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를 변호함

조회 수 1424 추천 수 120 2006.03.16 07:31:23
예수님의 수난을 다시 한 번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이다. 빌라도의 지시로 채찍질 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개신교도들 중에는 빌라도가 예수를 핍박한 것으로 은연 중에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사"라고 번역된 한글 사도신경의 숨은 영향 때문이리라. 천주교 한글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라고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는 덕에 천주교인들에겐 그런 오해가 적지 싶다.나전어 번역과 영어 번역에도 각각 "sub", "under"라고 번역되어져 있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 보면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피소되어 잡혀 온 예수를 놓아주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는 몇 번이나 자신은 예수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했다며 십자가에 예수를 못박아 죽게 하라는 유대인들에게 정 죽이고 싶으면 너희들이 직접 죽이라고 하면서까지 그의 손에 예수의 피를 묻히지 않으려 애쓴다. 그가 예수를 채찍질하라 명령한 것도 그것으로 십자가형을 대신하려는 속셈에서였다. 사도 요한은,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라고 소리지르자 어쩔 수 없이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는, 빌라도가 자기의 노력이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라고 하자 백성이 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대답했다고 적고 있다.

예수에게 십자가 형을 언도하지 않으면 민란이 일어날 것같은 상황에서, 그리고 감히 황제에 반역한 것과 다름없는 예수를 더 이상 감싸고 돌았다가는 자기마저 반역범으로 몰릴 상황에서 빌라도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로마인이었고 재임기간 동안 말썽없이 치리하다가 로마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을 터인데. 죄없이 끌려온 예수가 억울한 죽음을 맞는 것이 측은하고 부당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자신의 정치적 생명까지 걸고 예수를 옹호할 정도의 관계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사도신경에 빌라도를 언급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빌라도에게 예수 수난의 책임을 덤태기 씌우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 일이 빌라도가 통치하던 때에 일어났음을 밝히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예수는 빌라도가 자기를 지켜주기를 기대했을까? 아닐 것이다. 빌라도가 채찍질을 명했다고 그에게 한을 품으셨을까? 아닐 것이다. 다만, 진리를 앞에 두고도 알아 보지 못하는 그가 측은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십자가 상에서 임종 직전에 예수에 대한 믿음을 표함으로써 그 즉시 구원을 약속받은 강도처럼 빌라도도 예수와의 장시간에 걸친 대면을 통해 신앙고백을 할 기회가 있었을 것임에도, 아마도 자신의 위치로 인한 자존심과 그가 받아온 교육과 그가 자라온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그 기회를 거부하였으리라.

빌라도, 그는 코 앞에서 영생을 놓아 버린 불쌍한 사람일망정 예수를 핍박한 원흉은 결코 아니었다.

3.15.2006

김인기

2006.03.19 08:32:12
*.229.63.59

제 생각.
빌라도에 대한 기본입장은 동의하지만, 빌라도 본인은 '식민지의 법치를 완성하야 한다'라고 주장되던 당시 황제스시스템(이전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정치에서 늘 전제조건이었던)에 불충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로마의 통치지역중에서 가장 골치아픈 유대땅에 파견되었고, 제법 큰 실수는 없이 통치를 마쳤지만 빌라도 자신은 결국 사마리아인에 대한 통치상의 문제로 소환되어 자살하고 죽었습니다. 기록상으로도 아주 유능하거나 법리에 철저한 사람은 아닌...

결국 빌라도였기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것은 아니나, 확실한 것은 임기응변식으로 통치했지 법리에 철저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신경에도 오해가 있지만 그렇다고 변호를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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