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위에 떨어진 최고로 재수 없는 신자.
며칠 전 시애틀에서 온 손님에게 게티 박물관을 구경시켜 드렸습니다. 석유 왕이자 억만장자였던 폴 게티가 사재를 털어서 LA 시내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산 위에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 박물관입니다. 큰 화물선으로 백만 장도 넘는 이태리 대리석 조각(약1x1meter 정도의 크기)을 수십 번 운송해서 지은 LA에서 최근에 가장 각광받는 명소입니다.
전시물의 종류와 숫자가 다양해 자세히 보려면 하루 꼬박 다녀도 모자라 미국 3대 박물관에 꼽힐 정도입니다. 저 같은 미술의 문외한으로선 어쩌면 전시물보다 건물과 조경이 더 아름답게 여겨집니다. 건물도 현대식이지만 그에 걸맞게 정원과 분수와 돌들이 어우러져 박물관 어느 장소에서 어떤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도 한 장의 그림입니다.
여러 볼거리 중에 선인장 정원이 있습니다. 사막에선 아무 볼 품 없는 선인장을 한 곳에다 형형색색으로 구분해 배열해 놓았는데 흔히 볼 수 없는 색다르고도 독특한 멋이 있습니다. 또 밋밋하고 가시만 있는 선인장 몸통이지만 그 끝에 꽃이 피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난간을 통해 그 정원을 내려다보던 아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참 재수 없겠다”고 농담했습니다. 가시에 그대로 찔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가 바로 “맞아! 떨어져도 이왕이면 앞으로 말고 엉덩이부터 떨어져야지”라고 맞받아서 한참 웃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뒤로 넘어져도 재수 없으면 코가 깨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생은 성공하여 기뻤던 적보다 실패하여 괴로웠던 적이 더 많은 것 같지 않습니까? 어차피 시행착오가 겹칠, 즉 때때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면 넘어질 때 운이 좋아야 할 것입니다. 선인장 바닥으로 앞으로 넘어질 것인가 혹은 스펀지 요가 깔린 바닥으로 그것도 이왕이면 뒤로 넘어질 것인가에 따라 재기의 속도뿐 아니라 전체 인생의 향방마저 달라질 것입니다.
신자에게도 환난은 그치지 않습니다. 나아가 의롭게 사는 신자라면 완악한 세상의 핍박과 멸시까지 받습니다. 예수 믿기 전보다 넘어질 때가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신자를 받쳐주는 스펀지 요가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구원의 산성이자 반석이자 피난처 되시는 우리 주님입니다.
그러나 재수 없으면 접시 물에도 코가 빠져 죽는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스펀지 요에 떨어져도 죽을 수 있기에 엉덩이부터 잘 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와중에 엉덩이부터 떨어지도록 조종할 수 있는 자는 공중곡예사나 유도 유단자 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은 스펀지 요처럼 단지 신자가 떨어질 것만 대기하고 있는 분이 아닙니다. 떨어질 때부터 함께 떨어지면서 공중에서 우리 엉덩이가 밑으로 향하게 돌리시는 분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에게는 재수(luck)라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재수란 어떤 사건이 자신의 통제력의 범위를 완전히 넘어서 돌발적으로 우연히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신자에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라곤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자 자신의 통제력은 너무나 불완전하고 부족하지만 완전하고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통제력이 신자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떨어지는 공중에서조차 아니 그 전부터 주님이 신자와 항상 함께 하셨는데 재수가 개입될 여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요컨대 신자란 재수를 더 이상 밝히지 않게 되었기에 재수를 밝히는 사람들보다 더 재수 좋게 된 자라는 것입니다. 선인장 바닥을 향해 얼굴이 먼저 떨어져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세상 사람들로선 평생을 두고 가지려야 가질 수 없는 최고의 재수가 그 인생을 항상 지배하고 있는데, 어찌 이런 재수가 따로 있겠습니까? 환난 중에 있어도 마음 푹 놓으십시오. 혹시라도 우리가 멋모르고 선인장 바닥을 향해 얼굴부터 떨어져도 주님은 엉덩이만 아주 쬐끔 다치게 해 주실 것이니까 말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
12/8/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