며칠 전에도 전도하려고 애를 쓰는 미국인 이웃과 날씨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극지방의 빙하가 다 녹아 지구 온난화가 절정에 이르면 미국은 오히려 빙하시대 같은 혹한이 닥친다는 영화 "the Day after Tomorrow"의 예측대로 되어 간다고 함께 걱정했었습니다.
그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해변 풍경 뒤에 이 두 영화의 장면들이 오버랩 되는 것이 저만의 괜한 노파심 내지 기우일까요? 노아 홍수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기느라 대피는커녕 전혀 예상도 못한 불시에 심판이 닥쳤지 않습니까? 비록 지구 온난화는 이미 경고의 나팔 음이 크게 울렸고 또 다각도로 고치려 노력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그 진행 정도가 인간의 대책이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앞서 가는 것은 아닐까요?
저희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주일에 여행할 때는 저희들끼리 예배를 봅니다. 이번에는 근처의 한인 교회를 인터넷에서 찾아 방문했습니다. 자체 건물까지 보유한 아담한 교회로 교인이 다해야 30-40 명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37년 전에 미국에 온 유학생 출신이었습니다. 설교 말씀으로 많은 도전이 되었고 마침 성찬식을 거행해 더욱 은혜로웠습니다. 저희끼리 호텔 방에서 예배드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습니다. 역시 예배는 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함께 모여 드려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런 작은 도시에서 한인 교포들이 교회를 짓고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신 분이 목사가 되어 그 시골에서 수십 년을 한 교회에서 봉직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정말로 이름 없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섬기는 모습이자,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곳곳에 남겨두신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명망 있는 목사님이나 훈련 많이 받은 대형 교회 신자들보다 그 목사님과 성도들이 더 위대해 보였습니다.
나아가 어제 낮에 제 마음을 잠시나마 어둡게 했던 영화 장면들이 깨끗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지구 온난화 혹 어떤 모습으로 오든 문제는 이 교회 신자들처럼 여일(如一)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지 염려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심판은 그분의 몫인 반면에 경성하여 기도하는 것은 신자의 몫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로지 당신의 백성들이 끝까지 당신께 남아 있기만 소원하실 것입니다.
설령 영화처럼 지구온난화나 핵전쟁으로 인류에게 대재앙이 닥치든, 성경대로 마지막 때의 대환난을 겪어 죽게 되더라도 믿음을 지킨 자는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을 것 아닙니까? 인간의 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백사장일지라도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눈에는, 마치 Google로 지구 전체를 볼 때처럼, 한쪽 구석의 작은 점에도 미치지 못할 것 아닙니까? 그럼 인간으로선 너무나 크게 여겨지는 대재앙도 그분에게는 당연히 먼지 하나의 크기에도 미치지 못할 것 아닙니까?
신자는 바로 그런 분을 아바 아버지로 모시고 살기에 예수님 말씀처럼 내일 일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의와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또 자기 주위에서부터 실천만 하고 있으면 될 것입니다. 비록 작금 모두의 살림살이가 대공황 이래 최고로 어려워졌지만 그 또한 언제 닥칠지 모를 대환난에, 아니 하나님 그분에 비하면 정말로 별 것 아니지 않습니까?
1/21/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