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주 로또 당첨액이 무려 2억 달러를 넘었다는 소식에 주위 친구들까지 입맛을 다시고 군침을 흘리며 들떠 있다. 한 친구는 공동 구매를 하자고 제안한다. 너도 나도 똑같은 액수를 나누어 갖는 것이 우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면서. 그러나 그 친구의 아내는 혼자서 당첨되겠다 한다. 그리고 척척 나누어 주면서 인심쓰겠단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 친구들은 다 그 돈 없어도 전혀 생활에 불편없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 돈에 군침을 흘린다. 돈의 마력이라더니.
나 역시 한 장 사볼까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살 용기가 없다. 남자다운 배짱과 패기가 모라잔 탓인가, 당첨되면 그 뒷감당할 자신이 도무지 없다. 너도 나도 그 돈 나누어 주길 아니면 빌려라도 주길 바랄 터인데, 그걸 어떤 원칙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나누어 줄 것인가? 과연 난 그 돈을 선교단체나 구호단체에 선듯 기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랬을 때 그것이 과연 그 단체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까? 그리고 설령 내가 그렇게 당첨액을 다 사회에 내놓았다 치자. 그러면 나는 우쭐해지지 않겠는가? 내 스스로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라 착각하고 그렇게 처신하지 않겠는가? 영적 자만에 빠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오래 전에 처음으로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으면서 되풀이되는 패턴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열심히 찾고 따르다가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질적인 복을 주시면 그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다가 끝내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길 되풀이하는 거였다. 그때 난 겁이 더럭 났다. 나도 저 왕들과 다름없을 것같았다. 참으로 곤궁하던 시절이었음에도 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시다시피 전 지금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제가 저 왕들처럼 형편이 피면 하나님을 떠날 것이 뻔하다면, 궁핍한 이대로 내버려 두시고 그저 일용할 양식만 주시옵소서. 그리고 앞으로도 제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을만큼만의 재물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당시에 누군가가 내가 그런 기도를 했다는 말을 듣고는 아니 남자가 그렇게 배포가 없어서 되겠냐고 비웃었다. 자기는 기왕이면 많이 많이 주십사고 기도를 한다는 거였다. 많이 주시면 그만큼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많이 쓸 수 있지 않느냐면서.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난 과연 내가 형편이 나아졌다고 하여 더 나아진만큼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쓸 자신이 없었고 그렇지 못했다. 벌이가 많아지자 많아진만큼을 거의 내 자신을 위해 더 쓰는 것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근 팔 구 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여전히 난 배포가 작다. 여전히 일용할 양식 주심을 구하고 또 그로 인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사드리며 산다. 2억만 달러, 왜 군침이 돌지 않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을 버릴만큼의 액수는 못된다. 돈도 얻고 하나님도 지키면 되지 않느냐고 한 믿지 않는 친구가 내게 갸우뚱하며 물었다. 기회삼아 그 친구에게 마태복음 6장 24절 말씀을 들려 주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3.2.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