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향기

조회 수 1360 추천 수 118 2006.03.11 20:47:34
여인의 향기


오래 전에 알 파치노가 맹인으로 나온 “여인의 향기”(The Scent of Woman)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지만 이전에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자존심 센 한 맹인이 혼자 살면서 이전의 화려했던 추억 특별히 여성의 향취를 잊지 못하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곧 대학에 입학할 사회 초년병이 등장해 각기 여자들을 만나 하루 저녁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혹시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집사람이 첫 손녀를 보고 며느리의 산후 조리도 도와줄 겸 때 늦게 어제 뉴욕으로 떠나 약 2주간 제가 홀애비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물론 함께 갔어야 했지만 무임 목사로 글만 쓰려고 하니까 호구지책으로 유학 온 학생 두 명을 하숙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을 차로 등하교 시켜 주고 또 식사, 빨래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결혼 후 처음으로 최장기간 홀아비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제 저녁 제 둘째와 한국서 온 조카를 포함 총 6명이 누구나 쉽게 요리할 수 있으며 만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해서 나눠 먹었습니다. 엄마보다 낫다는 입에 발린 아이들의 칭찬도 들어가며 신나게 잘 먹었습니다. 설거지도 순번을 정해 아이들 둘이서 했습니다. 그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고 첫번째 겪는 임무(?)를 무사히 잘 마쳤다고 안도하는 순간 뭔가가 빠진 것 같고 아쉬웠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둘째 아들이 과일을 안 먹어서 그렇다고 해 “그렇지 디저트로 과일을 먹어야지”하고 망고와 키위(아내가 일부러 맛있는 과일을 사놓고 갔음)를 깎아 나눠 먹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평소 때 보다 맛있게 배불리 먹고 더 고급 과일로 후식까지 채웠는데도 여전히 부족하고 이것이 아닌데라는 감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주부의 향기이자 엄마의 숨결이었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실생활은 전혀 불편이 없었고 오히려 더 간편한 것 같은데 주부가 엄마가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채워지는 따뜻함과 푸근함이 사라진 것입니다. 번거롭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듣더라도 주부와 엄마는 항상 바로 곁에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녀를 서로 다르게 만드시고 함께 살도록 한 섭리가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아빠와 엄마는 서로 돕는 배필로서 맡은 역할이 다르기에 아이들 곁에 항상 그 다른 모습으로 있어주어야만 했습니다.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2:24)고 했습니다. 둘이 합해야 완전한 하나가 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라도 빠지면 반드시 그 빠진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조그만 부분이 아니라 아예 반쪽이 빠집니다.

앞으로 2주 간은 우리 식구들 모두 그 영화의 맹인처럼 핸디캡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엄마와 주부의 향기를 아쉬워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보다 더합니다. 어제는 피곤해서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자느라 편했지만 곧 며칠 안 되어 항상 바로 곁에 있어야 할 아내의 향기가 또 아쉬워질 것이니까 말입니다.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함께 만나 연합하여 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3/11/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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