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늙어가는 가봐!”
어제는 한 밤중에 깨어 잠을 설쳤습니다. 제 아내가 배가 아파 대굴대굴 굴렀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녁을 먹은 것이 체해서 그랬나 봅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소화제를 먹는 둥 한 바탕 소동을 벌린 후에야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지난 일주일 동안 저희 부부가 좀 무리했습니다. 호주로 이민 갔던 제 처남 즉 집사람 오빠의 가족이 이곳을 방문해 17년 만의 만남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LA 시내와 근처도 구경시키고, 3일 일정으로 자동차로 가까운 국립공원에도 다녀왔습니다.
어제 낮 교회에 다녀와서 밀린 빨래를 하면서 집사람이 뜬금없이 “우리 속도 늙어가는 가봐!”라고 말했습니다. 집안일도 갈수록 힘에 부대낄 뿐만 아니라 조금만 과식해도 뭔가 속이 개운치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고도 당연한 말이다 싶어 무시했었는데 낮에 그렇게 예언(?)을 하더니 기어이 밤에 탈이 난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외모뿐 아니라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장기도 늙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평소에는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늙지 않고 평생 그대로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큰 착각입니다.
이처럼 진리는 너무 간단하고 또 그래서 더더욱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사람으로 잊고 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간단하다고 해서 진리가 비진리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또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그 진리가 작용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나아가 진리란 오히려 아주 간단하기에 그 효력이 더 확실하게 작동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진리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고 그 크신 자비 앞에 엎드리는 자는 누구나 사랑하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그런 자에게는 당신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고 평생의 출입을 지켜 주신다는 것 아닙니까? 비록 그분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의 속도 나이가 들수록 겉과 같이 늙어가지만, 예컨대 이전에 비해 오히려 적게 그것도 천천히 먹었는데도 급체가 되어 한 밤중에 바닥을 뒹굴게 만들어도 주님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사랑 가운데 들어와 있는 우리로선 우리의 진짜 속을 날마다 더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그분이 순간순간마다 더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복음의 간단한 진리를 잊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을 계속 갈망하고 있는 한에는 말입니다.
요컨대 신체와 정신이 늙어가는 것에 반비례해서 영혼은 오히려 젊어지는 것이 신자 된 증거이자 축복일 것입니다. 그 반대라면 불신자의 인생과 하나 다를 것 없을 것입니다.
5/1/2007
저는 다행이도 맨하탄에 위치한 저희 교회의 80 % 가 한국 유학생들이고 그분들에게 성경 공부를 가르치면서 많은 새로움을 접하게 되는 기회가 저를 새롭게 합니다. 감사한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