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과 기도

조회 수 1423 추천 수 131 2006.04.07 00:21:13
요즘 제게 염려스런 목소리와 표정으로 제 건강 상태를 물어 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제 글에도 여러분들이 격려와 동정의 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생각과 심정을 나눌까 합니다.

우선 제 건강을 염려해 주시고 그것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 주시니 든든합니다. 갑상선암이 아니었더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단지 서로가 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생면 부지의 타인의 안위를 염려해 주고 기도해 준다는 것이 참 감격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시 한 번 흠씬 느낍니다.

그런데 실은 참 민망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의 염려와는 달리 전 전혀 아프지도 않고 또 별 걱정을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아픈 척할 수도 없고. 굳이 걱정을 하자면 수술이 걱정스럽긴 합니다만--전 아픈 거 잘 못참습니다. 그래서 제게 절대 비밀 얘기는 하지 말라고 미리 밝힙니다. 누가 제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시늉만 해도 다 불어 버릴 겁니다--하지만 다들 그 수술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또 하나님께서 수술을 주관해 주시겠지란 낙관적인 믿음이 있는지라 사실 전, 정작 당사자임에도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만큼 걱정을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죄송스럽지 않겠습니까? 제가 해야 할 걱정을 여러분들에게 떠넘기고 전 맘 편히 지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틀림없이 암세포를 깜쪽같이 없애 주심으로 수술의 필요성이 없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그 편이 좋습니다. 수술로 인한 통증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요. (환부가 있을 때는 통증을 못느끼는데, 환부를 제거한 후에 통증을 느낀다? 곰씹어 보면 뭔가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소재 같지 않습니까?) 요며칠 환부가 많이 가라앉은 듯한 느낌도 들어 수술 받기 전에 다시 한 번 조직 검사를 받아 보겠다고 할까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또 죄송스럽게도, 암세포를 깨끗이 없애 주시는 기적을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수술을 잘 진행해 주시도록 그리고 수술 후 회복이 잘 진행되도록 간구할 뿐이었고, 그나마도 아직 수술일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라 미루어 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어제, 왜 난 기적을 간구하지 않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믿음이 부족한 탓인가?

기적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믿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런 기적을 보여주실 수 있는 분이시란 믿음이 있기에, 그런 기도는 드릴 생각을 않는 겁니다. (갑상선암과 관련된 제 글들을 모두 읽어 보신 분들은 제가 약간은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저는 그런 기적이 없어도 하나님의 권능을 이미 믿고 있으므로, 제게 그런 기적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즉, 제 갑상선암은 기적을 위한 소도구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만, 제 주위의 사람들 대부분이 저보다 믿음이 더 좋습니다. 그러므로 전도 차원이라면 저 아닌 다른 사람을 택하셨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낭비가 없으신 분입니다. 제게 갑상선암이 자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것을 내버려 두셨습니다. 저는 물론 몰랐지요, 얼마 전까진. 그런데 아주 나빠지기 전에, 어느날 아침 가슴에 통증을 주심으로 하여 의사를 찾게 하고, 진찰 결과 심장은 아무 이상없이 건강하니 염려 말라던 주치의가 우연히 제 앞 목 오른쪽이 조금 부은 듯하다며 만져 보더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갑상선 스캔을 받아 보라 하여 암을 발견케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갑상선암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절 (그리고 어쩌면 제 주위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하는 바가 있을 거라 믿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깨우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렸던 것이고요.)

제 암세포를 없애 주시면 다들 아멘, 할렐루야 하면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칭송하고 살아계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한동안 얘기거리가 될 겁니다. 전 기회 닿을 때마다 그것을 간증할 것이고요. 하지만, 우리의 신앙 유지와 성숙에 그런 신명나는 일이 꼭 있어야만 하나요? 설령 우리에겐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님께서 지금 당신의 그 능력을 입증해야만 당신에게 영광이 되는 걸까요? 그러실 필요가 있는가요? 과연 그 기적이 우리의 생각대로 기대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확장되는 데에 도움이 되기만 할까요? 혹시 역작용은 없을까요? 하나님을 우리가 원하는 온갖 기적을 연출해 주셔야 하는 도깨비 방망이나 알라딘의 마술 램프 속의 마법사로 잘못 인식시키는 쪽으로 기여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간구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배신감을 느끼고 김유상에게는 베풀어 주신 기적을 자기에게는 왜 베풀어 주시지 않느냐며 부당한 느낌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소지는 없는지요? 그리고 저는요? 제가 감당할 몫은 무엇이지요?

없애 주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없애 줄 수 있는데. 알아요. 수술 잘못 될 수도 있다던데? 그렇게 되도록 내벼려 두실 참이세요? 수술한 자리가 아플 텐데. 그렇겠지요. 하지만 견딜만 하다던데요. 보기 딱하시면 도와 주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웬 고집?

그 까닭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되도록이면 오래 끌기 위함이며, 두려움과 고통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더 뚜렷이 경험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이며,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믿고 따르는 주님을 더 진실되게 증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또한 수술이란 섬세한 과정이 있음으로 우리의 나약함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되고 주님께 더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담당의사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기도가 있어야 하며 저와 여러분들이 한마음이 되어 성공적인 수술을 구하는 기도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 그리고 저희와 하나님과의 연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도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계속적인 간구가 있어야 할 것이고, 특히 저는 남은 평생을 갑상선 홀몬 때문에라도 기도하며 살아야 할 겁니다. (하나님께선 제가 못미더우신가 봅니다. 그렇게라도 절 붙들어 두시려는걸 보면.)

4.6.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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