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성경 통독을 시작했다고 알린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아내는 간간이 어디쯤 읽고 있는지 보고를 해왔다. 지난 번 보고에 예레미야 이십 몇 장에 있다더니 어제 밤엔 에스겔 이십 몇 장에 와 있단다. 아니 그 두 책간의 거리가 무려 60장인데 (쪽 수로는 약 100쪽) 그걸 며칠 만에 독파하다니! 질려 혀를 내두르는 내게 아내는 더 질겁할 말을 전한다. 교회 어느 권사께선 두 주에 일 독을 끝내신다는 거다. 세상에!
두 달에 성경 통독을 한다는 사실조차 받아 들이고 싶지 않은데 두 주라니! 믿기지 않는 것이 아니고 믿고 싶지 않다. 아니 누구는 두 주만에 통독을 끝내는데 난 몇 년이 걸려 겨우 일독이면 어디 고개를 들고 다니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글읽기를 좋아 했음에도 난 속독이 되질 않는다. 보다 많은 책을 공짜로 읽기 위해 속독에 관한 책을 사다 읽은 적도 있고 또 속독 강의를 들은 적도 있으나 다 실패였다. 실패의 이유는 물론 내가 그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속독이 내게 맞지 않았다.
난 좋은 책을 만나면 단숨에 읽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읽는 버릇이 있다. 아까워서다. 마치 어릴 적에 어쩌다 커다란 알사탕이 생기면 그것을 아끼느라 입안에서 굴려 가며 천천히 녹여 먹었듯이, 난 한 마디 한 마디 그 뜻과 표현을 음미하고 거기에 내 생각과 상상까지 곁들여 가며 그렇게 즐기고 논다. 그러다 보니 많지 않은 분량의 책도 완독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대학시절, 친구에게서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빌려 다 읽기까지 삼 개월은 족히 걸렸던 듯하다. 번역자의 이름은 잊었으나 아주 명번역이었다. 빌려간 지 한 달이 되도록 꿩 구어먹은 반응인지라 친구가 점검을 했다.
"다 읽었냐?"
"아니. "
"아니 여태 다 안 읽었다고? 난 며칠 만에 끝냈는데. 아마도 네겐 별로인가 보구나. 그냥 돌려 다오."
"그런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빨리 읽기 서운해서 아껴 읽는 중이야. 내 천천히 다 읽고 돌려 주마."
그러니 소설도 아닌 성경을 두 주만에 전 권을 다 읽는다는 것은 내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읽는 것에 치중한다면야 왜 못읽을까만, 그리고 그렇게 읽은 적도 있지만, 그렇게 읽는 것은 마치 시장기 메우기 위해 허겁지겁 물에 밥말아 훌훌 삼킨 것과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 책읽는 습관과 식사 습관이 비슷하다. 난 밥을 빨리 먹지 않는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무슨 재료와 밑간이 들어갔는지 살피면서 먹는다. 이때문에 자라면서 밥상에서 성미급한 경상도 아버지께 늘 꾸지람을 들었다. 도대체 무어 급한 일이 있다고 밥 빨리 먹지 않는다고 꾸중을 하셔야 했는지. 아버지가 설겆이 하시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천천히 책을 읽기에, 병행되는 또 하나의 습관은 여러 권의 책을 함께 읽어 나가는 것이다. 안방 욕실에 한 권, 아래 층 욕실에 한 권, 거실에 한 권, 침실에 한 권, 서재에 한 권, 사무실에 한 권, 그런 식이다. 때론 너무 산만한 느낌이 들어 한 권을 끝내고 다른 책을 시작하자고 작정해 보지만 좋은 책들이 워낙 많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아내는 두 달을 목표로 잡았다고 한다. 지금 속도라면 충분히 달성이 가능하다. 교회에서 성경 통독하는 이들은 주로 권사들이던데, 이러다 아내도 권사 반열에 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내가 늙은 느낌이 든다.
8. 24.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