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한 친구가 내게 아주 기막힌 일을 당했다며 동정을 구했다. 사연인즉, 마켓에 갔는데 그곳의 한 여종업원이 자기더러 "아버님"이라고 부르더란다. 아무리 자기 머리가 벗겨져 나이 들어 보이기로서니 이제 겨우 쉰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 아버님이라니! 너무나 원통하고 기막히고 분해서 살려던 것 그냥 놓고 나와 버렸단다. 곁에 있던 부인은, 글쎄 그 꽤씸한 여자가 말예요 라면서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난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그러게 말야 한국에선 요즘 아저씨나 선생님 대신 아버님이라 그러더라구 라면서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니 크게 신경쓸 것 없다는 투로 위로를 했다.
그저께 마켓에 들렸다. 라면을 하나 사들고 계산대로 가는 길목에 새로 나온 라면을 싸게 판다고 맛배기까지 주며 홍보를 하는 여종업원에게 붙들렸다. 관심을 표명하는 내 귓등을 때리는 "아버님 한 번 맛보세요"라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난 아직 머리도 벗겨지지 않았는데, 아직도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아버님이라니? 멋적고 속상해서 못들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내게 그녀는 다시 한 번 "아버님 지금 세일 중이니 그것 내려 놓고 이걸로 가져 가세요 저도 이 라면을 참 좋아해요" 라며 확인 사살을 한다.
끙! 오냐 내 너가 얼마나 어리기에 날더러 아버님이라 하나 한 번 자세히 보아 주리라. 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삼십하고도 중반은 되었음직해 보인다. 내 기분은 더 엉망이다. 차라리 끝까지 그녀의 얼굴을 보지 말고 그녀가 아주 어리겠거니 생각할 걸 그랬다 싶다.
아줌마가 그 라면을 좋아하는 것과 나완 아무 상관이 없지요, 심통이 난 나는 그렇게 면박을 주었다. 머쓱해진 그녀는, 그건 그렇지만요 그러니까 하나 사 가시라구요 라며 계속 공세를 유지하려 든다. 그 공세에 밀린 것은 아니고 순전히 경제적 실익 때문에 친구와는 달리 난 그 라면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곤 아내에게 이 기막힌 봉변을 하소연했다.
그럼, 당신이 오빤줄 알았어요? 어이없어 하는 아내의 태도에 아, 세상에 믿을 이는 오직 예수님 당신 한 분 뿐이심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3.15.2006
그러나 마지막 커멘트 "세상에 믿을 이는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것 참 절묘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의 나이, 외모, 학식, 대머리든 아니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분 안에서는 나이 50 중반에 저 같이 속알머리 빠진 정도로는 항상 젊은 오빠 아니겠습니까?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