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회복 중입니다

조회 수 426 추천 수 0 2015.11.19 13:28:35

운영자 지백(박신목사)께서 여러분께 알린 대로, 지난 11월 10일, 화요일에 네 번째 목수술을 받았습니다. 오전 7시 반에 잡힌 수술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나 이틀 밤 입원에 필요한 옷가지며 책 한 권과 필기도구를 챙겨 담고 병원으로 운전하고 가는 동안 제게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뿐이었습니다. 나야, 마취되어 깨면 그만이지만, 아낸 저로 인해 생고생을 감당해야 할 것이니까요. 다행히 아내는 주말까지 직장에 휴가를 얻었기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수속을 밟고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수술 침대 위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갈 때가지만 해도 저는--아마도 그 어느 누구도--일이 이렇게 커지리라곤 전혀  짐작치 못했지요. 다만 한 가지, 마취의가 지난 번의 그 마취의가 아닌 것이 마음에 걸려, 내가 마취에 과민반응이 있으므로 조심해달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회복했을 때엔 겨우 띈 한 쪽 눈에 흐릿하게 간호원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들어왔고 그들이 나누는 얘기가 소음처럼 귀에 들어 오더군요. 하이, 하고 내가 인사를 하자 그들은 무척 반기며 자신을 소개했고, 내 느낌이 어떤지 묻더군요. 아마도, 사기당한 느낌이라고 말했지 싶습니다. 두 번째 (이 병원, 이 의사에게선 첫 번째) 수술에서 깨어날 땐, 마침 그때가 성탄절 즈음이어서 당시 제가 속한 합창단에서 연습 중이던 성탄곡을 흥얼거렸었는데 (그리고 그 일은 이제 제 합창단에선 거의 전설이 되고 있지요) 그리고 세 번째 수술 후에도 아주 깔끔하고 명료하게 깨어나 반갑게 인사를 건네어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이번에도 그러려니, 아니 그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몸은 천근만근이요, 속은 메슥거리고, 정신은 몽롱하고 눈은 잘 뜨이질 않으니 잘 나오지도 않는 쉰 목소리를 쥐어 짜며 그런 농담을 제일 먼저 던진 거지요.

 

나의 그 말에 간호원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모든 게 다 잘 됐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또 있는 힘을 다 해--아, 왜 이렇게 목소린 안 나오는 건데, $#@!--내가 실은 이렇게 될까봐 수술 전에 마취에 대해 다짐을 받았었노라, 그때 그 마취의가 아무 염려 말라더라, 그런데 이게 뭐냐, 이게 사기가 아니고 뭐냐, 와서 사과하라고 해라, 안 그러면 고소하겠다고, 정말 힘들여 으름짱을 놓았지요.

 

날 재미있어 하던 간호원들이 떠나자 곁에 지키고 있던 아내가 그간의 상황을 대충 정리해서 알려 주더군요. 예정보다 훨씬 긴 수술이었는데 수술 도중 지혈이 되지 않아 한동안 수술이 중단되었고 겨우 수술이 재개되고 끝나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에도 몇 시간 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애를 태웠노라고. 얼마 후 찾아온 집도의는 자신의 아이폰에 담아둔 사진까지 보여주며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제대로 알려 주며 다 잘 끝났으니 아무 염려 말라며 저희 부부를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우선, 예정 수술 부위는 두 군데였습니다. 지금은 흔적만 있는 왼쪽 갑상샘자리 아래에 자라고 있는 혹과, 오른쪽 임파선에 붙어 자라고 있는 두어 개의 혹. 수술은 갑상샘에 있는 혹부터 시작했답니다. 열어 보니, 예상 외로 큰 혹이었는데 깨끗이 잘 절단하기 했으나 성대와 너무 밀착된 고로, 한 쪽 성대에 무리가 가서 그 성대가 제대로 움직이기까지는 삼개월에서 육개월 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것인데, 손상된 것은 아니어서 노래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더군요. 문제는 오른쪽인데, 열어보니 혹들이 혈관들과 엉키고 설켜 수술이 용이치 않았기에 혈관 하나 끊어 손놀릴 자리를 확보한 후에 혹 하나 떼네고 하는 식의 수술을 하다가 그렇게 끊은 한 혈관이 도무지 지혈이 되질 않아 많은 양의 피를 잃게 되었고 그에 따라 혈압과 체온이 강하됨에 따라 그때까진 그닥 "별 게 아닌" 수술이 코드블루급의 응급수술로 변해 수술실은 긴장감과 급박감이 넘치는, 마치 의료 드라마 세트장같은 분위기로 돌변했던가 봅니다 (이건 제 연출적 상상력을 조금 덧입힌 것임을 밝혀 둡니다. 담당의사는 그렇게 상세하게 분위기까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긴급히 혈관수술팀의 협조를 요청해 그들을 기다리느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체되었고 또 그로 인해 마취 또한 연장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니, 마취의에게 사기죄를 묻기는커녕 오히려 찾아가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는 게 맞는 거지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것임을 뻔히 알고 계신 하나님께선, 젊고 유능한 데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뭐, 잘 생긴 것이야 수술관 전혀 무관한 덕목이긴 합니다만, 나중에 혹 드라마로 만들어질 경우엔 아무래도 그 편이 낫겠지요--Ham이란 성씨로 미루건대 아마도 한국인 인듯한 혈관수술전문의와 그 팀을 예비해 두신 거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모든 것을 내다 보시고 예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능력과 사랑을! 자, 그래서 이번엔 두 명의가 함께 제 수술을 하게 됩니다. 한쪽은 혈관을 하나는 혹을 각각 맡아서. 그렇게 걸린 시간이 총 일곱 시간 가량이랍니다.

 

한편, 두 세 시간 후면 내가 수술실에서 나오려니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아내는 수술실로부터 전화를 받게 됩니다. 문제가 발생해 수술이 중단되었는데 언제 재개되고 언제 끝날지 지금으로선 말할 수 없으니 계속 기다리라는 내용의. 그때까지 평온하던 아내의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지고 웅웅대기 시작했지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이지? 수술이 중단되다니, 지금으로선 더 이상의 아무 것도 말해 줄 것이 없다니? 뭐야, 간단한 수술 아니었어? 별 거 아니랬었잖아, 그런데 이게 왠 말? 오 하나님,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건 아니죠? 제 남편 괜찮은 거지요? 혼자인 아내는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묻고 확인받고 위안받고 싶은데, 곁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밖엔. 한 시간이 가고 두 시간이 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눈물섞인 기도 뿐이었습니다. 몇 시간 후 이윽고 수술이 잘 끝나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기는 했으나 당장은 볼 수 없다는 말에 아내의 염려는 계속되었고, 세 시간이 넘도록 명쾌한 설명없이 접근을 막는 간호원들에게 급기야는 내가 환자의 아내인데 왜 볼 수 없냐고 화를 내며 막무가내로 중환자실로 쳐들어 갈 때까지 얼마나 걱정되고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붓고 골까지 아파질 정도였단 것을 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미안하게도...그때 곁에서 안심시키고 눈물닦아 주지 못해 미안하고, 혼자 마음 졸이게 해 안타깝고 그때의 아내가 너무도 측은해 가슴이 시리더군요.

 

내가 당신에게 빚이 많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두고 두고 갚을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이런 말에 연전히 수줍어하는 아내는, 그러니까 다시는 아프지 말아요, 이걸로 끝, 건강관리 잘 하세요라며 딴청을 부렸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 난들 또 수술받고 싶겠어? 그리고 이게 어디 내가 건강관리를 잘못한 때문인가? 아니지, 제놈들이 제 멋대로 자라는 거잖아. 나도 피해자라고.

 

과다한 출혈 (약 3리터 가량)과 연장된 마취로 인해 의식이 돌아오기까지 약 세시간 반 가량이 소요되었고 그때까지 의료진은 완전히 맘을 놓지 못했기에 아내에게조차 접견을 불허했던가 봅니다. 혈액 손실분이 컸으나 수혈부작용에 대한 위험부담을 넘어서는 정도는 아니어서 의료진은 하나님께서 각인에게 주신 자기치유력에 맡기고 기다리기로 결정했다더군요. 저는 그 결정에 감사합니다. 그날 밤 늦게 즈음엔 손실된 피가 재생되고 다시 채워져 기력도 한결 나아지고 정신도 명료해졌습니다. 마취과민반응에 따른 이따금의 메슥거림만 제외하곤 다 견딜만 했습니다. 그렇게 첫 밤을 지내고 다음날엔 몸도 일으키고 젤로도 먹고 숩도 몇 숟갈 떠먹을 수 있으며 일어나 화장실도 가고 중환자 병동을 거닐 정도까지 되더군요. 의료진은 제 빠른 회복에 기쁨과 경탄을 보냈고, 저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그날 밤, 그러니까 수요일 밤에 일반 병실로 옮겼고 이젠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에 다음날 오후 의료진의 축복 과 함께 퇴원 수속을 밟고 집으로 돌아와 계속 요양 중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회복은 순조롭고 빨라, 잘 먹고 잘 자고 용변도 다 잘 보고 짧은 산책과 운전도 하는 등, 거의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기력이 약해 쉬 피곤하고 말소리가 크게 나오질 못해 전화는 받지 못할 뿐입니다. 말하는 데에 이렇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고 소모되는 지 미처 몰랐습니다. 아마 그동안 쓸데없는 말이 많았었는지 당분간은 잠잠히 듣기만 하라고, 생각만 하라고 하나님께서 그러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딴에는 허접한 말은 삼가고 오직 하나님 귀에 합당한 말만 하겠노라며 살아온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번에도 깨달은 바가 큽니다. 지난 세 차례와는 또 다른 깨달음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있구나, 사랑의 빚이 여기저기 한 두 군데가 아니구나를 깨닫고 큰 감사와 겸허함을 느낍니다. 앞으로 그 깨달은 바를 하나 하나 여러분들과 나누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어린 사랑의 기도 정말 고맙습니다. 큰 힘이 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제게 함께 동행하는 형제자매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2015년 11월 19일 오후 1시 30분 (한국 시각 11월 20일 오전 6시 30분)


정순태

2015.11.20 03:18:10
*.101.85.154

가슴 먹먹한 감동입니다.

 

큰 수술을 무사히 마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 아픔을 묵묵히 인내하신 유상 형제님께 위로를 드리고

또 옆에서 오직 눈물 기도로 애태우신 카렌 자매님께 같은 마음임을 전합니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그냥 죽 읽으니 당시의 정황이 그려집니다.

함께 그 과정을 겪은 분들(의료진과 자매님)의 급박함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결과를 몰라 걱정하며 기도하였으나

그토록 위험하고 긴 수술을 성공적으로 인도하신 주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이 감사의 글을 대함으로써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회복에 힘드실 텐데도 경쾌한 필치로 그예다 식구들을 위로하시는

형제님의 노력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형제님 말씀대로

잘 잡수시고

잘 주무시고

잘 X시니(형제님은 ‘용변’이라는 점잖은 말로 하셨지만 'X다‘가 정확하지요.^^)

빠르게 원기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의 강력한 다짐처럼

“이걸로 끝”이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은혜로운 후속 나눔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mskong65

2015.11.25 05:11:12
*.101.84.68

홈피에 오랜만에 들어오다 보니 근황을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차례에 계속되는 수술에 많이 힘드실터인데... 이번의  수술이 마지막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김형주

2015.12.20 03:45:21
*.162.215.136

너무 오랫만에 들어오다보니 형제님께서 큰 수술을 하신것도 몰랐네요. 내용을 죽 읽어보니 고생하시는 형제님 뿐만 아니라 자매님께서 더 걱정이 크셨겠습니다. 형제님은 마취중이라 의식이 없으셨겠으나 자매님은 한 순간, 한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셨겠습니까!

속히 기력을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홍성림

2016.01.05 07:03:12
*.101.85.143

새해엔 부디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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