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출근해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제 직장에선 제 담당 직원과 이사들 이외엔 수술 사실을 모릅니다. 며칠만에 사람들을 대하건만 그들은 전혀 아무런 낌새도 알아 차리지 못합니다.
사실 그 누구보다도 저 자신이 의아스럽습니다. 내가 수술받은 거 맞아? 어떤 분은 절더러 얄밉다 했습니다. 환자가 환자다워야지 이렇게 멀쩡하니 오히려 위로하려던 본인들이 머쓱할 터입니다. 아내는 제발 가만히 아픈 척이라도 하고 있으라고 눈총을 줍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위문오면 환자 연기를 펼칩니다.
갑상선 샘을 잘라낸 부위에 아직 약한 통증이 있긴 합니다만, 목 언저리 절개한 부분은 단단히 아물었고 통증도 없습니다. 목도 맘대로 이리 저리 가눌 수 있고 먹는 것도 가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목에 흉터가 보는 이에게 혐오감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주름살로 덮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정 안되면 목걸이나 스카프 패션을 이용하면 될 듯도 싶습니다. (지금은 봉합자국이 이빨 다물고 웃는 모습이라 그 위에 눈 코 그려볼까는 생각도 합니다.)
아직 목소리가 회복되지 않은 것이 단 하나 신경쓰이는 점입니다. 말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 고음이 예전만큼 잘 나오지 않고 성량도 예전에 미치지 못합니다. 속 상처가 아물고 나면 회복될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정도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할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란다면 성가대 활동은 그만 두어야 할까 봅니다. 성가대 그만 두면, 글쎄요, 주일학교에서 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런지요?
암만 생각해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도,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 사신 것도, 물 위를 걸으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닫힌 눈을 뜨게 하시고 막힌 귀를 여시고 묶인 혀를 푸신 것도, 십자가에 돌아 가신 후에 다시 사신 것도 또 영원히 사실 것도 다 납득할 수 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은데, 그런 엄청난 분이 왜 제게, 뭐라고 표현해야 적절할지 알 수 도 없는 제게 그토록 관심을 보이시고 사랑을 베푸시는지는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 보아도 만족스런 대답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여쭈어 보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이관대 그토록 제게 잘 대해 주시나이까?
내 자식이니까. 내가 부푼 기대감으로 빚어 만들고 온갖 정성 다해 키운 내 자식이니까.
. . . 아버지. . .감사합니다. . .
4. 18.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