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류의 신자
- 예수를 믿는 신자는 그동안 남들 앞에 과시했던 모든 헛된 가식을 버린 위에, 자신의 모자람은 다른 이의 모자람에 대한 위로로 쓰고, 자신의 넘침은 다른 이의 모자람을 채워주려고 나눈다. 요컨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된 것이다. (4/10/2024)
- 모든 가식은 모자란 자기를 넘치게 보이려는 헛된 시도다. 궁핍한 자는 경제적 가식, 우매한 자는 지성적 가식, 무력한 자는 사회적 가식을 뜬다. 신자 중에도 교회에서 도덕적 종교적 가식을, 심지어 하나님 앞에 영적 가식을 뜨는 아주 어리석은 자가 있다. (4/9/2024)
- 불신자는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재물 권력 명예 등에 자신이 평균 이하가 되면 인생이 실패했다 여긴다. 신자는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믿음 소망 사랑 등에 자기가 평균 이상이 되면 인생이 성공했다 여기고, 나머지는 그분이 채워주시는 대로 감사한다. (4/8/2024)
- 신자가 된 첫째 의미는 자신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이 실존하지 않기에 스스로 신나게 살 수 있다고 믿었으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다가, 인생의 참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 발견한 것이다. (4/5/2024)
- 세상은 예수 믿기만 하면 받는 기독교의 구원을 불공평하고 배타적이라고 비방한다.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기에, 누구라도 예수 십자가의 차별 없는 용서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축복의 자식이, 거부하면 진노의 자식이 되므로 가장 공평하고 포용적이다. (4/4/2024)
- 세상에선 죄의 질을 그 폐해의 크기로 따지므로 살인을 가장 중하게 여긴다. 하나님은 죄를 짓는 동기를 보신다. 체질이 연약하거나 죄인 줄 몰라서 지으면 무거운 죄도 가볍다. 알고도 죄짓거나, 회개치 않고 반복하면 아무리 경범죄라도 매우 중한 죄가 된다. (4/3/2024)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만 대신 짊어진 것이 아니다. 죄로 인해 파생된 인생사의 골칫거리인 상처, 슬픔, 분노, 미움, 갈등, 질투, 시기 등은 물론 영적 갈증과 눌림도 포함된다. 요컨대 우리와 함께 울어주시려고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다. (4/2/2024)
- 신자가 하나님 사랑의 근거를 이해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예컨대 인간이 그분을 사랑하니까 그에 따라 그분 사랑도 달라진다고, 혹은 그분이 사랑이라 항상 사랑해 준다고 믿으면 틀렸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이 그 유일한 근거라고 확신해야 참신자다. (3/29/2024)
- 하나님이 함께한다고 믿는 신자도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그분 사랑이 필요할 때만 그분을 찾는 신자와, 그분 사랑이 없으면 항상 실패하므로 범사에 그분부터 먼저 찾는 신자다. 하나님도 후자를 먼저 찾을 것이 분명한데도 어리석게도 전자가 훨씬 많다. (3/28/2024)
- 정말로 정직한 자는 역경이 닥쳐도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정말로 현명한 자는 환난을 자기 성찰과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정말로 신실한 신자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 누리고 고통을 겪는 이웃을 찾아가서 기도해 주며 예수님 사랑으로 섬긴다. (3/2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